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카츠를 읽는 법

Alex Katz 특별전

by 뮌헨의 마리


예기치 못한 곳으로 삶을 안내하는 것에 트람 만한 것이 있을까. 어제 뮌헨의 트람이 나를 데려다준 곳은 브란트 호르스트 미술관(Museum Brandhorst).


예기치 못한 곳으로 삶을 안내하는 것에 트람 만한 것이 있을까. 리스본의 트람 뿐만이 아니다. 뮌헨의 트람 얘기다. 뮌헨에는 지하철에 해당하는 우반(U Bahn)과 지상철에 해당하는 에스반(S Bahn)이 있다. 뮌헨 시내에서는 둘 다 지하로 다닌다. 우반이 뮌헨 시내를 커버한다면 에스반은 뮌헨 외곽까지 연결된다. 뮌헨을 벗어나면 에스반도 열차 선로로 달리는데 에스반이 자주 연착하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게 내 생각이다. 독일 열차가 연착을 밥 먹듯이 하니까!


뮌헨의 버스나 트람도 두 교통편에 못지않다. 버스는 우반이나 에스반과의 연계가 훌륭하고 아침 출퇴근 시간에 몇 분씩 늦는 것을 빼고는 대체로 운행 시간에 맞춰 달린. 버스 정류장에서는 전광판으로 도착 시간을 알 수 있다. 우리 집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이 편리해서 트람을 탈 일이 없다. 트람 정류장이 멀어서 번거롭기도 하고. 좋은 것은 이 네 가지 교통편을 정기 교통카드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교통 카드는 월정액부터 1년 치까지 다양하다.



오늘 트람이 나를 데려다준 곳은 브란트 호르스트 미술관(Museum Brandhorst). 미국 화가 알렉스 카츠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을 수순이었다. 비빔밥을 먹고 싶은데 참기름이 떨어져 며칠 째 못 먹고 있었다는 것. 괴테 플라츠까지 걸어가서 한국 슈퍼에 들를 생각이었다. 젠들링거 토어 사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든 생각. 여기서 트람을 타 본 적이 있나? 지난 1년 동안 뮌헨에서 트람을 타 본 게 통틀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뮌헨의 트람 27번. 리스본의 트람처럼 귀엽지는 않았다. 낭만도 없다. 낭만이 뭔가. 아무렴 독일인데. 그런 덕목은 독일 답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하고 묘한 안도감까지 준다. 저 트람에 오르면 어디 갈 수 있고 안전하게 돌아올 것 같다. 속도도 적당하다. 지하철처럼 정신없지도 버스처럼 단조롭지도 않다. 아이를 픽업할 때 여유도 있었다. 점심? 하루 거른다고 죽나. 믿는 것은 매일 한 조각씩 싸들고 다니는 샌드위치와 보온 물병. 가다 보니 피나코텍 역이 나왔다. 알렉스 카츠 전시회가 생각난 건 그때였다.



알렉스 카츠의 그림은 보는 게 아니라 읽어야 하는 거구나. 과감한 화면. 우아한 동작. 절제된 감정. 일단 사이즈부터 압도당하는 느낌. 얼굴이 얼마나 클로즈업되어 그려졌는지 손바닥을 대면 질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거기다 대담한 색채는 또 어떻고. 이상도 해라. 전혀 다른데 난 왜 자꾸 에드워드 호프가 생각나지? 호프밖에 몰라서? 그래서 책을 샀다. <카츠와 함께 보는 예술>. 호프 편을 읽어 보니 정작 카츠는 호프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를 사로잡은 그림엽서 둘. <푸른 우산 Blue Umbrella>과 <커플 Couple>. 순간 왜 닥터 지바고가 떠올랐을까. 라라와 지바고. 카츠의 그림은 역시 시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인물 그림과 함께 전시된 풍경 그림은 그림이 어떻게 시가 되는 지를 보여주었다. 책 속에 특별히 두 시인 Ted Berrigan과 그의 히어로 Frank O'Hara를 소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시와 시인들과 시어들을 사랑하는지. '시는 언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동의한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마리엔 플라츠의 후겐두벨 서점에 와서 글을 썼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폰 배터리가 다 나가 버렸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땐 어딜 가나. 내게 남은 건 45분. 뮌헨의 착한 서점 후겐두벨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후겐두벨의 2층 창가에는 소파도 놓여 있다. 운 좋게 1인용 안락의자가 비어 있었다. 창밖엔 뮌헨 시청사. 통유리로 시청사와 광장이 내려다보였다. 뮌헨에 살며 누리는 호사 중 제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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