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Jul 17. 2019

독일 할머니와 마멜라데 만들기 2탄

할아버지는 거드시고


양아버지가 또 물으셨다. '그래, 너희는 한국에 4주간 다녀오는 거냐.'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러신다고 내가 모르나. 너무 긴 거다. 우리들의 부재가. 그 좋은 여름날에.


작년에 아이는 나의 시어머니이신 독일 할머니와 독일 잼 마멜라데를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양아버지이신 할아버지도 건강하셨다. 세월이 무상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건강은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1년 사이에 상황이 180도로 달라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모님이 편찮으신 후에 며느리인 나와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사이가 된 감사할 일이다.


솔직히 올해는 할머니와 아이 마멜라데 콜라보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오월에 양아버지가 쓰러지시고 곧이어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으시고 두 분이 각각 다른 재활원에 계시다가 유월에 함께 집으로 돌아오시기까지 꼭 사십 일이 걸렸다. 집으로 오신다고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병원이나 재활원에서는 문제도 안 되던 까지 집에서는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삼시 세끼부터 양아버지의 돌봄에 관련된 모든 일이 말이다.


청소나 세탁, 다림질은 주 3회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시고 양아버지를 위해서는 주 3회 간병 도우미가 이른 아침에 방문해서 30분 정도 몸을 씻겨 드린다. 그럼에도 장보기, 주기적으로 차로 양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가기, 보청기를 맞추기 위해 몇 번이나 병원에 들르기, 약국 들르기, 매일 3회 소변 주머니를 갈아드리기 등 숱한 과제가  어머니의 일. 하도 피곤하셔서 예전의 불면증이 뭔가, 밤새 양아버지가 부르셔도 모르실 만큼 깊이 잠드시 다행이라면 다행이.


빛깔도 고운 두 종류 마멜라데 완성!


해마다 칠월의 마멜라데 만들기는 두 분의 연례행사였다. 많을 때는 네다섯 종류의 마멜라데를 120병까지 만드신 적도 있단다. 물론 이런 일에는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수다. 할머니와 푸른색 앞치마를 세트로 두르시고 부엌 테이블에 앉아 과일의 씨를 빼고, 껍질을 벗기고, 자르는 과정모두 할아버지의 일이다. '올해도 할머니랑 마멜라데를 만들어 볼까?' 지난주에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한 건 아이보다 엄마였다. 우리 할머니의 솜씨를 다시 볼 수 있는 거야? 얏호!


올해도 살구를 빼놓을 수 없다. 저 연하고 귀하고 부드럽고 우아한 살구색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밀려온다. 맛은 또 어떤가!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맛.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역시 좋다. 살구는 1킬로, 총 여섯 병을 수확했다. 다음이 문제인데 두 가지 베리류가 있었다. 작년에도 같은 걸 만드셨는데 독일어로 요하네스 베어 Johannisbeer와 슈타헬 베어 Stachelbeer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과일이라 한국식 이름을 모르겠다.  종류의 베리를 섞어서 2킬로에 총 12병이 나왔다. 설탕도 각기 다른 걸 쓰셨다. 레몬즙도 짜넣으시고 도수가 40도인 슈납스도 별도로 한 잔씩 투하! 이런 게 진정한 할머니 레시피의 비결이겠다.


슈타헬 베리(위) 요하네스 베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함께 곧잘 어머니의 식탁에 등장하는 디저트(아래)


'재료 준비됐으니 언제라도 오너라! 할아버지도 손톱이 길다며 너를 목 빠지게 기다리시는구나.' 기다릴 게 뭐 있나. 월요일 아침 어머니의 왓츠앱을 받고 오후에 아이를 픽업해서 바로 달려갔다. 나는 바쁘게 사진만 찍어대마멜라데 미션이 끝나고 어머니가 간단한 저녁을 준비하시는 동안 정원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양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리자 양아버지가 큰소리로 어머니를 부르셨다. 용건은  갈 때 용돈 챙겨주라는 말씀. 어머니가 매번 차비를 살짝 주시는데도 말이다.


시누이 바바라에게도 마멜라데 완성 사진을 보냈더니 당장 자기도 1병씩 가져와 달란다. 어머니께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시는 말씀, '이상하네. 평생 마멜라데 같은 거 입에도 던 앤데'. 우리도 그랬다. 남편도 나도 아이도 아침 식사 때 마멜라데나 꿀이나 누텔라처럼 단 건 전혀 먹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어머니의 마멜라데가 그렇게 맛있는 거다. 이건 무슨 조화인가. 나이 탓인가. 아무려나 어떤가. 나는 어머니의 식탁과 손맛의 왕팬인 것을.


손톱을 깎으며 양아버지가 또 물으셨다. '그래, 너희는 한국에 4주간 다녀오는 거냐.' 매번 물으시는 게 마음에 걸려서 '네, 죄송해요. 너무 길죠?' 했더니 '아니다, 아니다. 집에 가는 건데 하나도 긴 거 아니다.'로 멘트를 수정하셨다. 그러신다고 내가 모르나. 너무 긴 거다. 우리들의 부재가. 그 좋은 여름날에. '내년에는 한국 안 가니까 여름 방학 때 자주 놀러올게요!' 그러자 아무 말씀 없이 활짝 피어난 연못의 흰 수련만 바라보시던 얼굴에 조용히 번지던 미소.


라벨에 제목 쓰기는 나의 유일한 일! 어머니의 마멜라데 시크릿은 각각의 마멜라데에 들이붓는 저 한 잔의 슈납스(소주 같은 술)!!!
이전 18화 나는 왜 독일 시어머니 밥상이 맛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