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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21. 2021

첫 산책을 나갔다

뮌헨의 이자르 강변


첫째 날은 시누이 바바라와, 둘째 날은 아이와 함께 나갔다. 이자르 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춥지는 않았다. 아이는 고모보다 더 걱정이 많아서 20분 만에 돌아왔다. 나 혼자 마음대로 산책 나갈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이자르 강가로 가는 산책로



이번 주 월요일에 산책을 나갔다. 수술 5주 차였다. 아침에 시누이 바바라에게 왓츠앱이 왔다. 오늘 재택근무하는 날인데 점심 먹고 산책 갈래? 바바라는 격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배려에는 노라고 하기가 어렵다. 분명 남편의 의도라는 걸 잘 알지만 말이다. 퇴원 이후로 남편은 해만 나오면 내게 산책을 권했는데 내가 집에만 있으니 답답했을 다. 나는 4주 동안 방콕을 했다. 혹시라도 눈길에 넘어지거나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독일 사람들은 정말 무쇠 체력을 가졌다. 암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2주가 지났으니 얼마든지 산책이 가능하다는 저 사고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의사의 소견도 큰 차이가 없었다. 무조건 많이 움직이시라, 가 답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집에서 등 스트레칭을 많이 했다. 계속 허리를 못 펴자 등이 무척 아팠기 때문이다. 특히 갈비뼈 사이가 아팠다. 이틀 동안 틈나는 대로 운동을 했다. 테이블이나 책장을 두 손으로 잡고 등을 숙이고 머리를 등과 평행으로 만든 뒤 쭉 늘였다. 아프면서도 시원했다. 수술 후 4주 동안 자주 눕거나 앉아 있었기에 등에 피로가 쌓인 탓이었다. 등이 편안해지자 허리를 펴기가 한결 수월했다. 산책을 나가서 걸어도 되겠다 싶었다. 다리 부종이 아랫배로 모인 것도 산책의 이유였다. 통증은 없지만 걷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어 보였다. 산책을 나간 지 사흘째가 되자 아랫배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밤에 잠도 잘 잤다.


몸무게는 수술 전과 비교해서 5킬로가 빠졌다. 11월 말부터 수술 전까지 3주간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걸었더니 3킬로가 빠졌다. 수술 후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지 2킬로가 빠졌다. 아이를 낳은 후로 꿈도 꾸지 못한 50킬로대에 진입하는 순식이었다. 암이 준 선물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하여 몸이 가벼워진 건 사실이다. 남편은 내가 암 진단을 받자마자 살을 빼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 아닌가. 그때 남편이 내게 준 미션이 10킬로 빼기인데  절반을 이룬 셈이다. 여기서 더 줄일 생각은 없다. 체력과 체중이 꼭 반비례하라는 법은 없다. 이 체중을 유지해가며 근력과 체력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산책길과 우리 동네 공터의 나무들.



산책 첫날 월요일. 바바라와 이자르 강변을 걸었다. 흐린 날이었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세상은 온통 흰빛이었다. 요 근래 몇 년간 뮌헨에도 눈이 별로 오지 않았다. 올해는 그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심심하면 눈이 왔다. 눈 위를 걷는 일은 즐거웠다. 미끄럽지도 않았다. 포근한 솜 위를 걷는 듯했다. 강변로 숲에서는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고 있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로젠 가르텐까지는 어림도 없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야 했지만 다리 근처에도 고 돌아섰다. 바바라의 염려도 한몫했다. 무리하는 건 안 좋으니 첫날 산책으로 30분이면 충분했다.


둘째 날은 아이와 함께 나갔다. 점심을 먹고 전날 바바라와 갔던 동선대로 갔다. 전날처럼 날씨는 흐렸지만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이번 주 기온이 계속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모보다 더 걱정이 많아서 20분 만에 돌아왔다. 빨리 독립해서 나 혼자 마음대로 산책 나갈 날이 오면 좋겠다. 셋째 날도 아이와 나갔다가 10분 만에 돌아왔다. 집을 나서자 화장실을 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 내 목표는 언덕 위 성당 가는 길 탐사였는데 지하철역을 지난 후 언덕길에 도착하기 직전에 돌아서야 했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눈이 아직 남아있는지 녹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오후에 다시 바바라 이자르 강변으로 향했다. 사흘째인 어제는 해도 나왔다. 로젠 가르텐 방향으로 첫 다리를 지난 후 다시 돌아왔다. 산책 시간은 40분 정도. 돌아오는 길에는 잠시 쉬어야 다.


어제저녁에는 족욕을 했다. 산책을 하면 발이 차가왔기 때문이다. 테팔에 물을 가득 끓여서 두세 번 보충해 가면서 30분 정도 했다. 땀은 많이 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마른 수건으로 꼼꼼하게 물기를 닦아내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비우고 낮추면 반드시 낫는다>는 책에서 읽은 대로 누워서 모관운동과 복식 호흡을 다. 모관운동은 누워서 양 팔다리를 들어 올려 살살 흔들며 팔다리의 모세혈관을 움직이는 운동이다. 아주 쉽다. 복식 호흡은 100번쯤 했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숫자를 세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족욕 덕분인지 복식 호흡 덕분인지 어젯밤에는 수술 후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물론 화장실 간다고 세 번 정도 깨긴 했지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오늘 아침 아랫배도 훨씬 가벼웠다. 오늘부터 손에 들 두 권의 책 <암은 병이 아니다>와 <암의 스위치를 끄라>도 기대 중이다. 저자는 독일인과 미국인이다. 책 제목부터 명쾌하고 상쾌하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명심할 일이다. 제목의 힘!



요즘 열공 중인 책들. 산책 사흘째인 수요일엔 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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