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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ul 25. 2019

시어머니 식탁에 여섯 송이 장미를 공양했다

장미가 음식이 될 때


어머니의 정원에 핀 모든 장미들이 아름답지만 특히 분홍의 겹 장미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겹겹의 꽃잎이 오묘하게 겹쳐있다. 얽키거나 설키지도 않으면서. 저런 것이 경지가 아니면 뭔가.


시어머니의 저녁 식탁을 장식한 여섯 송이 장미들


어제는 36도를 예고한 기상청 경고대로 뮌헨도 뜨거운 여름이었다. 저녁 8시까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오늘내일은 32~31도를 유지하 주말부터 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갈 예정이란다. 이번 주에는 두 번 시어머니를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 월요일엔 벌써 다녀왔고, 내일 방학을 하자마자 또 달려간다. 아이는 내일 3학년 총괄 성적표를 받는다. 시어머니는 손녀의 모든 성적표 사본을 차곡차곡 모아놓으신다. 잘하면 아이는 할머니께 20유로의 용돈을 받을지도 모른다.


지난 월요일엔 어머니의 정원에서 장미들을 손봤다. 만개한 장미들은 조만간 꽃잎을 흩뿌리며 떨어질 것이다. 며칠은 버틸 것 같아 싹둑 자르기 아쉬운 장미들도 있었. 정원용 가위를 들었다 내렸다를 몇 번 반복하기도 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단호해야 한다. 아쉬울 때 내려놓아야지. 아깝다고 미련을 갖거나 버티다간 하루아침에 폭망 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장미는 가위를 갖다 대기도 전에 수십 개의 꽃잎으로 흩어져버렸다. 떨어진 꽃잎을 수습하기가 더 어렵다는 건 해본 사람만 안다.


어머니의 정원에 핀 모든 장미들이 아름답지만 특히 분홍의 겹 장미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겹겹의 꽃잎이 서로를 도 막지도 않으면서 오묘하게 겹쳐있다. 좀처럼 얽히거나 설키지 않는다. 저런 것이 경지가 아니면 뭔가. 오만 가지 상념과 내 것인 양 내 것이 아닌 자아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삶 깊숙이 한두 발을 걸치고 있는 관계들. 저렇듯 촘촘하면서도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밀지 않아도 될 만한 간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도 꽃을 피우고 향기를 피우기가. 그러고도 심지어 아름답기가.


나의 뮤즈 분홍 겹 장미(위)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선사했던 장미들(아래)


그날 어머니는 조금 지쳐 보였다. 당연하지. 날씨는 연일 30도를 오르내리고, 하루에 세 번이나 차를 운전해서 양아버지를 모시고 병원과 치과와 그리고 은행을 오가기가 쉽나. 왜 은행에서는 컴으로 온라인 뱅킹 잘하고 계시던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니께 아이패드로 해보라고, 자기들이 도와주겠다 해놓고 사흘 동안 다섯 번을 왔다 갔다 하시게 만드나. 그 나이 노인들에게 익숙하던 시스템을 바꿀 때,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얼마나 불편하고 괴롭고 걱정이 될 것인가. 남편과 시누이에게 SOS를 보냈다. '어머니 힘드셔. 빨리 와서 너희가 도와드려. 지금 당장!'


남편과 시누이가 오는 동안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여자들의 수다란 이럴 때 유효하다. 할아버지 험담에도 적극 동조하고 가담해야 진정한 뒷담화지. '아니, 글쎄, 저 할아버지가 지쳐서 기진맥진한 나한테 이러시지 뭐냐. 왜 당신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고 힘들어 보이나? 이게 말이냐 뭐냐?' '진짜 너무하시네요! 말도 아니죠!'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하하호호 웃었다. 양아버지가 아마존으로 그렇게 주문을 해대신다 해서  '당장 마스타 카드를 회수하세요!' 했더니 소용이 없단다. 이미 내장되어 있어 클릭만 하면 바로 배송. 미운 아마존 같으니라구!


어머니의 저녁 식탁에 여섯 송이 장미를 접시에 담아 올렸다. 버리긴 아깝고 안 버릴 수도 없는 꽃들의 마지막 향연. 담 쪽으로 높이 핀 장미를 자르다가 가시에도 찔렸다. 깜짝 놀랄 만큼 아팠다. 자자하던 명성만큼이나 아픔도 강렬했. 이튿날까지 아파서 자세히 살펴보니 1mm 정도의 갈색 가시가 상처 속에서 나왔다. 왜 '가시 돋친 말'이라는 표현이 있는지 알겠다. 괴테를 쓰러뜨린 것은 가시일까 말일까. 그날 저녁 남편과 바바라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문제는 즉각 해결. 내친김에 어머니의 발톱에 주 1회 약 발라드리기 미션도 시누이 바바라에게 넘겼다. 서로 기대며 사는 삶도 나쁘지 않다. 장미들처럼 촘촘하게 그러나 적당한 간격도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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