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이 언제였던가. 인도였을 것이다. 언니를 찾아갔던 오래전 그 해 2월. 언니가 푸나의 오쇼 명상센터 근처에 바닥이 서늘했던 작은 집을 렌트해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언니가 아끼는 김광석 노래와 함께 한국에서 들고 온 CD 중 하나였다. 언니가 말했다. 외국 친구들이 하나 같이 이 노래를 들려주면 너무 아름답다고 해. 특히 여자들이 말이야. 노랫가사도 모르면서. 신기하지 않아? 신기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건 노래가 아니라 시였으니까. 시는 귀보다 먼저 가슴을 울리는 법이니까.
우리는 자주 맨발로 돌바닥에 모여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이 노래를 들었다. 2월의 푸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함께 듣던 사람들 중에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던 얼굴이 아름답던 한국 언니도 한 명 있었다. 프라딥바 언니. 남자 친구가 독일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인도 특유의 향신료 향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지. 어딘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듣는 가시나무는 가사 그대로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았다.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나. 남들이 나라고 부르는 나를 닮은 한 사람이 거기 앉아 가시나무를 듣고 있었다.
멀리서 그녀가 보내준 커피가 도착한 건 며칠 전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 없었다.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해서 우편함을 열어보자 이웃집에 소포를 맡겨두었다는 엽서가 들어있었다. 그 집에 사람이 없어 저녁까지 기다려야 했다. 저녁에 소포 박스를 받아와서도 부엌 테이블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박스 안에서 나온 커피는 무려 다섯 개나 되었다. 세 개의 같은 봉지에는 친절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한 맛, 신 맛, 단 맛. 아, 이 무슨 맛이란 말인가. 인생에도 저런 맛이 있겠지. 달고 시고 진한. 때로는 저 세 가지 맛을 다 합친 맛도. 저기에 빠진 쓴 맛까지.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그녀의 톡을 받았다. 커피는 잘 도착했는가. 얼마나 궁금했을 것인가. 전날 저녁 비 오는 어두운 발코니 야외 테이블에 세 가지 커피를 나란히 세워 놓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카페 대신 집으로 돌아왔다. 서두르지 않고 그녀의 커피를 내려서 한 잔 마셔보고 싶었다. 그리고 사진과 함께 소식을 전해야지. 어떤 맛부터 마실까. 단 맛부터 고른 것은 날씨 탓이었다. 마음은 이렇게 오고 가는 법인가. 커피를 올려놓고 답부터 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맛이었냐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이란 게 있다. 목이 메어서 제대로 알 수 없는 맛이. 마실 때마다 묵직하게 목이 메어와 아직 아무 말도 전하지 못했다. 어제 아침에는 가시나무를 들으며 다시 마셔보았는데도 노래와 커피가 하도나 어울려 무슨 맛인지 또 놓쳤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잘 해명이 안 되는 게 있다. 그녀의 커피가 그랬다. 쉽게 가시나무 숲 맛이었다고 전하자. 색깔은 진한 초콜릿색. 그녀는 바로 이해할 것이다. 궁금하신 분은 뮌헨으로 날아오시길. 그녀의 커피는 겨울 내내 마시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