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와 여인의 눈물

피나코텍 특별전 <플로렌스와 그의 화가들>

by 뮌헨의 마리


핏기 없는 예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입 맞추는 핑크 치마 여인의 뜨거운 눈물. 붉은 핏자국 선명한 예수의 두 발 위로 피보다 진한 슬픔 떨구는 초록 치마 여인의 서늘한 애도.


겨울 내내 벼르던 전시회가 있었다. 알테 피나코텍의 특별전 <플로렌스와 그의 화가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였다. 일요일에 한번 가야지 하다가 계속 못 갔다. 그러다 1주간 연장 전시를 한다는 것을 알고 안도한 것도 잠시였다. 특별 전시회는 평일에도 일요일에도 가격이 동일하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마지막 날에 맞춰서 가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알테 피나코텍상설 전시회 일요일 입장료는 1유로. 특별 전시회 가격은 균일 12유로였다.


그날은 전시회 마지막 날인 2월의 첫째 주 일요일이었다.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조카와 아이는 무슨 꿍꿍이 속인지 내가 집 비울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뭘 하느라 늦어졌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떠밀리다시피 집을 나선 게 오후 4시였다. 그날은 뮌헨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눈 오는 일요일 오후 알테 피나코텍은 사람들로 넘쳤다. 건물 밖의 대기 줄은 길었고, 육중한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관람 인원을 제한하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담당자들이 밖으로 나와 어린이 동반자와 노약자들을 우선 입장시키는 풍경은 흐뭇했다.


숙제도 아닌데 꼭 봐야 할 것 같은 이 의무감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눈을 맞으며 추운 날씨에 밖에서 20분을 기다렸고, 홀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표를 사느라 뱀처럼 구불구불한 줄을 또 서야 했다. 뮌헨 생활이 1년이라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감은 없지만, 나처럼 입장료를 착각하고 온 사람도 적지는 겠지? 얼마나 애석하던지! 평일 오전에 와서 느긋하게 관람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그날 전시회 구경은 망했다. 전시관에 들어간 시간이 오후 5시. 오후 6시 반까지 그림 보고, 제목 확인하고, 사진 찍고. 그게 다였다.


보티첼리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함>


그럼 뭘 더 해야 하냐고?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말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4/45-1510)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함 The Lamentation> 같은 그림 앞에 오래 서 있는 것. 그날의 주인공은 내게는 단연 보티첼리였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맘 놓고 그림을 감상하기도 힘들었던 그날. 그럼에도 저 여인들 앞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저 그림을 못 만났더라면 그날은 피곤하게 힘만 뺀 미술관 관람으로 끝났을지 모르겠다.


핏기 없는 예수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입 맞추는 핑크빛 치마를 입은 여인의 뜨거운 눈물. 붉은 핏자국 선명한 예수의 두 발 위로 피보다 진한 슬픔 떨구는 초록빛 치마를 입은 여인의 서늘한 애도. 저 소리 없는 통곡을 보라. 아, 여인들의 슬픔이여.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흘리는 여인들의 눈물이여. 저들의 눈물과 슬픔과 애도가 세상을 구원했구나.

또 있다. 그림 속의 로맨스를 살짝 엿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지. 보는 순간 슬그머니 웃음을 짓게 하는 백마 탄 젊은 남자의 저 발랄한 빨간 레깅스를 보라. 그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경쾌하게 동여맨 짙은 그린 드레스와 역동적인 몸짓,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진 부드럽고 둥근 항아리의 곡선을 보라. 이것은 전시를 보기 전에는 이름도 몰랐던 페셀리노 Pesellino의 작품 <그리셀다 이야기>. 원제는 La Storia di Griselda.


페셀리노의 <그리셀다 이야기>. 원제는 La Storia di Griselda. 이번 전시회 제목은 Scenes from the Life of Griselda였다.


피나코텍이 고른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은 필리피노 리피 Filippino Lippi의 <젊은 남자의 초상 Portrait of a Young Man>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 15세기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 출신의 화가 10명의 작품 총 120여 점이 전시되었다.


전시회는 그들이 그림을 그린 방식과 테크닉과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으나 그 문제에는 문외한인 데다 내 관심사도 아니어서 개별 그림 감상에 집중했다. 시집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고 할까. 한 권의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두 개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 글을 쓰며 팸플릿을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발견한 정보는 이렇다. 평일에 알테 피나코텍을 방문할 경우 입장료가 상설 전시회 7유로+특별 전시회 5유로. 특별 전시회 입장료 12유로와 같다. 이런 것도 독일의 합리성으로 봐야 하나. 참고로 오디오는 독일어와 영어로 90분/3.50유로. 어린이는 독일어만 제공되며 30분/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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