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깊이에의 강요
- 깊이는 결국 취향의 문제 아닙니까.
<오늘의 메뉴>
사과, 바나나, 노동 커피
예전 한 교수님께서 내 과제 글을 읽으시곤 건조하게 "글이 좋네요. 그런데 다 가벼워요." 그러셨다. 문득 그전에 어디 글을 평가받는 자리에서 잘 읽히고 재미는 있는데 거기까지. 깊이가 없다. 꼭 지금 통과해야만 작가는 아니니깐 앞으로 애써보라고. 친절한 거절의 대답이 떠올랐다.
당시 주변 친구들, 가족들이 너 글 재미있다. 너의 싸이월드 새 글 보는 재미로 요즘 지내.
그 말들이 그냥 거짓말같이 느껴진 순간이었다. 가볍다. 깊이가 없다.
내 글은 생각해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특별한 시선이 없다. 특별한 소재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별로 없다. 내 삶 자체가 지극히 평범해서 그런가. 문득 내가 걸어온 길이 문제인가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께서 내 글이 가볍다 말했을 때도, 그전에 다른 분의 깊이가 없단 말을 사실 들었을 때도, 상심하진 않았다. 실망은 했지만 거기까지. 내 능력을 의심하고, 내 자질을 폄하하진 않았다.
솔직히 그 오래전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읽었던 후였다.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나는 이 두 사람의 솔직한 평가에 한 동안 동굴 속에 들어가 당분간 글쓰기 작업은 하지 않았을 테지.
작품의 깊이가 없다고 평가받던 한 예술가가 자살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살한 후 그녀의 작품에 깊이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고등학생 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분량은 짧았지만 개인적으로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처음 내 글 쓰는 취미를 외부적으로 꺼내신 분이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남들은 쓰기 싫었던 일기가 내겐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방학 때 일기를 미뤄뒀다 쓰는 남동생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일기장 공책 분량이 항상 적게 느껴졌다. 내 하루는 평범하고 남들과 같은 24시간이었지만, 만화영화 한 편을 봐도 일기장에 하고 싶은 말은 5장을 채울 수 있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지만, 6학년 한 해동안 쓴 일기장이 6권 넘게 털실로 이어져있다. 어쩔 땐 영화 감상을, 독서 감상문을 쓰면서 나랑 대입시키기도 했고, 어떤 날은 1학년으로 돌아가 그림일기로 만들어 서툰 그림도 넣어두기도 했었다. 감명 깊게 본 영화에 대해 일기를 쓰는 날엔 그 영화의 엽서도 일기장에 같이 붙여두기도 했었다. 성적표랑 관계없는 일기에 나는 엄청 열정적인 작가이자, 편집자였다.
한 번은 시험기간에 일기를 너무 공드려 쓰는 내게 엄마가 쓴소리를 하신 적도 있었다. 내 기억에 당시 우리 학교에 교육청에서 직급이 높으신 분이 학교에 방문을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친구들 작품 중에 내 일기장을 전시해두라 하셨다. 만들기, 그림도 아닌데 왜 굳이 공책을?
그 일이 내 글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여준 첫 일이었다. 혹 일기장은 나만의 글인데 너무 개방적으로 보여주면 불쾌하지 않았냐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엄청 신이 났었다. 내 일기는 그냥 비밀스러운 일기장이 아니라 내가 쓰고 편집한 한 권의 책이었다.
그 이후 선생님께서 내가 모르는 다양한 글짓기 대회가 있으니 참가해보라 권유하셨고, 글의 형식과 문법을 알려주셨다. 그냥 재미로 쓰지 말고 운문, 산문, 글에는 다양한 종류가 많으니 배우면서 쓰라고 알려주셨다. 이런저런 형식을 모두 써보다 보면 결국 내가 제일 잘하는 글의 형태가 생길 테니 끊임없이 다양하게 접해보라 알려주셨다.
생각해보면 그분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 큰 행운 중 하나다. 누구나 당연하게 쓰는 아이의 일기장으로 더 큰 세계를 알려주셨고, 결국 내가 아직 이렇다 한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글을 쓰는 작업으로 스스로 위안을 얻는 과정을 얻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 이후 나는 매 학년 '글 좀 잘 쓰는 애', '글짓기 상 좀 받는 애'로 유명했고, 고등학생 때는 차하를 받고 괜히 주변에 뭐 차하라서 별 것 아니야 건방도 좀 떨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교과 선생님들과 유독 친했는데 한 분만 내 글에 부정적이셨다. (솔직한 평을 해주셨는데 어린 맘에 왜 날 미워하지? 불편한 마음에 나도 피했다.)
어느 날 교무실에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코뿔소가 또 상을 탔네요. "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는데 하필 그 국어 선생님이 옆에 계셨다.
"아. 읽어봤어요. 겉 멋에 취해서. 괜히 어려운 단어만 골라 적었더라. 도대체 주제가 뭐냐?"
