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각자의 사정

- 이력서의 공백이 용납 안 되는 사회.

by 꼬마물고기

<모두의 공휴일 아침 메뉴>

어른의 메뉴: 김치 삼겹살 두루치기, 양상추 샐러드, 된장찌개, 양파장아찌

아이의 메뉴: 감자볶음, 우엉조림, 순살치킨


매년 새해는 그다음 학년이 올라가는 때였다. 1-2월은 해당 학년 참고서를 사두고, 친구들과 모여 새 교과서에 좋아하는 연예인 엽서를 붙이고 투명 비닐로 반듯하게 책을 입혔다. 작년엔 무늬가 있는 걸로 해보니 과목명이 보이지 않아 불편했으니 올해는 투명 비닐로 입혀야지. 색깔 있는 비닐로 입혀볼까.

귀찮지만, 즐거운 고민이었다.


친구들과 교보문고, 아트박스, 모닝글로리 매장에서 새 학년 학용품을 사는 일은 언제나 새 출발을 알리는 통과의례였다. 그 당연한 새해가 뭔가 이상하게 변한 것은 수능을 치고 대학 입학을 앞둔 2004년부터였다. 평소보다 아쉽게 점수가 나온 나에게 담임선생님은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운도 실력이라며 지금 대학에 입학하겠다 말씀드렸다. 당시 한 번 더 " 그래도 재수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묻던 엄마한테 1초의 망설임 없이 대학생이 되겠다고 했다. 사실 그럴듯하게 운도 실력이라며 당차게 말했지만 나는 05학번이 될 자신이 없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했고 매년 당연히 학년을 올라왔다. 고등학교 3학년 다음엔 대학교 1학년이었다. 대학교 1학년 말고 다른 인생의 길은 선택할 용기도 없었고 대학교 1학년이 아닌 2004년은 무의미한 것 같았다. 재수를 해서 성적이 더 올라 더 좋은 대학을 가더라도 2004년은 내게 평생 당연한 단계를 벗어난 공식적인 기록이 없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대학을 입학하니 한꺼번에 자유가 막 쏟아졌다. 물론 통금시간의 엄격함이 생겼지만 시간표를 내가 만들 수 있었고, 수업도 첫날 듣고 나랑 맞지 않으면 정정기간에 빼버렸다. 학교 수업 외의 시간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당연하게 입던 교복도 사라지니, 자유 복장을 입는 연습을 해야 했고 내 체형, 내게 맞는 옷의 스타일을 잡지나, 사촌 언니에게 배워야 했다. 교복과 두발 검사 속에서 자유를 외치다 막상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하라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동기들은 1학기 혹은 1학년 후 휴학을 많이 했었다. 해외연수 아니면 공무원 준비였다. 노량진에 간다는 동기들도 있었고, 워킹비자로 호주에 간다는 동기도 생겼다.

큰일이다. 나만 계속 당연하듯 학년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백이 생기는 것도 무서웠지만, 동기들이 당연하게 하는 휴학 단계가 없으니 것도 조바심이 났다. 엄마 지인분들이 집에 오시면 휴학 한번 안 하는 내가 뭔가 특이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휴학이 겁나서가 아니라, 휴학기간 동안 할 일을 못 찾았다.


사실 한 번은 휴학하고 뭔가 나를 더 알아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오직 나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하고 싶었다. 당시 "젊은 날의 선택, 박카스" 국토대장정도 해보고 싶었다.

그냥 현실적인 고민보다 몸으로 땀 흘리고 인간의 나를 알아보고 싶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생각한 직업적 이 꿈이 정말인지. 매년 학년만 올라가다 여유가 없어 내 착각은 아닌지. 나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그런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나중에 이력서 휴학 기간을 넣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 같은 공무원 준비도 이력서의 공백으로 기업에서 싫어하는 만큼, 내 고민의 시간은 더욱더 사회의 눈에 무의미한 시간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 당시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대학 학사경고를 몇 번 맞고 퇴학 후 해외에 나갔다 다른 길로 성공한 인물이 막 쏟아져 나왔다. 그들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은 항상 " 괴짜가 되어라. 꿈을 크게 가져라. 꿈꾸는 자가 세상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었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조금 더 과감해지자. 하다 글 마무리에 그가 우리가 아는 그 기업의 몇 째 아들, 누구의 딸이라고 조그마한 글씨로 적혀있는 것을 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내 마음도 쪼그라졌다.


