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우아한 밥벌이

- 밥벌이의 지겨움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호두과자, 엄마표 약밥, 아이스 아메리카노


어릴 적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우먼'들의 밥벌이는 참으로 우아하고 고상해 보였다. 그녀들은 야근을 해도 화장이 뜨지 않았고 머리 역시 아침 출근길의 손질이 고정되어 있었다. 업무에 있어서도 과감하고,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일하는 내내 평정심을 유지했다.

어떤 악성 고객, 내부 찌질이를 만나도 용감하고 결단력 있게 그들을 멋있게 제압했다.

직업에 대한 현실적 방법을 따지지 않고 막연히 장래희망을 꿈꿨던 어린 나는 직업 관계없이 백조 같은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세상에 우아한 밥벌이가 존재할까?

나는 대학 시절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순수 4대 보험 가입된 취직을 떠올려 본다면 1달간 머문 직장을 포함해 다섯 가지 직종을 경험해봤다.

출판사, 대학교 교직원, 회사 회계팀, 공공기관, 공무원.

세상 모든 직장과 직종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그 어느 것도 우아하고 고상한 밥벌이는 없었다. 대학 시절 신문기자 인턴도 드라마 여주인공은 경찰서에서 며칠을 대기해도 아름답더구먼 실상은 발이 퉁퉁 붓고 취재하다 내 카메라가 던져지고 욕 듣는 일이 허다했다. 아무리 '진실'로 취재하고 '사실' 전달을 위해 기사를 만들어도, 독자들의 취향과 주목받는 정도에 따라 며칠을 쓴 기사는 지면에 올라가지 못했다. 신기한 건 정말 진실로 취재한 기사도 "정말 최선이야? 정말 사실이야?" 이 물음에 순간 의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마감이 다가오면 2주 전부터 주말 없이 일해야 했고 나중엔 글자인지, 그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얼굴은 퉁퉁 부었고, 나름 아침마다 취미로 한 화장도 마감 시즌엔 그냥 사치였다.

인쇄공장에 넘긴 원고가 내가 부탁한 대로 나오지 않아 현장 반장님과 실랑이하는 일도 전혀 우아하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조카처럼 친절하게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진짜 날 어린 조카처럼 대하시면서 대화는 전투적으로 변했다.

예쁘게 일하고 싶은데. 고상하고 우아하게 일하고 싶은데 실상은 책상에 앉는 순간 전투준비태세다.


오늘도 다 덤벼라. 내가 방어하고 공격해주겠다.

원고 마감 못 맞춘다는 작가, 기간 지났는데 수강신청 시스템 열어라는 학생, 본인이 틀린 장부 내가 했다고 우기는 내부 직원, 매뉴얼에 벗어나는데 지원금 내놓으라는 민원인.

점점 눈빛은 사나워지고, 말투는 더욱더 간결해진다. 우리 기관의 지원금은 안되더라도 다른 기관에 이런 지원금이 있다더라 알아보셔라 했는 말도 결국 본인의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며 욕하는 사람들을 보니,

친절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해. 오지랖 부리지 말고......


사회초년생 때 한 직장 사수가 내게 조언한 것이었다. 친절하지 말고, 열심히 하지 마. 그냥 잘해. 결과가 좋으면 너의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아.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아직도 가끔 민원인에게 오지랖을 부리지만, 더러는 내가 잊힐 만큼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전화로 그때 친절한 안내로 다른 지원금은 대상이 되어 감사히 받고 있다고 인사 전하시는 경우도 있다.

1000명 중 1명?

미약한 확률로 따지면 나의 수고는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오지랖이지만, 예전 사수가 말했던 처럼 친절하고 오지랖 부리고 결과까지 좋도록 노력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치열하고 예민해진다.

옷 사입은 것도 좋아하던 나는 어느새 의자 앉을 때 편한 옷, 내가 위의 층을 급하게 계단으로 뛰어다닐 때 운동복처럼 활동이 자유로운 복장. 그럼에도 회사 분위기에 어긋나지 않는 복장.

어느새 옷장의 옷도 대부분 무채색의 정장 바지와, 낙낙한 셔츠가 대부분이다.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 높은 구두 신고 야근, 특근, 출장까지 잘만 다니던 그녀들을 미디어에서 보고 자랐던 나는 뭔가 당시의 매체의 '커리어우먼'들이 현실 고증을 잘못했던 것인지, 협찬과 광고, 제작비 사이에서 정해진 모습이었는지 가끔 생각해본다.


밥벌이는 지겹고 우아하지 않다


예전에 남편과 내가 언제까지 경제활동을 해야 할까.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물론 이제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물어야 하는 시대지만, 이 놈의 지긋한 밥벌이의 활동을 몇 살 까지 해야 더 이상 월요일이 매번 끔찍하지 않을 까. 처음엔 우리가 최고 관리자 자리에 올라가면. 이란 답을 했지만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부럽던 윗자리가 국물용 며르치처럼 버려지는 것을 보면 그들의 밥벌이도 결코 아름답진 않았다.

로또가 당첨이 되어 건물을 사고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자동으로 나오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지겨운 밥벌이 행위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겠지만 그건 이번 생에 불가능이라고 본다.

우리 부부는 이 시대에 주식, 코인, 일체 다른 투자 없이 저축만 하는 일개미형 인간들로 로또 역시 일 년에 한두 번 살까 말 까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용


그렇다면 지겹고 우아하지 않은 밥벌이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에서는 자아실현, 사회적 역할 분담, 역량 발휘라고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아마 대부분은 생계의 유지일 테다.

