사십 년의 세월. 처음 집 떠나오실 때의 모습. 희끗희끗한 머리칼. 되돌아 갈 수 없는 시절. 생은 속절없이 얼마나 빠르기만 한 지.
“스님! 암자에서 차 한 잔 주세요.”
그해 부처님 오신 날은 5월 초였다. 서울 경전반 일행들과 초파일 행사에 참여하려고 서울에서 제주도로스님이 계시는 암자 서연암을 방문 중이었다. 해마다 단체로 초파일에 제주도 암자를 방문한 지 3년째였다. 하루 일찍 도착해서 음식 준비와 연등 달기 등 다음 날 초파일 행사 준비를 마무리하자 벌써 해가 졌다. 몇몇 제주도 신도분들과 스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평소 조용하던 어느 보살님의 제안에 스님께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날 나는 음식 준비 대신 법당에서 연등 달기를 도왔다. 연등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울팀의 연등 사진을 찍고 단톡 방에 올렸다. 서울에서 내려오지 못한 회원들에게 색색의 연등들이 어떤 빛깔을 내는지, 다홍, 분홍, 노랑, 초록, 파랑의 연등에 차례로 불이 들어올 때 아치형 법당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법당의 격자무늬 창문을 통해 너른 마당의 초록빛과 연등들이 얼마나 오묘한 빛을 만들어 내는지 공유하고 싶었다. 잔디와 풀이 반반인 마당에 꽃반지나 꽃시계를 만들고도 남을 클로버 꽃들은 또 얼마나 무성하던지 그 모든 풍경들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다. 스위스 산정의 돌집처럼 벽 두께가 한 뼘이나 되는 서연암의 작은 법당에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던가. 남쪽 마당에 그림처럼 고요히 앉은 법당과 담쟁이로 뒤덮인 초록 창문 아래 꽃처럼 피어나던 작은 연등들까지.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암자로 돌아온 우리는 조금 들떠있었다. 손님으로 온 게 아니라 제주 암자의 초파일 행사에 떳떳하게 한몫을 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으로 적당히 기분도 좋았다. 스님과는 두 달에 한 번 서울에서 경전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초파일 때는 제주로 와서 스님 암자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기에. 그것으로 멀리 와주시는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에.
오월 초 제주의 저녁은 쌀쌀했지만 모두들 추운 줄도 몰랐다. 서울을 떠나왔다는 설렘도 컸을 것이다. 서울 생활이 오죽 정신이 없어야지. 가족도, 일도, 일상도 제쳐두고 무사히 암자에 도착했다는 기쁨. 큰 행사를 마치고 민폐가 되지 않으려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이었기에 그날이 제주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었다. 그러니 저녁에 차 한 잔 부탁드린다고 크게 실례가 되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암자의 넓은 마당에는 어둠이 가득 내려앉았고, 하늘엔 별도 많았다. 다들 말을 아꼈지만 즐거운 마음이 찻물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솨르르 찻물 끓는 소리. 나른한 침묵. 서둘 것도 바쁠 것도 없는 찻주전자가 그려내는 맑고 가는 포물선. 주둥이가 길고 날렵한 은빛 찻주전자는 예뻤다. 보통 때라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저녁의 차 대신 커피 한 잔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커피 가루 사이로 뽀글뽀글 일던 물보라. 검은 어둠 다닥다닥 몰려와 달라붙던 통유리. 유리창에 함부로 입김 부려놓고 달아나던 짓궂은 봄밤의 공기들. 스님이 좋아하시던 노래 '허공'이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고, 너른 마당에는 봄바람 거침없이 불어왔으며, 하늘에는 별도 총총.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자 기대감으로 출렁대던 밤공기. 차탁이 있는 이쪽과 차실 벽면을 가득 채운 스피커가 놓인 저쪽 사이. 클래식 음악 마니아인 스님이 손수 제작하신 아담한 나무 스피커 통. 스피커를 마주 보고 우리를 등진 채 미동도 없이 앉아 계시던 스님의 뒷모습. 기대감으로 마음들이 봄바람처럼 술렁이던 봄밤이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 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 잊지 않게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기적 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소식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그날 밤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건 가슴속으로 곧장 파고들던 스피커였나. 김광석의 목소리였나. 이등병의 편지가 끝나자 스님이 노래를 하신 것도 아닌데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 기다렸다는 듯 부드럽게 잇따르던 스님이 좋아하시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그날 승리는 김광석도 베토벤도 아니었다. 첫소리에 듣는 이의 마음을 천둥처럼 울려놓던 스님의 스피커. 그리고 세월의 무게 느껴지던 스님의 뒷모습.
사십 년의 세월. 처음 집 떠나오실 때의 모습. 희끗희끗한 머리칼. 되돌아 갈 수 없는 시절. 생은 속절없이 얼마나 빠르기만 한가. 머리 깎고 떠나 오시던 스님의 스무 살도 그랬을까. 눈을 감자 이등병의 편지 행간 사이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몰려오던 눈보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 뒤돌아보지 말고 너의 길을 가. 새파랗게 젊던 시절 뒤로 무정한 세월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초파일 행사는 무사히 끝났다. 이른 아침 암자에 도착하자 공기 속에 퍼지던 감미로운 커피 향. 스님이 새벽부터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고 찻물을 끓이고 찻잔을 데워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담쟁이덩굴이 지천인 법당에는 언제나처럼 오월의 연등이 단아하게 달렸고, 법당 옆 나무에도 색색의 연등들이 바람에 날렸다. 마당의 잔디 풀 위로 하얗게 내린 서리가 반짝거렸다. 오름으로 가는 길목에는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스님이 덜 적적하시겠네.
요사채 거실 겸 차실에서 스님이 내려주시는 따끈한 커피를 양손에 들고 통유리를 통해 새벽 마당과 산을 내다보는 맛도 일품이었다. 스피커에서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스님이 볼륨을 조금 올리셨다. 그것 역시도 스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멀리까지 와 줘서 고맙다는. 말로 다 하지 못하고 음악으로 대신하시는 스님의 마음. 마당에는 제주도 보살님들의 차가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를 주고받은 채 커피잔을 거두었다. 염화미소. 서로의 마음은 전해진 후였다.
우리 스님께서 언제 예순이 되셨나. 형형한 가르침만은 나이를 먹을 리 없다.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시기를. 그리하여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무딘 일상을 깨우쳐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