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66사이즈가 어때서?
- 행복은 몸무게순이 아니잖아요.
<오늘의 메뉴>
블루베리베이글, 크림치즈, 아이스 카페라테
물만 먹어도 살찌는 사람들. 다들 물을 살찔 만큼 먹었겠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같은 양을 먹어도 2배로 살찌는 체질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편식하고 밥을 안 먹어 난리지만, 우리 엄만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밥그릇을 들고 애달프게 아이들을 쫓아다닌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입맛이 없어 못 먹겠어.'라는 말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남매가 비만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회적으로 뚱뚱하고 못생김을 이해받을 수 있는 고3 수험생 시절을 제외하곤 표준체중보다 더 낮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그건 어릴 적부터 학습과 훈련에 의한 결과였다.
저녁 식사 후 과일 디저트도 매일 먹지 않았고, 가끔 엄마가 용돈 300원으로 칼로리가 많은 떡꼬치를 사 먹는지 아파트 5층에서 매의 눈으로 보던 일도 있었다.
보통은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못 먹으면 서러움의 기억으로 남는다던데 난 오히려 엄마가 나를 관리하고 있다. 엄마가 나의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관심 가져주고 있다고 여겼다. 인스턴트 햄버거나 치킨도 특별한 날만.
고기반찬보다 우리 집 식탁은 대부분 나물과 생선구이였다. 감자튀김도 에어 프라기가 없던 시절 직접 프라이팬에 기름을 최소한으로 만들어주셨다. (맛은...... 너무 건강한 맛이었다.)
야채샐러드 소스도 직접 만들어 주셨다. (급식에 나오는 소스들은 천상의 맛이었다.)
신기한 건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도 많이 먹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더치페이로 친구들과 뭔가 먹으러 갈 때 친구들은 서로 "코뿔소랑 같은 테이블"을 외쳤다. 고3 때 반고개 무침회를 먹으러 가는데 서로 나랑 같은 테이블에 앉겠다고 두 명이 싸운 일도 있었다. (결국 나보고 선택하라며 난감했었지)
난 같은 돈은 내고 적게 먹는 아주 좋은 친구였다. 지금 갑상선 저하증(항진증과 다르게 살이 살찌고 잘 붓는다.) 약을 먹고 있지만 임신 전까지 내 갑상선은 아주 정상이었기에 타고난 체질의 탓도 있는 듯하다.
44,55 사이즈에 대한 강박증
남편과 연애 시절까지 나는 다이어트를 항상 했다. 웬만한 음식의 칼로리를 알고 있었고 음식을 먹으면서 대충 계산도 했다. 퇴근 후 내 방 안에서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는 나의 다이어트 동반자였다. (이소라 언니만큼 효과적인 비디오는 못 봤다)
남들이 보기엔 피곤해 보이겠지만 그 과정이 모두 내겐 당시에 즐거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체중계에 올라 체중을 체크하면서 유지했다는 성취감은 즐거움이었다. 사회적 시선을 내가 감히 도전하기엔 소심했고, 그것에 맞추기 위해 절제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성취감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이런 노력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44 사이즈였겠군 하겠지만, 난 55 사이즈 초반을 유지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44 사이즈에 가본 일 말고 대부분 55 사이즈 (키 159에 49-50킬로그램/ 사회적 사이즈 정의가 그러하다)를 겨우 유지했다.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옷을 입을 때 기존 사이즈가 뭔가 작아진 것을 느끼면 우울했다. 기존 입던 사이즈가 헐렁해지면 괜히 뿌듯하고 행복해졌다.
옷의 사이즈에 따라 내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과정을 깨달으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임신과 함께 찾아온 66 사이즈
임신을 하면서 야식도 식사도 맘껏 했다. 자기 전 먹는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예전에 정말 먹고 싶어서 1시간 고민하다 겨우 반개를 끓여먹고 잠자리에 누운 날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깟 라면 하나 못 참다니 너라는 인간은 참 쓸모없구나. 이상한 논리에 빠져 나를 못난 인간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니 대부분 먹을 것을 더 권했다. 그리고 뭔가 사회적 시선이 임산부에게 몸의 사이즈에 대한 잣대가 너그러웠다. 하지만 기존의 습관이 남아 만삭까지 딱 11킬로그램이 증가했었다. 병원에서는 바람직하다 하셨지만 (당뇨나 여러 질병이 올 수 있어서) 그것도 아무리 임산부지만 77 사이즈로 갈 순 없단 내 의지였다.
