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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18. 2021

눈 속에 꽃이 피네

응답하라 삶이여


아이와 나는 2주 전부터 주말에 <응답하라 1988>과 <응답하라 1994> 시청을 끝냈다. 이 중독성! 아이가 한국의 정서를 배우고 익히는 공부로도 좋았다. 우리는 이번 불금에 마지막 시리즈 <응답하라 1997>에도 도전할 것이다.



조카가 사 온 꽃다발.



수술을 한 지 만 4주가 지났다. 2주  퇴원을 했고, 퇴원  후 아침마다 배에 주사를 놓고 있다.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이다. 혼자서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무래도 자기 배를 찌르는 것보다 남의 배를 찌르기가 쉽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남편은 매번 미안하다며 성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병원에서 매일 간호사가 놓아줄 때는 아픈 줄도 몰랐다. 당연히 주사 바늘 자국도 남지 않았다. 남편이 하니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주사 자국이 가로수처럼 일렬로 늘어서기도 있다. 10년 전에 시험관을 할 때는 혼자서도 용감하게 잘만 배 주사를 놓았는데 이번에는 주사 바늘이 크기도 하고 수술을 뒤끝이마음이 약해진  . 그런 내 마음을 위로한 건 조카의 꽃다발. 2주 전에 들고 왔는데 아직도 베란다 밖의 눈 속에서 잘 버텨주고 있다.


밤에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었다. 퇴원 후 첫 주에는 밤 12시에서 아침 6시를 기준으로 6번이나 일어났다. 매시간 화장실을 간 셈이다. 둘째 주에는 4회로 줄었다. 매 1시간 반마다 일어나고 그 사이에 운 좋게 잠이 때도 있다. 최종 목표는 2~3회로 줄이는 것인데 최근 이틀 동안 세 번만 일어났으니 큰 성과임에 틀림없다. 수면의 질과 양이 나아지면 컨디션도 더 좋아질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것 자체가 방광이 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니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조금 귀찮은 건 어쩔 수 없. 요즘은 자다가 일어나도 입 안이 마르지 않는 걸 보니 코로 호흡하기도 적응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수술 후에는  안 환기에도 신경을 쓴다. 잘 때 환기창을 열고 잘 때도 많다. 수술 이후로 공기가 탁하거나 답답한 걸 잘 못 견디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도 고민 중이다. 오전집중적으로 따뜻한 차를 마신다. 원래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저녁부터는 거의 안 마신다. 자다가 화장실 가는 게 귀찮아서다. 언니가 보내준 소파용 미니 매트도 톡톡히 제값을 하고 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엉덩이부터 발끝까지 하체를 따뜻하게 하는데 썼다. 언니가 따로 1인용 얇은 담요 매트를 보내주어서 침대에 깔고 소파용 미니 매트는 주방 장의자에 놓고 쓴다. 덕분에 추위를 잊을 수 있어 좋다. 부엌의 환기창을 열고 등에 담요를 두르면 따뜻한 매트 덕분에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반신욕이 체온 올리기에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수술 후 최소 4주까지는 금물이란다. 상처 자국이 따뜻한 물에 불어서 부드러워지면 안 된다고. 족욕은 뜨거운 물을 보충해야 하고 여러모로 귀찮아서 자주 안 하게 된다.

 


아침 대용인 요구르트와 의자 매트(위) 언니가 보내준 책들(아래)



아침에 검은 빵을 먹기 싫은 날엔 수술 전에 먹던 것처럼 플레인 요구르트를 먹는다. 바나나와 사과와 귤을 넣고 호두도 넣는다. 유효 기간이 올해 3월까지인 오설록 가루녹차가 있길래 그 위에 솔솔 뿌려먹기도 한다. 복잡한 녹즙 대신 간편한 녹차 가루라고 할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녹차 역시 항암에 좋다고. 요구르트는 차가워서 매일 먹지는 못할 거 같다. 어떤 회복식이든 식이요법이든 끝까지 하려면 일단 쉬워야 한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남에게 쉬운 것이 내겐 어렵고 복잡할 수도 있다. 나 자신이 생각해서 간편해만만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야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얼마 전에는 삼겹살 두 겹을 압력솥에 넣고 수육을 했다. 전날 아이와 밥에 상추쌈을 먹었는데 심심하다는 거다. 아이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해서 수육 생각이 다. 기름기가 없으니 나도 몇 점 먹어보고 싶었다. 육식이 암에 좋을 리야 없겠지만 지금은 뭐라도 먹고 내가 기운을 내야 하기에. 마트에 직접 장을 보러 가지는 못해서 남편에게 삼겹살을 부탁했다. 마트 안 정육 코너에 가면 두툼한 삼겹을 원하는 크기대로 잘라 준다. 네 겹을 사 왔길래 반만 압력솥에 넣고 오래 익혔다. 저녁에 남편과 아이와 셋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나는 손톱만큼 잘라서 너댓 번 상추에 싸서 먹었다. 저녁 한 끼로 충분했다. 과식을 안 한 덕분에 위가 부대끼지도 않았다.


아이와 나는 2주 전 주말에 <응답하라 1988> 시청을 끝냈다. 아이가 많이 허전해하길래 지난 주말에는 <응답하라 1994>보았다. 이 중독성! 아이가 한국의 정서를 보고 배우고 익히는 공부로 삼기에도 좋았다. 우리는 이번 주말에 남은 시리즈인 <응답하라 1997>도전할 것이다. 경험상 불금 저녁부터 시작하면 주말 안에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다. 포근하게 눈 내리는 주말에 따뜻한 치킨 수프를 데워먹으며 아이와 응사를 보던 주말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던 따끈한 고구마, 생선 구이, 모락모락 김이 나던 찌개와 국들. 응팔의 택이와 응사의 칠봉이가 라면 냄비를 들고 오며 깔 것을 외칠 때 아이도 먹고 싶은지 라면을 끓여왔다. 나도 한두 번 젓가락을 보태며 아이의 흥을 깨지 않았다. 아이는  큰 하숙집 아주머니가 매끼 차려내시던 풍성한 식탁에 매회 감탄했고, 나는 미운 사람 하나 없이도 감동을 주는 이 드라마야말로 반칙이 아닐까 생각했.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이웃집 지붕과 길들을 내려다 보며 지나간 날들과 앞으로의 날들에게 혼잣말을 건넸다. 응답하라 눈이여. 응답하라 꽃이여. 응답하라 삶이여.



뮌헨에는 이번 주말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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