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음악을 새로운 것을 듣지 않고 기존 것을 반복해서 본다면 본인이 늙었다고. 아이를 출산한 이후부터 이번 주 신작 영화를 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갓난아이의 수면, 식사시간에 맞춰 내 생활도 돌아간 탓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음악 리스트에 5-10년 전 음악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나이지. 직장에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노력해서 음악은 신곡을 찾아 듣지만, 영화는 이제 어느 순간 소장해서 반복해서 보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거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시 나와 관심이 생겨 찾아보는 일 말고는 영화 보는 패턴은 정말 늙은이가 된 기분이다.
흔하디 흔한 가족 이야기, 소년의 성장드라마
'빌리 엘리어트'는 내가 고등학생 때 개봉한 영화다. 대학 입학하고 처음 봤는데 당시 영국 영화가 꽤 개봉을 많이 하고 흥행도 많이 했던 시기였다.
다들 한 번씩은 본 영화겠지만, 영국 탄광촌에 11살 소년 빌리가 발레를 보고 매력을 느껴 여학생들 사이에서 동작을 따라 한다. 어느 날 광부인 아버지와 마주치고, 파업 중인 아버지, 형과 가족들을 설득시키며 후에 발레로 성공한 모습으로 끝이 난다.
줄거리는 굉장히 흔한 가족영화 같지만, 탄광촌의 한 소년의 성장과 더불어, 당시 영국의 경제 상황, 실업률, 파업 등의 현실적인 부분도 불편하지 않게 녹여있다.
대학생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애틋한 가족영화, 한 소년의 성장 스토리. 딱 거기까지 였다.
마지막에 빌리가 백조의 호수로 날아오를 때 "성공해서 다행이네. 빌리가 탄광촌으로 돌아오지 않아 해피엔딩이군." 안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2-3번 보고 오늘 같은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침 먹으며 보는데 뭔가 다른 것들이 보였다.
빌리의 성공은 빌리만의 노력이었을까
오늘은 이상하게 귀여운 빌리, 성공한 빌리보다 파업한 동료들을 배신하고 빌리의 학비를 위해 계란을 맞으며 탄광으로 들어가는 빌리의 아버지, 형이 보였다. 오디션을 보려 가는 길, 본인도 런던이 처음이다 담담히 말하는 아버지가 보였고, 마지막에 빌리의 공연을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빌리의 아버지 눈만 보였다.
내가 엄마가 되어 부모의 입장이 되었나. 생각했지만, 마지막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세상에 나와 본인의 색깔을 드러낸 마이클도 더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만 보였던 내 눈이 이제 그 주변의 것들을 관심 갖게 했다. 대학생 때와 달라진 나이 때문이지, 기혼자가 되고 엄마가 된 환경적인 이유인지. 아무튼 나는 왠지 오늘 하루 빌리 아버지가 되어 빌리의 합격 통보서에 괜히 마음이 붕 뜨고, 마지막 배웅할 때 마음이 아렸다.
예전엔 빌리의 성공스토리 영화였다. 탄광촌에서 빌리가 발레로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영화는 발레 학교에 합격까지만 보여주고 바로 어른이 된 빌리로 뛰어넘지만, 저 어린 시골소년이 부유하고 화려한 아이들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 오직 빌리의 노력, 빌리의 고난만 걱정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괜히 과연 빌리만 힘들었을까? 빌리의 성공이 빌리의 힘으로만 이룬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 수는 없다.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영국으로 탄광 노동자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아버지 형과 살고 있는 빌리는 날씨가 추워 세상을 떠난 엄마의 피아노를 땔감으로 써야 할 정도로 어려운 시대였다. 빌리의 발레 스쿨 오디션비를 위해 죽은 아내의 반지와 목걸이를 팔고, 함께 파업한 동료들을 배신하고 현장에 복귀한다. 변절자가 된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빌리 형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 빌리가 어쩌면 천재 일지 몰라.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는 이렇게 끝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빌리의 형 토니는? 오늘은 문득 그럼 토니의 인생은? 왜 재키는 굳이 우리라 했을까. 토니도 아직 젊은데. 재키는 아버지로서 빌리를 위해 희생할 수 있지만 토니의 인생에 왜 함부로 끝났다고 말하는 거지.
왠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왔다.
빌리가 발레 스쿨에 합격하고 아버지 재키와 토니가 무표정하게 탄광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너무 슬펐다. 두 사람의 희생으로 빌리는 새하얀 발레복을 입고 우아하게 춤추겠지.
지하에서 새까만 먼지를 마시는 두 사람의 노동으로
지상의 빌리는 한 마리의 백조가 되어 지상에서 춤추겠지.
기술을 배워라. 빌리. 쓸모 있는 걸로.
치매가 걸린 할머니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발레 스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두 부자에게 말한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기술 타령은 어디든 똑같다. 쓸모 있는 기술은 대체 뭘까. 밥벌이에 인기 있는 기술이라면 모두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행복한 일이 쓸모 있는 기술이 되는 걸까.
