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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Apr 16. 2019

새할머니의 식탁

남편의 새어머니


주말에는 새어머니댁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왔다.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 아무리 생각해도 나 말고 어머니를 신경 쓸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다.


우리가 가면 새어머니가 준비하시는 독일다운 점심식사. 샴페인과 소시지, 자우어 크라우트, 소스. 후식은 아이스크림.


주말에는 새어머니댁에 아이를 데려다주었. 부활절 방학 며칠을 새할머니와 보내기로 했기 문이. 아이는 엄마 아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지 저녁에 레겐스부르크 중앙역에서 엄마 아빠가 할머니 차에서 내릴 때는 엄마의 팔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나. 아이의 손을 마주 아주고 뽀뽀를 해주고 내렸다. 할머니께서 얼른 내리라 하셔서  지도 못했. 차의 창문을 내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빨갰. 남편이 걱정스럽게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걱정 마. 둘이서 잘해나갈 거야.'


아이가 새할머니와 지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도 두어 번 주말을 새할머니와 보낸 적이 있다. 이번을 계기로 규칙적으로 아이를 새할머니 댁에 보낼 생각이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방법으로 자주 보는 것 이상 좋은 건 없다. 엄마 아빠가 없어야 할머니도 아이도 둘만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겠지. 시행착오도 거쳐야겠지. 부모들도 실수를 거듭하는데. 우리 나이로 열 살이면 아기가 아니다. 새할머니와의 사흘은 아이에게도 도전이 될 것이다. 무슨 큰일이 생길 게 있겠나. 남도 아니고 할머니신데.


새어머니 댁에서 점심을 먹을 때 후식은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딸기였다. 남편은 아이스크림 없이 딸기, 나는 초콜릿+딸기, 아이는 초콜릿+바닐라+딸기였다. 복잡한 주문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유리그릇 전부에 아이스크림 두 종류와 딸기를 담고 계셨다. 점심 후 놀이터에서 돌아올 때도 엘리베이터 앞과 안에서 가만히  계신 할머니를 대신해 아이가 버튼과 층수를 눌렀다. 예전엔 그렇않았다. 우리 중 동작이 가장 빠른 분이었다. 현관에서 아이가 '할머니, 제 신발에 물이 들어갔어요!' 하자 어머니가 손에 드신 건 파란색 아이 신발이 아니라 빨간색 내 신발.


독일의 제철 봄 음식은 역시 슈파겔이다. 연어와 삶은 감자와 같이 먹어도 맛있다. 레드 와인 한 잔도 빼놓을 수 없지.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 상태는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안심하기도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말고 어머니를 신경 쓸 사람도 없다는 게 문제다. 독일 사람은 자기 자신과 결혼한 가정이 우선이다. 남편의 형네는 여름휴가철에 딱 한번 어머니를 방문한다. 지금은 다 컸지만 형네 딸이 어릴 때 새어머니가 아이를 끔찍이 좋아하셨다. 그렇지 않겠는가. 드디어 '새어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되시는 순간인데. 아이가 여섯 살 무렵부터 형수가 새어머니께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새할머니 댁에 간 아이가 저녁에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울었다는 이유로. 젊은 날 바바라도 새어머니와의 불화로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결혼을 포기했단다. 본인 말로는 그렇다.


이런 가정사 정도는 어느 집에든 있다. 내게 그보다 더 충격은 형수네 아이가 양쪽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이름으로 부를 때였다. 그때 내가 느낀 비애라니. 인간적으로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사람 마음이 동서양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한번 새엄마는 영원한 새엄마? 그분들도 평범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고 싶으셨을 텐데. 작년 양아버지의 생신 때 그분의 절친되시는 분이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보신 맥락도 그런 뜻이었을 것이다. '너희 애가 저 친구(양아버지)를 어떻게 부르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니? 아니면 이름으로?' '당연히 할아버지죠!'             


월요일 오후 5시. 남편이 집으로 온다는 톡이 왔다. 이렇게 일찍? 알고 보니 아이에게 전화를 하려고. 아이의 전화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가 한국말로 물었다. '엄마! 화요일에 나 데리러 오면 안 돼?' 이런이런, 할머니는 목요일까지 기대하고 계시던데. 할머니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 우리가 뭐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시겠지. 오늘은 할머니와 꽃도 사 와서 베란다 화단에 심고, 부활절 달걀에 그림도 그렸단다. 할머니가 수요일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뮌헨으로 오시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쉬울 리가 있나. 누구보다 까칠한 할머니와 아직 어린 손녀의 만남 아닌가. 두 사람의 콜라보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화를 끊고 새어머니께 톡을 드렸다. 한 번도 안 하던 일이라 용기가 필요했다. '어머니, 힘드시죠? 애 많이 쓰셨어요. 쉽지 않은 일이란 거 잘 안답니다. 시간이 걸릴 거예요. 필요한 건 그것뿐이니 포기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고맙구나.' 즉각 어머니의 답이 도착했다. 빨간 하트와 함께. 내가 아이 몰래 할머니께 드린 팁은 이렇다. '알리시아는 안아 주는 걸 좋아해요. TV 볼 때와 자기 전에요. TV는 드라마나 연속극도 좋아하고요. (어제는 아이를 위해 할머니가 드라마를 포기하시고 동물의 왕국을 같이 보셨다.) 라디오 바이에른 채널과, 레겐스부르크 중앙역에서 어린이 잡지 사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참고하세요!'       


어머니의 꽃장식 빨간 튤립과 우리가 사 간 노란 튤립, 부활절 계란 장식(위) 점심 식탁과 어머니가 사시는 친환경 아파트 단지(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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