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의 화이트 와인

시누이 바바라의 방문

by 뮌헨의 마리


토요일 저녁에는 바바라가 왔다. 와인 한 병을 들고서. 지금껏 레드 와인만 마시던 남편과 내가 화이트 와인에 입문한 것은 바바라 덕분이다. 와인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거였어?


토요일 저녁 와인 한 병을 다 비우도록 사진 찍는 것을 잊었다. 일요일 아침 정신을 차려 사진을 찍으려니 빈 병과 거의 바닥만 남은 빈 잔.


2주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는 한가한 토요일이었다. 보통 토요일에는 오전에 내가 아이와 한글학교를 다녀오고, 오후에는 남편이 몇 가지 옵션으로 아이와 놀아 준다. 영화관에 가거나, 수영장에 가거나, 자전거로 이자르 강변을 달리는 것. 이 옵션에는 내가 동행할 때도 있고, 둘만 보낼 때도 있다. 그날은 한글학교도 없었다. 독일의 학교들이 2주 방학에 들어갈 때 한글학교는 3주 방학을 한다. 독일학교를 빌려서 운영하기에 금요일 수업이 끝나면 방학이 시작되므로 토요일에는 해당 건물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은 남편이 주말임에도 일 때문에 정상 출근을 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아이는 심심한지 수영장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바로 전날 수영장에 다녀왔는데 또? 전날에는 아이의 마지막 수영 강습이 있었다. 아이 말로는 그건 수영장에 간 게 아니고 수업을 하러 간 거란다. 그 말도 맞긴 하다. 어쨌거나 아이가 수영장을 좋아하는 건 다행이다. 자주 말했듯이 남독일에 살면서 수영, 자전거, 스키 빼면 무슨 재미인가. 나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 나는 그 모두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영과 자전거는 적당히 즐기고, 스키는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 나이에 스키라니, 당연히 힘들겠지. 그래도 해보고 결정하겠다. 미리 포기하는 건 독일식이 아니라서.


말이 나온 김에 솔직히 겨울의 수영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생각해 보라. 잠수복도 아니고 팔다리만 내놓은 수영복만으로 차가운 물속으로? 대번에 풍덩 물속에 몸을 던지는 독일 사람들을 나는 진실로 존경한다. 나?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었다가, 열 십자로 양쪽 어깨를 감쌌다가, 오들오들 떨며 엄지발가락을 물에 슬쩍 적셨다가 펄쩍 뛰며 놀랐다가. 양팔에는 소름. 신기한 건 일단 물속에만 들어가면 그다음에는 춥지 않다는 것. 한여름 호수에서도 이 난리는 똑같이 재현된다. 결론, 독일은 춥다!



그날 오후 아이는 수영장에서 4시간을 놀았다. 말로만 수영장에 가면 혼자서 잘 놀 테니 엄마는 고상하게 앉아서 책이나 보시라, 해놓고 수영장에 도착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이와는 따뜻한 야외 풀장에서 목만 내놓고 센 물살에 떠내려가기, 혹은 버티기를 반복하며 즐겁게 놀았다. 노천탕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충분히 따뜻해서 가족을 비롯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이는 엄마를 끌고 다니며 실내 성인 풀장에서는 1미터 높이에서 다이빙 하기, 실내 어린이 풀장에서는 잠수하기 등 신공을 펼쳤고, 덕분에 내 책은 두 페이지인가, 세 페이지를 넘지 못했다. 독일 수영장은 샤워실만 남녀 구분. 탈의실과 락커, 머리 말리는 곳은 공용이다. 입장료는 수영장마다 다른데, 우리가 간 곳은 미하엘리 수영장 Mihaelibad으로 어른 5.30, 어린이 3.70유로.


한편 자전거 타기는 독일에서 가장 손쉬운 운동으로 보인다. 할머니들까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유유자적 타시는 걸 보면. 심지어 자전거 앞뒤로 카시트를 놓고 애들을 태우거나, 자전거 뒤에 체인으로 연결된 수레에 애들을 태우고 깃대까지 휘날리며 달리는 건 예사다. 자전거가 다르나? 그건 아니고, 아이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자전거를 타며 균형 감각을 익히고, 갓난아기 때부터 수영장엘 오가니 운동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부를 만하다. 몇십 년을 단련한 일이니 내가 간만에 호기롭게 자전거를 타다가 남편과 아이를 따라잡느라 땀 깨나 흘린 건 당연한 일이겠다.


토요일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바바라가 들고 온 화이트 와인 한 병.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는 바바라가 그날 들고 온 것도 이태리산 유기농 와인이었다. 레드만 마시던 나와 남편이 화이트에 입문한 것도 화이트 마니아인 바바라 덕분이다. 그날 우리 집에는 와인이 없었다. 아이는 고모에게 전화로 뜨거운 물에 데치면 탱글탱글 식감이 살아나는 비엔나소시지를 주문했고, 나는 와인이 떨어졌음을 알렸다. 바바라는 뚜껑을 딴 와인을 병째 들고 왔다. 이런 때 바바라와 우반 한 정거장 거리에 사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와인 한 모금을 마시자 피로한 몸속으로 부드럽고 감미롭게 퍼지던 나른함! 와인 한 잔이 주는 즐거움이 이런 거였어? 4월 마지막 금요일, 카페 이탈리 건물의 지하 창고 와이너리에서 열릴 이태리 와인 축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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