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의 빗소리와 그림 한 장의 즐거움

부흐하임 뮤지엄의 야노쉬 특별전

by 뮌헨의 마리


일요일 아침에는 세찬 비가 내렸다. 홀로 깨어 빗소리를 들었다. 어떤 소리가 그보다 더 아늑할 수 있으랴. 빗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일요일 아침이라니!

Otto Dix, <Modernestanzpaar>1922


일요일 아침에는 세찬 비가 내렸다. 가족들은 잠들어 있는데 홀로 깨어 빗소리를 들었다. 일요일 아침의 어떤 소리가 그보다 더 아늑할 수 있으랴. 빗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주말 아침이라니! 하루 종일이라도 침대에 누워 소리를 듣고 싶었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 그리고 갓 구운 따끈한 빵 한 조각만 있다면. 그날은 시누이 바바라와 슈탄베르크 호숫가의 작은 미술관 부흐하임 Buchheim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비도 오는데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바바라에게 왓츠앱을 보내자 점심 후에 출발하자는 답이 왔다.


아이는 금요일부터 이틀 동안 연달아 파자마 파티를 했다. 금요일 저녁엔 우리 반의 베스트 프렌드인 율리아나와, 토요일 저녁엔 한글학교의 절친인 현경이와 함께였다. 현경이는 토요일 한글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리 집으로 왔다. 오후에는 아이와 현경이와 율리아나 세 명을 데리고 우리 동네 야외 여름 수영장인 쉬렌바트 Schrenbad에서 저녁까지 놀았다. 아이들은 쉬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나무 아래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었다. 무더운 날이라 야외 수영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녁은 집에서 남편이 아이들과 돈가스인 슈니첼 Schnitzel을 만들어 먹었다.


이번 전시회는 바바라가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와 그림책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노란 호랑이와 갈색곰이 친구인 그림책인데 작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까지 그렸다. 그의 그림들을 모아 이번에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전시회를 연 것이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부모들도 야노쉬를 읽고 보며 자랐을 것이다. 야노쉬를 모르면 독일 사람도 아니니까! 우리 아이도 야노쉬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고, 그중 몇 권은 어릴 때부터 파파와 함께 자주 읽었다.



부흐하임 뮤지엄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다. 주로 겨울이었는데 뮤지엄 카페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3시간 가까이 야노쉬 특별전과 상설전, 지하의 신기한 입체 전시들을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남편은 운전 후 카페로 직행하고 바바라와 나와 아이들은 패밀리 카드(성인 2+어린이 2/21유로)를 샀다. 전시실 안에는 야노쉬 그림 그리기, 동영상 만들기, 책 읽기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했다. 세 시간이 지나자 배도 고프고 피곤해서 슈탄베르크 호숫가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번 부흐하임의 소득은 단연 한 장의 그림이었다. 뮤지엄의 1층 복도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을 나는 작년 앤티크 가게에서 적이 있다. 가격이 40유로쯤 했는데 속으로 찜만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보는 순간 반해놓고 왜 사지 않았을까. 올해 초 내 생일 때 선물로 사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어느 눈 밝은 이가 먼저 집어가 버렸다. 그런데 부흐하임 뮤지엄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이유는 없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디 있나. 화가도 유파도 몰랐다. 괜찮았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싶었다. (신즉물주의 Neue Sachlichkeit 주창자이자 표현주의 화가인 독일의 오토 딕스 Otto Dix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무조건 기념품숍으로 달려갔다. 어쩌면 포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맞았다. 포스터 번호는 No.79. 가격은 10유로였다. 오늘 아침 포스터를 거실과 복도 사이의 유리문에 붙였더니 잘 어울렸다. 나도 저런 자세로 남은 생을 살 것이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로. 적당히 서로에게 기대며. 완전히는 말고. 정현종의 시 '비스듬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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