그 전엔 우리 집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을 부러워한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비록 최고는 아니라도 두 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을 해주셨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더 큰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보니 경제적으로 부유한 애들은 확실히 용감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기업 인턴을 하다 만난 친구는 누가 봐도 명문대였지만,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다며 다시 수능을 보려고 준비 중이랬다. 이미 우리는 3학년을 마치는 중이었다. 이제 수능을 봐서 다시 대학에 간다고? 그럼 대체 그다음 대학을 졸업하면 몇 살이야? 서른 넘지 않아? 반수 하다 오히려 수능이 더 못 나와서 복학해야 하면 그 시간은 어떻게 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걱정이 나오는 내게 그 친구는 오히려

"어때서? 실패하면 그것도 경험이지. 내가 열심히 한 시간은 남겠지."


다 그런 것을 아니지만, 내가 본 (나보다 많이 부유했던) 아이들의 특징은 지금 가는 길을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 이력서의 공백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실패하더라도 경험이고 배움이라 했다. 실패했을 때 사회가 내게 붙이는 평가에 대해 전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부지런히 학년을 올라가던 나도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워킹비자를 준비 중이었고 어학연수였지만, 솔직히 이대로 졸업하면 원하는 기업에 취직이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해외연수는 못 갔지만(내가 마음이 변했다. 가려던 곳에 당시 총기사건이 뉴스에 나왔고(핑계), 접수 기간에 고모도 걱정하신다 엄마가 반대했다.(핑계) 사실 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진심)) 그 공백을 그냥 보내기엔 나는 겁쟁이였다. 기업 인턴 및 프로젝트를 했고 어떤 달은 모든 인턴 프로그램이 떨어져 시커먼 속을 숨기고 봉사활동을 했다. 나중에 면접장에서 몇몇 면접관들이 학기 중에도 했던 인턴 프로그램을 굳이 휴학 때도 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럴듯하게, 미리 다양한 기업 문화를 경험하고 여러 가치관을 접해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답했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다. 내가 아무것도 없었으면 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간호했다고 거짓말이라도 했어야 할 분위기의 시대였다.


도대체 이력서의 공백은 왜 그렇게 궁금해할까. 가족이 아파 옆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간호했을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내 꿈이 이게 맞나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날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가장 아름다운 청춘에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있고 싶어 잠시 휴학했을 수도 있고, 취직 전에 소설 작가가 되어보고자 글을 쓰고 응모했다 떨어져 다시 복학했을 수도 있다.

2학년 다음 3학년이고, 중학교 다음 고등학교 입학이지만,

몸이 아파 도중에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학교와 맞지 않아 다른 배움의 형태로 선택할 수도 있다.

예전 우리 부처에 신입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매년 신입에 비해 나이가 꽤 있으셨다. 사실 나는 신입치고 그분보다 더 나이가 많았지만 다른 곳의 육아휴직 중에 합격한 케이스로 이미 배치 전에 소문이 나서 다들 궁금해하지 않았다. 합격 전 나의 공백은 이미 육아로 사회적 설명이 된 것이다.

다들 대학 졸업 후 5년 동안 무엇을 했냐. 어디 취직해서 일하다 왔냐 물었고 그녀는 5년 동안 시험공부를 해서 드디어 합격 후 배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 아...... 그렇구나."

'아' 하고 멈춘 말의 의미를 모두들 안다. 어느 날 신입 선생님과 내가 둘이 업무를 보다

"제가 좀 늦게 합격했죠? 다들 어디 취직해서 사회생활하다 온 줄 알더라고요. 시간이 아까워요. 그 5년이 제 마지막 20대였고 더 잘 보낼 수 있었는데."

나도 잠시 그들처럼 아...... 하고 말을 멈춘 사람들과 있었지만,

그녀에게 다시 말해줬다. 그 긴 5년 동안 한 눈 팔지 않고 한 길만 걸은 게 얼마나 대단하냐고. 무의미한 시간은 없고 그 5년이 쌓여 지금이 있으니 다음부터 누가 물으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라고 전했다.


우리 사회가 인생의 공백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먼저 말하기 전에 묻지 않았으면 좋겠고 실패의 시간이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물론 타인이 받아준다는 것 자체가 조금 아이러니하다.)

오히려 실패의 시간을 묵묵히 견딘 그에게 열심히 했구나 따뜻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예전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육아하는 남편 친구 부부와 이야기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 했을 때. 나는 아이가 실패해도 전혀 아까운 시간이 되지 않도록 지원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남편 친구 부부가 자식이 원하는 공부를 기꺼이 하고 싶을 만큼 지원할 수 있는 부모와 같은 마음이겠지만, 나는 아이가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기꺼이 탐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 휴학기간을 사회의 눈치 보지 않고 보냈다면 지금 뿌리가 흔들리진 않았을 테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장래희망에 대한 사춘기를 겪지 않았을지 모르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가끔 "누구세요? 낯선 이?" 하지 않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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