출산 후 생활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일주일 만에 3킬로그램을 뺐다. 직급이 있으신 간호사 선생님이 방으로 찾아왔다. 왜 저녁을 거이 안 먹죠? 매일 식사 입장하면서 서명했던 일이 산모가 식사를 하는지 체크하는 용도일 줄 몰랐다. 수유 콜이 식사시간에 많이 와서 그랬다고 핑계를 되었지만 주의를 들었다. 집에 와서 적막한 집안에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와 단 둘이 남겨지는 일은 직장을 처음 들어가서 업무에 적응하는 일과 같았다.
다이어트보단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로 식욕이 저하되었다.
왜 어제보다 15ml 덜 먹는 거야?
왜 어제보다 소변 양이 줄었지?
왜 어제보다 낮잠 시간이 줄어드는 거지?
우유도 줬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안아주는데 너는 왜 끊임없이 우는 거야?
요즘은 강아지 의사소통 기계도 있다던데 왜 아기 의사소통 기계는 발명되지 않은 건지 답답했다.
직장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스트레스만큼 살도 빠졌고, 내심 다행이다 안도했다.
과연 너 자체로도 빛나는 존재라고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아이가 낮잠을 자면 육아 서적을 틈틈이 읽었다. 대부분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너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끊임없이 알려주라고 되어있었다.
그때부터 조금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가 55 사이즈를 유지할 때만 사랑스러운 존재 같았다. 조금 마음을 놓고 몸무게가 1킬로그램이라도 늘어난 날에는 하찮고, 식욕 하나 제대로 통제 못하는 못난 인간 같았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요즘 어떤 사회적 이슈를 관심있는지 보다 무엇을 입고, 외모가 어떠한지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내면은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야만 알려줄 수 있지만 외모는 신속하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과연 아이에게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가르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사회의 시선에 너를 맞추며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비록 나는 그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우리 같이 잘못된 사회적 잣대는 무시하고 용감하게 살아가자 말해야 하는 것일까.
나 조차도 55 사이즈가 아니면 나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는데,
과연 아이에게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이 있든 너 자체로 빛나는 존재라고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어쩌면 핑계일 수 있는 지금의 66 사이즈
요즘의 나의 사이즈에 고백하자면, 66 사이즈이다. 예전에 입던 옷 브랜드는 이제 과거가 되어버렸고 그때 입던 옷들은 과감히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구매하는 브랜드도 스타일도 확실히 바뀌었고, 옷의 색도 대부분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미용실에 가서 원하는 스타일 사진을 보여주면 나도 모르게 첫마디가
"이 머리 얼굴 뚱뚱해 보일까요?"
완전히 나를 나대로 사랑하기엔 지금껏 훈련된 시간이 길어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이 아침마다 하찮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동을 하며 다이어트보다 근력 키우기 위주로 하고 있고 확실히 체력이 늘었다. 짧은 원피스나 반바지를 입기엔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보지 언제 해보냐 식으로 머리도 옷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도 한다. (세상에 이런 일에 제보되지 않을 만큼 범위에서......)
기존의 몸무게보다 확실히 늘어서 출산 후에도 몰랐던 무릎, 허리 통증이 생기는 것을 보니 건강을 위해 단 3킬로그램 정도는 감량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다. 너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고, 너의 모습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에서 과감히 버리라고. 그런 사람들까지 데리고 가기엔 이 인생의 길이 무척 짧다고.
미미와 쥬쥬는 44 사이즈, 토토는 180센티미터였다
어릴 적 디즈니 만화를 보고 미미와 쥬쥬, 토토 인행 놀이는 하면서 막연히 인간의 기본 사이즈는 이 캐릭터들과 같아야 한다고 학습된 것 같다. 물론 그 시대에는 장난감, 미디어의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 부모님은 아무 생각 없이 우리에게 늘 제공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 학습된 시작이라 생각한다.
