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행 기차에서 글을 썼다

헤세 기행 6

by 뮌헨의 마리


그해 6월은 무척이나 더웠고, 칼브와 마울브론행은 내게 때 이른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 같았다. 여행의 시작이 밤이라서 더욱 좋았다.


사진: 헤세 박물관


마울브론에서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길도 멀었다. 먼저 버스를 타고 가까운 기차역인 뮬악커 Mühlacker로 이동해서 슈투트가르트행 기차를 타야만 했는데 이번에도 기차가 제시간에 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뮬악커에서 정시에 출발해야만 뮌헨행 연결 편을 놓치지 않을 텐데. 마음이 급해져서 기차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닿기도 전에 열차의 출구 쪽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중엔 어린 아들 셋과 기차를 탄 젊은 독일 엄마도 있었다. 막내가 대여섯 살 정도, 위로 두 형들과는 각각 두서너 살 터울 같았다.


어린아이는 심심하면 제 엄마를 돌아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독일 사람답게 덩치도 키도 컸던 엄마는 귀찮은 내색도 없이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무심히 창밖만 바라보던 둘째 아이와는 달리 열 살은 넘은 듯 보이던 키가 컸던 첫째 아이는 엄마가 막내 동생에게 입 맞추는 것을 보며 몇 번이나 제 엄마의 소맷단을 쥐고 무슨 말인가를 할 듯 말 듯했다. 장미처럼 붉던 남자아이의 입술이 소년다운 섬세한 얼굴과 어울려 밝게 빛났다. 기차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사에 도착할 무렵 큰 아이의 마음을 알아챈 엄마가 아이 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기차를 내렸다.


사신: 헤세 박물관


다시 슈투트가르트. 내가 타야 할 기차는 떠나고 없었다. 단 한 번도 제시간에 기차나 버스를 탄 적이 없던 그때의 여행도 시간이 지나자 추억으로 남았다. 전광판에는 그다음 뮌헨행 기차 시간이 나와 있지 않았다. 역무원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플랫폼에 정차하고 있던 기품 있고 단정한 흰색 이체에 ICE 기차를 가리켰다. 설마 저걸 타라고? 애매할 땐 묻는 게 최고다. 독일에서는 질문이 침묵보다 언제나 우위이므로. 내 표로 탈 수 있는 기차는 레기오날 RE와 이체 IC와 에체 EC였기 때문이다. 우리로 치면 KTX급인 ICE를 탈 경우 기차 안에서 차액을 지불해야 한다.


"제 표로 저 기차를 타라고요?"

"네, 타보세요."


에라, 모르겠다. 관계자가 타라지 않나. 그래서? 탔다! 시간은 저녁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게는 더 지체할 시간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기차는 편안했다. 뮌헨까지는 2시간. 간이 테이블을 내려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창밖은 아직도 환했다. '중간에 타신 분! 검표원이 들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가만히 있어, 말어?' 아니지, 독일이야말로 정직이 최선인 사회였다. '할로!' 나를 스쳐가는 검표원의 뒷모습을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인상이 차분한 여자 검표원에게 기차표와 플랜 표를 보여주며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오케이! 그녀의 미소에 안도하며 기차가 멈출 때까지 내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기차는 9시에 뮌헨 중앙역에 도착했다. 하루 전 칼브에 도착했던 그 시간이었다. 짧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만족했다. 긴 시간을 압축해서 이틀 동안 양손에 펼쳐 들고 다닌 기분. 그해 6월은 무척이나 더웠고, 칼브와 마울브론행은 내게 때 이른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 같았다. 여행의 시작이 밤이라서 더욱 좋았다. 뜬금없는 비유 같지만, 어두워지는 뮌헨의 중앙 역을 걸어 나오며 고흐의 그림 '밤의 카페테라스'가 떠올랐다. 앞으로의 여행도 밤으로 시작될 것 같은 예감. 고흐의 그림 속 노란색처럼 환하고 푸른 밤하늘처럼 부드러울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할 때마다 드는 생각.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진: 헤세 박물관(왼쪽)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1888년, 크뢸러 뮐러 미술관(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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