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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06. 2020

문학이 머무는 자리

스탕달과 발자크를 만나는 곳


퇴근길에 30분 책을 읽는다. 고전이 어떻게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는지 새삼 깨달으며.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뛰면서. 두 손으로 책을 가슴에 안고서. 나무 아래 햇살이 빛나는 저 나무 탁자에 앉아서.



퇴근길에 성당 옆 탁자에서 30분 책 읽기.



내가 일하는 은 뮌헨의 서쪽 베스트 파크 Westpark 역에서 가까운 요양원 '하우스 상트 요세프 Haus St. Josef'다. 지하철 U1/U2를 타고 젠들링어 토어 Sendlinger Tor 역에서 U6로 갈아탄다. 이 노선은 2년간 토요일마다 아이를 데리고 한글학교를 다녀서 익숙한 길이다. 그 길에는 작년 봄에 첫 알바를 하던 한국 슈퍼도 있다. 집에서 베스트 파크까지는 지하철로 20분. 집에서 발하면 요양원까지 40분이 걸린다.


요양원 본관은 쌍둥이 탑이 있는 뮌헨의 상징 프라우엔 성당 Frauenkirche을 닮았다. 나는 이 건물에 처음 반했고, ㄷ자 건물 안쪽의 아름다운 정원에 두 번째로 반했다. 내가 이곳을 떠나못한다면 팔 할이 그 정원 때문일 것이다. 또 있다. 요양원 건물 뒤편의 가로수길. 아름드리나무가 서 있는 그 길의 가운데에 주방 전용 출입문이 있다. 그 길의 벤치들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에, 오후에, 하루에 두 번 이 길을 걷는다. 이런 게 행복이고 축복 아니면 뭔가.


길에 내가 사랑하는 장소가 있다. 우반역에서 내려 오른쪽에 성당 유치원과 방과 후 교실. 잔디가 깔린 공터를 끼고 다시 오른쪽에 가로수길. 그 길의 첫 번째 건물이 성당(사제관)다. 성당 마당에는 희고 작은 자갈을 깔아 걸을 때면 차르르 차르르 소리가 난다. 성당과 잔디 공터 사이 울창한 나무 아래 놓인 나무 탁자.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곳. 언제나 비어 있는 곳. 바람 햇살과 여린 꽃들과 연둣빛 아기 벌레가 쉬었다 가는 곳. 퇴근  30분 동안 스탕달과 발자크를 만나는 곳.





 

여기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는 중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도 이곳에 읽었다. 대작가들을 만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 <고리오 영감>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먼저 <리어왕>. 자신의 모든 것을 딸들에게 주고 딸들 집을 오가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려던 영감과 왕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비극은 준비되었다.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은 고리오 영감이 있는지 우리는 . 고전남 얘기가 아니다.


고리오 영감이 세 들어 사는 싸구려 <보케 하숙집>냄새를 묘사하 대목은 영화 <기생충>을 연상시킨다. 그것을 발자크는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냄새, <하숙집 냄새>, 퀴퀴한 냄새, 곰팡이 냄새, 절은 내'라고 표현한다. 거기다 '그 냄새를 맡으면 한기가 들고, 코를 킁킁대면 축축한 기운이 느껴지며, 옷 속에도 은근히 스며든다. 저녁 먹고 치운 식당에서 나는 냄새, 부엌 냄새, 그릇 두는 방 냄새, 요양원 냄새다.'라고 덧붙여 고리오 영감이 살아갈 앞날을 예고한다.


그가 처음부터 '영감'이라고 불린 건 아니다. 처음에는 정중히 '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도 남을 하숙집 주인 보케 부인이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은근한 마음을 품을 때까지는. 그가 멋진 의복이 그득 담긴 옷장 하나를 들고 와서 그녀의 찬사를 받을 때까지는. '보케 부인은 결이 곱고 촘촘한 천으로 지은 영감의 셔츠 열여덟 벌에 감탄했다.'는 대목도 낯익다. 뜬금없이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나서. 개츠비가 처음 데이지를 만나 그의 침실 장롱에서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는 셔츠들을 보고 데이지가 눈물을 흘리던 대목 말이다. 너무 아름답다고.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을 때도 그랬다. 쥘리엥이 성공의 문 앞에서 어이없이 좌절당하고 권총 살인 미수를 저지른 후 감옥에 갇혔을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모든 구차한 방법을 거부했을 때.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자신의 계급을 받아들이고 인간 존엄을 지킬 때. 출세와 허영으로 가득했던 한 사람이 고귀한 인간으로 거듭날 때. 그때 까뮈의 <이방인> 떠올랐다. 고전이 어떻게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는지 새삼 깨달으며.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뛰면서. 손으로 책을 가슴에 안고서. 나무 아래 햇살이 빛나는 저 나무 탁자에 앉아서.



성당 입구(위)와 테이블에 앉으면 보이는 성당 뒷편 방과후 교실 마당(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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