20살. 어른이 되면, 수능을 치면 미미와 쥬쥬 사이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토토 같은 (180센티) 남자 친구가 생길 줄 알았다. 내가 미미, 쥬쥬가 아녔으니, 대학 생활에 토토를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세상 모두 44.55 사이즈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외적인 요소에 관심이 누구보다 많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세상 즐거움이라 여긴다면 그것 역시 맞다.
하지만 나처럼 행복인 줄 착각하고, 내가 정한 외적 범위에서 벗어나면 지옥의 감정이 든다면 뭔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보이는 모습에 크게 관심 갖지 말자. 가끔 아이 엄마들을 만나면
누구 엄마가 너무 짧은 치마를 입더라.
누구 엄마 머리 색깔이 연예인처럼 다니더라.
누구 엄마 살 좀 빼야겠더라.
늘 평가하고 지적한다. 어쩔 땐 나도 모르게 '무슨 상관이에요? 본인의 자유죠.' 하려다 왕따가 될 것 같아 꾹꾹 누르지만, 스스로 나 자신도 보살피기 바쁜 현대 사회에, 굳이 불필요한 관심을 갖지 말자.
지하철 역이나 버스에서 장애인이 보이면 나는 '용감하게 도와드릴까요?' 하는 편이다. 예전에 같이 길가던 친구가 '좀 가만있어 줄래? 옆에서 주목받는 거 창피해.' 한 적도 있지만,
사회적 시선에 맞설 용기는 없는 소심한 고라니지만, 이런 용기를 가끔 나도 모르게 내 입이 먼저 나온다.
아이가 나랑 길을 가다 몸이 불편한 분을 만났는데
"엄마. 이상해. 나랑 모습이 달라." 했다.
그냥 조금 다른 거지 이상한 거 아냐. 엄마도 아빠도 너도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려 저 분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어.
"그럼 친구 중에 저렇게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해?"
힘들어 보일 때 도와줄까 물어보고 그렇게 해달라면 도와줘. 아니라면 너도 도와주지 않아도 돼. 그리고 지금처럼 막 쳐다보지 마. 우리랑 다른 게 아니니깐 너도 누가 빤히 보면 어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 이제 안쳐다볼께."
어릴 적 동네 친구 중에 하나가 엄마가 청각장애인이셔서 수화를 하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집에 와서
"엄마.ㅇㅇ이 수화할 수 있어. 걔네 엄마가 안 들리고 말도 못 하신대."
엄마가 그때 말했다.
"와. 걔는 대단하다. 한국말 말고도 다른 언어도 할 줄 아는 거잖아. 멋지네. 친하게 지내라."
가끔 몸이 불편하신 분을 만나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불편함을 표현할 것 같으면 그때 엄마 말을 떠올린다.
내면이 따뜻하고 굳건한 사람
결혼 전에 친구들과 인격은 더럽고, 성격, 취향도 맞지 않지만 외모는 '공유'(공유씨 죄송합니다)라면, 내적인 면은 나랑 찰떡인데 꼴뚜기 오징어 라면 뭘 택하겠냐 가볍게 농담 삼아 말한 일이 있다.
그땐 전부 '공유'라면 뭐든 용서하겠다. 범죄자만 아니면 했지만
조금 지나 보니 결국 남는 건 사람의 내면이었다. 까마득한 학창 시절에도 친구의 외적인 모습보다, 그 친구의 따뜻한 마음, 말 한마디가 더 선명한 것처럼.
누군가의 외모보다 그, 그녀와 함께한 이야기, 시간, 가치관이 더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는 걸 보면 결국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사람의 속이었다.
그리고 가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의 사람이 아닌, 어떤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될까 궁금할 때가 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어떤 불의를 보았을 때 외롭지만 혼자라도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으면 참 좋겠다.
그들의 기억 속에 화려한 장미로 선명하게 남진 못하겠지만, 따뜻한 들꽃 같이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로 기억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