지금도 그 여름날, 어색했던 고등학교 교무실이 안 잊힌다. 잠시 그 공간에서 할 말을 잊어 창문 밖 매미 소리만 유독 더 크게 들렸던 10초였다. 덩달아 담임선생님께서 내 눈치를 보며,
"아이고. 원래 예술이라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 녀석이 원래 생각이 많습니다."
어색하게 대사 읽듯 말하시며 내게 교실로 가라 손짓하셨다. 그때 나는 19살이었고, 나름 내가 잘났어하는 어린아이였다. 복도를 걷는데 눈물이 조금 날 것 같았다. 주먹을 꾹 쥐고 끝까지 참았다. 두고 봐라.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되어 모교에 오면 선생님한테만 싸인 안 해줘야지. 어린 맘에 분한 숨을 삼키며 식도로 올라오는 용암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를 읽었다. 그때 그 깊이라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각자의 취향에 결정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수학이나 과학은 정답이 있고 점수대로 순위를 매기면 간단하다. 그런데 예술의 순위는 대체 무엇이지. 그 순간 심사위원의 취향으로 결정되는 주관적 영역은 아닌가 어린 맘에 그런 생각이 들었고 결국 괴팍하다 욕했던 국어 선생님을 마음속으로 용서했다. 그래 저 사람의 취향이 나랑 달랐어. 내 글이 저 사람 취향에 안 맞을 뿐이다. 취향이 안 맞았지 내 글이 형편없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더 다듬고 부지런히 더 배우고 훌륭한 작가님들의 책을 더 읽어야지.
하지만 내 글이 쓰레기는 아닌 거야. 그랬다면 여기까지 인정받진 못했겠지. 이 책을 읽고 한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난 자살하지 않아야지. 내 부족함은 인정하고 배우 돼 취향이 안 맞는 사람들의 솔직한 말에 스스로 죽지는 말자. 내 죽음으로 그 사람들의 깊이가 되어주진 말자. 그랬었다.
기차를 타고 엄마와 서울에 한 대학교 백일장에 참석해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엄마와 내가 조금 주눅 들어있었다. 우린 서로 사투리가 입에서 나올까 가만히 대기 중이었는데. 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오늘 소문에 심사위원이 ㅇㅇㅇ작가래. 그 사람은 이런 글 싫어하고 이런 글 좋아해."
나름 충격이었다. 예술만큼은 모두 하얀 도화지에서 오로지 감성으로 승부하는 시험장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정보가 이미 넘쳤다. 아이들의 연습장엔 이미 빼곡히 글이 적혀있었다. 나는 늘 소니 cdp로 음악을 들으며 기차를 타고 백일장 주제 3가지가 나오면 쓰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배로 걸렸다.
내 무기는 기차 안에서 음악 cd를 들으며 한껏 감정적으로 과거의 내 이야기, 부모님의 추억, 슬펐던 이별 그것들을 곱씹었다.
생각해보면 어떤 친구들은 주제가 칠판에 적히자 바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건 이미 연습과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 서울에 대학을 다니던 사촌오빠가 대회장에 데려다주며 한 말이 떠올라 주눅 들었다.
" 기대하지 마.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서울 구경 잘하고 내려가."
결과적으로 운 좋게 나는 이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고, 기차 타려고 대회장 좌석에도 앉지도 않고 엄마랑 뒷문에 서있다 내 이름이 호명되어 신나게 큰 강당을 뛰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내 글이 거절당했을 때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서점에, 블로그에, 브런치에 수많은 사람들의 좋은 문장, 글을 보면 부럽다. 나도 이 문장을 가지고 싶다. 더 배워야지. 더 읽어야지.
하지만 거기까지. 내 능력을 의심하고, 내 글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아. 이번 심사위원님의 취향이 나랑 달랐나 봐. 내가 그분들의 취향에 안 맞았나 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다수의 눈에, 세상 모두의 깊이로 증명되긴 어렵다. 그건 정말 대단하고 부러운 일이다.
모두들 어쩌면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목적에 맞게 살아나가곤 있지만
가끔은 내 능력을 세상이 알아주길 원할 것이다. 내가 하는 행위가 세상의 깊이에 합당한 것으로 증명된다면 내 가치가 더 생길 것이고 내 삶의 의미가 영롱해질 것이라는 믿음.
나 스스로의 만족도 중요하지만 가끔 세상의 기대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내가 값어치를 했구나 하는 감정이 조금씩 있다.
그렇지만 '깊이에의 강요'처럼 나를 해치면서 까지 그들의 깊이가 되어주진 말자. 저마다의 깊이는 다양하고 정의할 순 없다. 안타깝게 그 깊이를 세상이 늦게 알아봐 주거나 결국 나만이 아끼다 잊힐 수도 있지만 세상에 나 하나는 알아주면 된다.
내가 깊이를 증명하고자 고군분투한 시간이 있었고 나보다 깊이를 크게 인정받은 누군가의 모래알만큼의 영감을 줬을지도 모른다.
부지런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눈높이 3장 풀듯이, 이제는 나만의 깊이가 되고자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