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이 투명한 블루

신봉철 작가 전시회

by 뮌헨의 마리


한 없이 투명한 블루. 내가 그 전시회를 보고 난 느낌이었다. 맑고 단단하고 빛났다.



금요일 저녁 조카가 말했다. 저녁 알바를 쉬는 날이라 자기가 아이랑 놀고 있을 테니 이모랑 이모부는 오래간만에 영화라도 보고 오시라고. 말도 고맙고 마음도 고마웠지만 조카의 말대로 하지는 못 했다. 남편은 바빴고, 나는 나대로 계획이 있었다. 뮌헨에서 만난 알리시아의 한국인 친구 아빠는 유리 조형 미술가. 현재 뮌헨에서 전시회 중인데 거기 들르겠다고 말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전시회는 지난 12월부터 1달 넘게 열리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보지 못했다. 전시회에 다녀온 문학 모임 멤버들이 말하길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사진보다 몇 배는 낫다고 꼭 가보라고 했다. 기왕이면 아이나 조카도 데리고 가고 싶었다. 전시회 장소가 조카가 일하는 한국 식당과도 멀지 않았다. 영국 정원에서 가까운, 지하철 U3, U4이 지나는 레헬 Lehel 역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까지 들러야 해서 번거롭긴 하지만 무거운 노트북과 아이의 책가방은 집에 두기로 했다. 날씨가 추워서 한번 귀가하면 밖에 나오기 싫어질 것 같은 날이었다. 조카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늦은 점심을 챙겨 먹이고 집을 나선 게 오후 4시 반이었다. 곧 어둠이 내릴 시각이었다. 전시회에 도착하자 어둠이 사방에서 포위해 오고 있었다.


전시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벨을 누르자 갤러리 담당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는 전시회장에서 친구를 만나길 기대했지만 그쪽 사정이 어떨지 몰라 만나자는 말은 못 했다. 그쪽도 우리가 그렇게 늦은 시각에 다녀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전시회장에서 작가 가족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아이들은 기뻐했고, 조카와 나는 작가로부터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호사를 누렸다.



한 없이 투명한 블루. 내가 전시회를 보고 난 느낌이었다. 맑고 단단하고 빛났다. 그게 유리의 속성이라고? 그렇겠지. 뾰족하고 날카롭고 부서지기도 쉽겠지. 한 없이 연약한 관계들처럼. 한번 금이 가면 되돌리기도 어렵고 찔리면 아프겠고. 초록빛이 도는 새 볏단으로 탄탄하게 짠 가마니도 언젠가는 푸석하게 삭을 때가 오는 것처럼. 그럼에도 작품 속 유리들은 아름다웠다.


유리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궁금했다. 왜 하필이면 유리인가. 작가는 왜 유리에 천착할까. 깜빡하고 물어보진 못했다. 괜찮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한 달 정도 전시회를 연장한다고 작가로부터 직접 들었으니. 색깔이 든 유리, 색깔을 따로 넣은 유리, 그 색들이 빛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무지갯빛. 작가는 어떤 색을 가슴에 담고 어떤 빛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로부터 직접 들은 팁을 소개하자면 작가의 대표작으로 볼 만한 세 작품의 모티브가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청기사파의 중요한 여성 작가인 가브리엘레 뮌터 작품이라는 것. 찾아보니 칸딘스키의 제자이자 동지이며 연인이었던 여인이다. 신기하게도 작가가 직접 보여 주는 원본 그림을 보자 진짜 그렇게 보였다. 이렇게 또 한 명의 화가를 만나는 기쁨. 청기사파의 그림을 볼 수 있는 뮌헨의 뮤지엄 렌바흐 하우스와 그녀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바이에른의 무르나우를 기억하기로 한다.



전시회 안내:

BONGCHULL SHIN

Galerie Tanit

Maximilianstraße 45

80538 München

2019. 2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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