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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J언니가 보내준

by 뮌헨의 마리


그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또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죠. 그리고 여름이 오고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저물겠죠.



그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또 겨울이 가면 봄이 오겠죠

그리고 여름이 오고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저물겠죠

그래도 난 알아요 언젠가 당신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아요 그래서 약속대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약속한 대로 기다리는 나를 당신은 찾아올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서 홀로 방황하든 신께서 보살피리니

신 앞에 무릎 꿇은 당신에게 신께서 힘을 실어주리니

난 여기서 당신을 기다려요 당신은 돌아올 테니까요

당신이 하늘에서 날 기다린대도 우린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J언니가 보내준 솔베이지의 노래를 듣고 울었다. 주말 아침이었다. 하늘은 흐리고, 비는 내리고, 온 세상이 땅으로 낮게 가라앉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저절로 그랬다.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사는 또 얼마나 절절한지. 노래의 배경인 자연까지 황홀했으니까. 언니의 동영상을 받기 전까지는 제목만 알던 노래였다.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으니, 아름다움이 나를 울게 했다고 말해야겠다.


언니가 보내준 건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 버전이었다. 언니의 설명에 의하면 조수미가 가늘고 맑은 음색인 릴리코 소프라노라면, 안나 넵트렙코는 드라마티코 소프라노.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역대의 소프라노란다. 언니 말대로 성량이 풍부하고 깊었다. 소프라노에 그런 음역 구분이 있다는 건 몰랐으나 나 역시 그녀가 단번에 좋아졌다. 내가 언니를 좋아해서, 언니가 사랑하는 음악까지 좋아지는 건지도 몰랐다. 사람을 좋아하면 그렇게 된다. 언니는 몇 가지 다양한 버전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단톡방에 올려주었다. 그 중에는 노르웨이 출신으로 '노르웨이의 종달새'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가수 시셀 Sissel과 마리타 솔베르그도 있었다.



솔베이지의 노래가 실린 그리그의 페르퀸트 모음곡에 대해 네이 지식백과를 검색해 보았더니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게으른 몽상가 페르퀸트의 방랑과 모험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인생과 그런 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친 솔베이지의 이야기를 그려낸 <페르퀸트>는 노르웨이의 민속 설화를 바탕으로 한 희곡작품이다. 이 사랑 이야기의 끝은 어떨까. 솔베이지의 바람대로 페르퀸트는 돌아온다. 하지만 생애 끝자락에 병들고 지친 몸으로 돌아온 페르퀸트는 솔베이지의 무릎에 누워 조용히 삶을 마감한다. 솔베이지도 노래를 부르며 그를 따라간다.


결말을 들으니 역시 예상대로다. 허망한가. 사는 게 그렇. 사는 게 그렇다는 걸 알면 견디기가 한결 낫다. 희한하게도 이치가 그렇다. 이런 게 아이러니가 아니면 뭔가. 내게는 그것이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어차피 허망한 삶이니 노력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 그러니 세익스피어는 얼마나 위대한가. 맥베스의 입을 빌려 이다지도 짧은 문장으로 압축해서 표현해 놓다니. 저토록 멋진 표현으로!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 버리는 것,

백치가 하는 말처럼 소음과 광기로 가득하나 의미가 없는 것.

문학 시간에 배운 대로 이런 게 허무주의와 비극적인 세계관의 최대치가 아니면 뭐겠나. 그럼에도 정해진 운명에 맞서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또한 가련하면서도 굳건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한 가닥 희망이자 매력이라 하겠다. 하루종일 비가 내려 사방이 고요한 토요일이었다. 아침부터 솔베이지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더니 오후가 되자 뜨겁게 들이붓던 차만큼 기분이 차분해지고 맑아졌다. 문학과 음악과 차의 콜라보라 할까. 뮌헨의 잿빛 날씨까지 한 발 제대로 얹은. 그리고 멀리서 나를 생각해 주는 J언니의 음악 또한 전방위로 올라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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