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인들처럼 살면 안 되나

일요일의 알테 피나코텍

by 뮌헨의 마리


일요일에는 마사지 수업 대신 알테 피나코텍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메일이 도착. 강사인 마리야가 간밤에 아파서 둘째날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카라바죠의 그림이 아니다! <The Concert> by Gerard van Honthorst(1592-1656) 와싱턴 내셔널 갤러리


보디마사지 첫 수업이 있던 토요일엔 간간히 비가 내렸고 기온이 떨어져 날씨도 제법 쌀쌀했다. 그러고 보니 2주째 주말마다 비가 오락가락한 것 같다. 마사지 수업 때 침상에 누워 파트너의 마사지 실습을 받을 때 창밖의 빗소리를 듣는 것은 비 오는 여름날 대청마루에 누운 것만큼이나 한갓지고 좋았다. 독일에서는 하루 종일이나 반나절 이상 비가 계속 내리는 법이 없다. 무섭게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니까. 그런 날씨가 사람을 변덕스럽게 만들기도 한다지만 나는 좋았다.


보디마사지 기본 자격증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이번 강사는 마리야. 훤칠하면서도 춤을 추는 사람처럼 율동적인 몸을 가진 이였다. 지난번 발마사지 때의 베티나가 친절한 천사 형이라면 마리야는 유쾌하고 오픈된 스타일. 그녀의 수업은 그 어떤 이론도 공식도 절대시 하지 않는다는 것. '테크닉은 그다음이야. 제일 중요한 건 큰 밑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잘 기억해. 기본을 충분히 숙지하고 익히다 보면 언젠가 너만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돼.'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수업이었다.


일요일 알테 피나코텍 정문 앞 잔디 공원에서 열리는 컬처 섬머 페스티벌.


그러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사지 스킬을 눈여겨보다가 개개인에게 뻐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는데 그녀로부터 내가 들은 충고는 너무 빠르다는 . '서두르지 마. 천천히 가야 해. 안 그러면 너도 지치고 마사지받는 사람도 힘들어.' 이런 지적이 중요한 것은 혼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지적을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 좋은 선생님이란 이토록 소중한 존재다. 그녀가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마사지는 거침이 없었고 유연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약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마사지가 예술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수업 규모는 발마사지의 절반인 네 명이었다. 카탸와 나를 뺀 두 명은 가브리엘레와 슈테판. 가브리엘레는 경력 30년의 발마사지와 동물 특히 말 마사지사였는데 이번 보디마사지 자격증이 필요해서 왔다고 했다. 나이는 오십. 수업 때 슬쩍 돌아본 단아한 중년 여인의 동작은 그녀의 경력을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문제는 슈테판. 딱 봐도 할아버지신데 어떻게 마사지를? 퇴직하신 지 3년. 취미로 마사지를 배우신단다. 오래 동거 중인 파트너에게 마사지를 해드린다고. 경우 마사지는 남는 장사가 맞다.


<The fortune Teller 여자 점쟁이> by 카라바죠(1571-1610) 루브르 박물관(위) 전시회 중 천사들의 옷 부분(아래)


일요일에는 마사지 수업 대신 알테 피나코텍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마사지 학교로부터 메일이 왔는데 강사 마리야가 간밤에 아파서 둘째날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것. 조만간 보충 일자를 잡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일요일엔 조카가 점심때부터 아이를 봐주겠노라 해서 벼르던 알테 피나코텍의 특별 전시회 <Utrecht, Caravaggio und Europa전>을 보러 갔다. 특별 전시회의 주인공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죠 Michelangelo da Caravaggio. 전시회가 딱 1주일밖에 안 남아서 서둘러야 했다. 관람자가 많을 것 같아 혼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시장이 미어터졌다.


반전은 입장료가 무료! (원래 특별 전시회 입장료는 요일 무관 12유로. 알테 피나코텍 상설 전시장은 일요일 1유로.) 알고 보니 전날부터 이틀 동안 뮌헨에서는 컬처 섬머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이었다. 그 행사의 일환으로 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입장이었던 것. 그것도 모르고 갔다가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카라바죠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잘 표현한 화가로서 그와 동명이인인 유명한 미켈란젤로만큼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화가다.



참고로 카라바죠 이전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켈란젤로보다 20년 연상이었다. 카라바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며 그림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고. 90세까지 장수한 미켈란젤로에 비해 같은 이름을 가진 카라바죠는 38세에 사망했다. 당대의 걸어다니는 대가로 불리던 카라바죠의 행적은 카사노바를 능가하는 면이 있었다.


특별 전시회 타이틀 중 '위트레히트 Utrecht'는 네델란드의 지명이다. 당시 이곳 출신의 세 화가였던 Hendrick ter Brugghen, Gerard van Honthorst(알테 피나코텍 특별전 표지 화가), Dirck van Baburen등이 로마로 와서 르네상스 화풍과 카라바죠의 영향을 받았다. 2019년도 봄 알테 피나코텍이 얼굴 마담으로 선택한 그림은 카라바죠가 아니라 Utrecht의 화가 Honthorst의 류트를 연주하는 여인들이었다. 남은 생은 여인들처럼 살면 안 될까.


keyword
이전 06화뮌헨의 연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