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마치고 각자 집으로 가서 가방 두고 일심 놀이터에 만나자. 시간은 가방만 두고 바로 다 나오는 거야.
"엄마 나 왔어. 용돈 줘."
그러면 엄마가 숙제는 언제 할 거야 하면서 동전지갑에서 또르르 300원을 꺼내 주셨다.
주머니에 넣으면 빠질까 한 손에 동전을 꼭 지고 일심 놀이터로 갔다.
그 시절엔 휴대폰도 없고 손목시계도 잘 끼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보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것인지. 놀이터에서 눈감고 잡기 놀이도 하다 비 온 다음날이면 모래성도 만들고,
200원에서 500원까지 각자 집마다 다른 용돈을 가지고 문방구에 들어간다.
나는 300원이니깐 오늘은 아폴로 한 봉지랑 꾀돌이 한 봉지랑 밭두렁 한 봉지 사야지.
나는 오늘 떡꼬치 300원짜리랑 콘 아이스크림 2단 먹을 거야.
다양한 금액만큼 쓰임새도 다 달랐다.
용돈 없이 놀이터에 나온 친구에게 굳이 용돈의 행방을 묻지 않고 각자 한입, 과자 반봉지씩 부어주었다.
어때 할머니가 용돈 못주셔도 우리가 한입씩 주니 똑같지? 내일도 용돈 없이 나오는 사람 있으면 또 한입씩 나눠주자.
지금은 3만 원에도 부족하다 느껴지지만 그땐 300원으로 요리조리 알차게 사용했다.
어른이 된 후 엄마에게 용돈 없이 늘 놀이터에 왔던 친구가 가정환경이 어려웠다는 것을 들었지만
당시엔 누구도 묻지 않았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 가정환경은 상관없었다. 내 손에 있는 것을 조금 나눠주면 되는 것이고 친구라면 더치페이는 우정에 반하는 일 같았다.
오늘은 내 것이 많으니 너도 줄게. 내일은 내 것이 적으니 네 것을 한 입만 줘.
그러다 어스름해지면 여름날 모기 차가 왔다.
트럭에 달린 대포에서 하얀 연기가 나면 그 많던 친구들도 모두 사라지고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코뿔소야. 여기 있어. 여기야."
뿌연 연기 속에 철저히 혼자가 된 기분이지만 한 발자국만 앞으로 가면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안심되는 불확실성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이루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연기 속에 있었던 친구들과 같았다면 힘든 과정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텐데. 연기가 무섭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한 발자국 앞에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불안하게 만든다. 연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없다면 어쩌지.
모기 차가 지나가고 꿈같은 연기도 사라지면 친구들은 항상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것 봐. 하나도 겁낼 것 없지? 우리는 항상 여기에 있어. 다들 평화롭고 안심되는 얼굴들이다.
매일 다른 누군가 먼저 말한다.
"나. 저녁 먹으러 가야 해."
너도 나도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계단을 즐겁게 오르며 현관문을 열면 정돈된 집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엄마가 모기 차 따라다니지 말랬지. 또 늦게 들어오네. 손 씻고 발 씻고 밥 먹어. 엄마는 싱크대에 서서 재촉한다.
식탁에 앉아 있으면 아빠 발소리가 현관문 밖 계단에 울린다.
엄마 오늘은 내가 가위바위보 계속 이겨서 술래 한 번도 안 했어. 가영이가 따라오지 못해서 울었어. 준혁이가 오늘 아이스크림 나눠줬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 늘 행복하다는 듯이 흥분해서 말하다 보면
입 안에 밥 넣고 말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차분히 말했다.
하늘로 붕 떠있던 내 몸이 식탁의자로 가라앉는다.
당연하게 이어지는 똑같은 일상이었지만 지겹지 않았고 늘 나는 안심되게 만드는 일과였다.
그때 고무줄놀이, 팽이 놀이하던 친구들을 성인이 되어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궁금하지 않았던 그 친구의 주변들만 서로 묻고 답하다 헤어졌다.
나 어느 학교 다녀. 지금 서울에 있어. 아버지는 지금 어디 다니셔. 그 애는 지금 해외에 있대.
만나지 않은 공백이 커서 지금껏 살아온 주변에 대해 서로 설명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뭔가 헛헛했다.
어릴 적은 달콤한 코카콜라처럼 서로의 관계가 달짝지근했는데 이젠 쌉쌀한 맥주의 맛이 입안에 도는 것 같았다. 이것이 어른의 냄새이고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너, 나 말고 이외에 관심 없던 우리였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만 제외하고 말하고 있다.
괜히 강하고, 행복한 척을 했다.
돌아가는 버스 안, 창 밖에 흔들리는 조명을 보면서 내 지금의 어른도 사실 비틀거리는 중이라고 말할걸.
어릴 적엔 너희와 함께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어른이 된 지금 매사에 의심 많고, 누구를 만나도 마음을 모두 맡기지 못한다고 말할 걸. 그래서 가끔 방역차를 보면 그때 우리가 생각나서 마음도 눈도 시큰할 때가 있었노라 솔직하게 말하고 올걸.
순수하게 과자를 나눠줬던 아이가 지금은 다른 친구의 옷을 지적하고 농담 소재로 선을 넘는 걸 보니 그 아이의 지금껏 시간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원래 그 아이였는데 보는 내가 변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화가 중간중간 끊어져 어색한 입김이 서로를 스쳐갈 때 그러니 너희 주변 말고 너희는 정작 어떻게 지내냐? 용기 내서 물어볼걸. 너희의 지금은 행복하냐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냐고.
다른 누구도, 무엇도 궁금치 않고 상관없다. 너희만 잘 지내고 있다면 된다. 마음을 전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나만 어설픈 어른 티를 내는 것 같아서 괜히 성숙한 현대인이 된 것처럼 연기했다.
어둑해진 식당 골목 아래서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면서 헤어지는데 앞으로 이 번호를 누를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피천득'의 '인연' 중에 한 소절이 자꾸 입안에 맴돌았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때 모두 만난 후 우리들은 십 년 넘게 만난 적이 없다. 휴대폰, 손목시계 없이도 정확한 시간에 일심 놀이터에서 만났던 우리였는데 더 편리한 수단들도 늘었지만 그 이후 모두 모인 적은 없었다. 나도 그랬듯이 아이들 모두 아마 피천득 '인연'의 구절 같은 마음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어른이 된 이후 그 전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서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근근이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은 고된 일상이지만, 예전에 빛나던 추억을 한 알씩 꺼내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간다. 가끔 추억 속의 장소나, 음식, 사람들을 시간이 흘러간 후 마주했을 때 반가움과 미묘한 실망함이 섞인 감정을 겪게 된다. 추억 속의 사람들도 변했겠지만, 결국 그때의 나도 이미 사라졌기에 우리는 늘 변한 나보다 상대를 탓한다.
오늘이 유난히 힘들고, 지칠 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버거운 오늘 하루도 시간이 지난 후 내가 빛나는 추억 한 알로 꺼내 볼 날이 올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도 특별한 일 없던 것들이 결국 힘들 때 꺼내보는 소중한 기억이 되었듯이 오늘 하루도 그런 날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아무 사건 없이 늘 잔잔하게 흘러가는 오늘 하루지만, 쌓이다 보면 결국 이러한 오늘도 빛나는 한 알로 포장되어 있을지 모른다.
하찮은 시간도 없고, 하찮은 사람도 없다. 오늘도 묵묵히 어제와 같은 시간을 걸어간다. 노인이 되었을 때 시간 내어 꺼내볼 추억들을 잔뜩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