나 역시 현재 육아휴직으로 월급이 예전 같지 않으니 소비생활이 위축되었고 매달 고정비용이 팍팍하게 돌아가는 기분이다.

물론 적응하면 살 수 있겠지만 좀 더 풍족(?)하던 예전이 그립기도 하다. 당시의 노동의 힘듦이 현재의 팍팍함에 잊히는 것도 참 대단한 건망증이다.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신 선생님께서 나에게 앞으로 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좋겠다. 하신 적이 있다. 처음에 지금 날 놀리나. 했는데

몇 년 후 아침에 눈을 뜨고 할 일이 없다면 얼마나 적적하겠냐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가 있다는 것은 참 안심되는 일이라고 하셨다. 갈 곳이 없다는 건 곧 쓸모없어지는 인생이 아니겠냐 씁쓸하게 말씀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돈벌이 말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할 뻔했다.

하루는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던 책도 실컷 읽고, 하루는 집 마당에 꽃을 심고 가꾸기도 하고, 하루는 친구와 만나 요즘 사는 이야기도 하면 24시간은 내게 짧을 것이다. 어느 날 백발노인이 된다면 지나온 길에 저지른 잘못을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며 반성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은 적어도 죄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

아무튼 현재 나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보험료, 공과금, 통신비 등을 위해 지겨운 밥벌이를 하는 중이며, 그것을 지불한 나머지 금액에서 적어도 사직서를 내지 않기 위해 매달 소소한 재미에 지불하며 근근이 이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일에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일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한다. 남편과 내가 농담처럼 '관 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열심히 벌어주시오' 서로 말하는 것처럼 특별한 일이(로또, 상속 등) 일어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일을 하며 임금을 받고 그것으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인간은 시작부터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동은 필수였던 존재였다. 예전엔 끊임없이 열매를 따고,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며 늙어 기력이 쇠하는 순간까지 의식주를 위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 결국 무리를 만들어 생활하게 되고 젊은 사람이 노인의 의식주를 도와주고 그가 노인이 되면 다음 젊은 세대에게 기대어 생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노동을 기쁘게 행복하게 하려면 아마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복지와 안전이 우선이 되고 직업의 귀천이 없는 인식이 퍼져야 하겠으나 지금 당장은 내게 어려운 일이고,

개인적으로 나는 매일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내 이름 석자 코뿔소로 돌아가는 그 세계를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최면을 건다. 행복하다. 나는 출근길이 행복하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누구 딸이 아니고, 그리고 흔히 불리는 아줌마 말고,

내 이름 석자를 목에 걸고 일을 처리를 하는 서류에도 기안자에 내 이름을 새겨 올린다.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나 코뿔소가 만든 보고서입니다. 제가 기안했고 제가 책임집니다.


저마다의 별 것 아닌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일의 행복이라고 본인을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전 같은 1교시였던 수학보다 자습시간이 더 짧게 지나간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하는 노동의 시간이라면 적어도 스스로 최면을 걸어 즐거운 곳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큰 가치가 아니라도, 내 노동의 대가는 내 아이의 풍족한 배움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몇십 년 후 내가 바라는 자동차나 집이나 어떤 대상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저마다 노동의 의미가 거창할 필요 없고 도덕책 구절처럼 반듯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 노동의 시간이 조금 가벼워진다면, 출근길의 발걸음이 적어도 고통스럽지만 않다면 어떤 의미가 있든 가치 있는 것이다.


결국 밥벌이도 내 인생의 작은 일부


결국은 직장도 내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 휴직을 내기 전 몸이 건강했던 나에겐 적어도 직장이 일이 내 인생에 전부였다. 그곳의 인간관계, 그곳의 일이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결국 회사를 가지 않는 내 주말의 인생도 비극이 되었다. 휴일의 내 삶까지 직장생활이 영향을 주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의 비중이 조금 작아졌지만, 나는 다른 부서에서 기혼자인 줄 몰랐다는 소리를 종종 들으며 일에 열성적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개인의 가치관이고 자유지만, 나에겐 조금 후회되는 부분이다. 당장의 열심히로 얻은 만족감은 컸지만 그것을 위해 희생한 나 스스로의 작은 행복들은 너무 많았다.

건강도 그것 중에 하나이겠지만 결국 나는 노동의 기쁨을 찾기도 전에 지쳐버렸고, 좀 더 즐거움이 될 수도 있었던 숭고한 노동이 밥벌이의 지겨움으로 퇴색되었다.

각자의 밥벌이 시간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길게 남았다는 것은 힘 빠지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의 위기가 긴 시간 속에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이 곳이 내 마지막 밥벌이 공간이 아닐 수 있다. 날 괴롭게 하는 밥벌이 장소의 파트너도 내 마지막 사람이 아니라 그냥 스치는 인연일 수 있다. 그러니 크게 의미 부여하지 말고, 크게 상심하지 말자.

앞으로 밥벌이의 터널은 오래도록 이어질 예정이니 충분히 다른 터널로 바꿀 수도 있고, 지금 걷는 터널보다 더 좋은 곳이 곧 나타날 수 있다.

밥벌이의 행위는 지겹고, 우아하지 않지만 그것 역시 스스로가 어떤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따라 즐거움은 달라질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매일매일 이어지지 않겠지만, 밥벌이가 지겨워지지 않도록 나의 마음도 잘 보살피며 일해야 한다. 우리가 영원토록 반복해야 하는 출근길이 적어도 고통스럽진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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