할머니는 손자가 좀 더 밝은 미래, 편한 인생을 살기 위해 말한 조언일 테다. 마지막 떠나는 빌리를 힘껏 안으며 눈이 촉촉해지는 것을 보면 치매였지만 누구보다 손자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국문학을 택했을 때 모두들 취직은? 나중에 취업을 어쩌려고? 상경대가 낫지 않겠어? 걱정했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그냥 좋아하는 거 해라. 앞으로 시대가 뭐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괜히 머리 굴리다 더 비극이다. 좋아하는 거 해. 나중에 결과가 나빠도 후회는 덜하다."
가끔 인생의 길에 선택의 갈림길이 나오면 19살의 나에게 말한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래. 좋아하는 거. 둘 다 결과가 나빴을 때 그래도 내가 감수할 수 있는 거 택하자. 대부분 내 선택은 옳았고 비록 결과가 좋지 못해도 미련 남아 돌아보지 않고 앞의 길을 걸어 나갔다. 대학 전공을 시작으로 취직도, 크고 작은 선택도, 결혼도,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거.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르자. 정보, 남들의 조언도 듣지만 결국 선택은 내가.
결과적으로 나도 국문학 전공으로 지금 밥벌이를 하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내 밥벌이의 지겨움을 글로 이겨내고 있으니 쓸모없는 기술은 아니라 생각한다.
예전 한 방송사에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영재라는 의미가 간혹 사회에서는 공부만 뜻하는 것 같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의 영재들을 보여줘서 매주 챙겨봤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적지 않은 부모님들이 나와 부족한 자신들 밑에서 태어난 아이의 앞날이 걱정된다며 울었다. 부족한 경제력, 부족한 환경. 아이를 위해 부모가 2-3가지 직업을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의 삶의 무엇일까. 과연 아이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일까. 아이가 성공한들 부모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했었다.
빌리 아버지 재키의 마지막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였고 실제 내 삶의 절반을 오로지 자녀의 꿈에 바친 나의 인생은 과연 행복할까.
아이를 양육하기 전 내 대답은 "NO"였다. 부모 자식관계이지만, 너는 너의 인생. 나는 나의 인생.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하고 독립 전까지 보살핌을 줘야 할 의무가 있지만, 내 인생 역시 적어도 불행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다시 본 재키의 눈물이 나는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되었다.
비록 부모 이전의 나로서 인생의 원대한 꿈을 이룰 시간은 줄겠지만, 자식을 위한 희생도 기꺼이 기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의 결말이 좋든 나쁘든 감정의 파도를 드러내지 않고 늘 아이에게 괜찮아. 잘했어. 응원하겠지.
지금 내 행복을 위해 희생된 것들에 대해
지금 내가 많은 것들을 이룬 성공한 사회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얻은 자리들이 오로지 내 노력으로만 이룬 것인가 생각해본다. 나는 나보다 부유하고 더 윤택한 환경에서 성장한 친구들에 비해 오로지 내 끈기와 부지런함으로 지금의 자리를 이루었다 자만한 적이 있었다.
부유한 친구의 명함이 나보다 보잘것없다 생각했을 때, 내가 너의 환경이었다면 이 명함보다 더 빛나는 것을 가졌을 테다 착각한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지상에서 우아한 백조로 발레 한 빌리 뒤에 지하에서 노동한 아버지와 형이 있었듯이
나 역시 내가 이룬 것들의 이면에 내 부모와 내 가족의 희생이 있었고 조금의 운도 따랐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물론 내 노력이 컸겠지만, 그 노력을 온전히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노동의 힘듦을 겪지 않아도 될 환경에 내가 태어났고, 대학교 방학 때 다음 학기 등록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기업 인턴 프로그램에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교 4학년 졸업반 시절, 이력서와 자소서의 패배가 이어진 처절했던 현실 속에서도 나는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을 기준으로 도전했었지 연봉에 그 기준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내가 스스로 신념이 있고, 인간적으로 성숙하다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어지거나 매달 월세가 없고, 차비가 없는 궁핍한 현실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 혼자 잘났다' 미성숙한 내 이십 대의 이면에 우직하게 출근한 내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다.
과연 나의 크고 작은 성공이 나만의 것인지, 그 이면에 나의 영광을 위해 희생된 것들은 없는지.
성공의 기쁨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문득 나의 성공이 정당한 것인지, 내 성공으로 인해 주변에 희생된 것은 없는지 가끔 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훗날 내가 "재키"가 되고 우리 아이가 "빌리"가 된다면. 나는 내 인생을 끝났다는 표현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내 개인의 영광을 위한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은 줄고 자녀의 꿈을 위해 하기 싫고 힘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겠지만. 그것을 내 인생이 끝났다기보다 새로운 부모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기쁘게 하고 싶다. 우리 부부가 고된 시간을 보내겠지만 적어도 "빌리"처럼 본인이 할 때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자유로워지는 무언가를 찾았다면 그것 만으로 기쁘게 기꺼이 부부의 시간들을 바칠 것이다.
그리고 하나 간절히 기도한다면, 아이의 끝이 비록 성공의 해피엔딩이 안되더라도 절망하고 원망하지 않기를. 그 아이에게 우리 모두 긴 마라톤을 하느라 수고했노라고 서로 손뼉 쳐줄 수 있는 멋진 부모, 멋진 어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