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윤동주

-귀하의 뛰어난 역량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모시지 못한 점...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바나나, 샤인 머스켓


한때 교복을 입고 다녔을 땐 문학소녀라는 간질간질한 별명도 있었는데.

시를 읽고, 작가의 생애를 찾아보고,

나름 내 삶을 대단한 작품 마냥 이렇게 살아도 되나.

철학적 시간도 가졌었는데.


그러지 않은 지 몇 년이 되어버렸다.

다행스럽게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고, 효율성을 따지는 현대인으로 성장했고,

슬프게도 나는 지극히 메마르고, 인정 없고, 엄격한 사회인으로 변했다. 성난 민원 전화가 내 마음을 파도치게 만들었지만, 화난 민원의 욕이 내 뿌리를 흔들리게 만들었지만 위태로운 그의 인생이 내게 이렇게 모진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조금의 여유도 생겼다.


요 몇 년은 내가 마치 몇 백 년을 살아온 것처럼 많이 성장한 것 같고, 무뎌진 것 같고,

아니. 사실 그냥 나이만 먹은 것이고,

어떤 재앙, 죽음도 의연하게 지날 수 있을 것 같이 낡아버린 것 같다. 유치원 앞에서 오늘 엄마랑 있고 싶다고 우는 아이를 냉정하게 밀어 넣고 버스 도착 예정시간을 검색하는 모습도 능숙한 워킹맘으로 성장한 좋은 현상인지, 아이의 감정 표현도 기다려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된 것인지 조금 혼란스럽다.


예전에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봄의 첫인사를 눈으로 보면서 별 감정이 들지 않았었다. 화려하지만 찰나의 순간만 존재하는 꽃을 보면서 곧 져서 땅바닥 구정물에 젖을 텐데 열심히 피울 가치가 있나,

마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나 사회가 규정하는 삶의 단계를 밟고 늙어가다 국물용 며르치와 같이 버려지는 한 인생의 과정이 눈꽃 같은 꽃잎 같아 처연하기까지 했다.


대단한 혁명의 한 구성원으로 업적을 이루어야 삶의 마지막 순간이 비록 남들보다 일찍 오더라도 그것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이라 교복 입던 나는 생각해왔었다.


그렇지만 내가 결코 그들처럼 용감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그냥 길거리에 흔한 조연 중 하나라고 깨닫는 순간 내 무대는 초라해지고 좁아지는 것 같다. 한 순간도 시시하게 살지 않았는데.

내 젊은 날도, 결혼도, 아이와의 일상도 결코 시시하게 보낸 적이 없었는데 가끔 이 무대가 특별한 대작은 아닌 것 같아 쓸쓸한 기분도 든다.


스물여덟 해의 삶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다 간 나의 십 대의 등대였던 윤동주와 같은 인생이 내겐 그저 동경으로 끝날 수 있단 생각이 이십 대 처절했던 취업준비생 시절을 지나던 날 더 괴롭게 했었다.

부끄러움 반, 내 초라함의 견딜 수 없는 분노에 한 십 년을 그의 책을 서랍 밑바닥에 묶어두었다.

건드리면 내 전쟁같이 치열한 이십 대 일상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겨 침몰할 것 같았다.


애써 괜찮다. 괜찮다. 아버지가 말한 그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러니 지금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 다독이는 애처로운 탑이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비록 오늘의 면접관이 날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가 30분으로 나의 인생을 불합격자로 판단하는 것은 무척 불합리한 일이지.

하지만 '귀하의 능력은 비록 뛰어났지만'으로 시작되는 친절한 거절의 편지를 받으면 저절로 머리가 땅으로 향하고 마음속에선 열대야가 가득 차 입에선 답답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며칠 동안 위인전처럼 꾸민 내 자소서 1200자가 모두 거짓말로 들통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던 이십 대였다.


낭만은 촌스러움이고, 책도 어릴 적 장래를 정했던 문학도 그냥 지나가는 내 능력의 부족함 같았다. 중년이 되어 어느 날 창고 속, 먼지 묻은 내 학창 시절 수상 문집을 아이가 들고 나와 이게 뭐야? 묻는 날이 오겠지.

서점을 좋아했지만 한동안 올해의 신인, 올해의 등단 코너를 애써 외면했었다. 잠시 몸담은 출판사에서 남의 원고를 받아 오타를 찾는 내 직업이 견딜 수 없었던 이십 대였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작가님 이란 호칭을 상대에게 부르며 그의 기분을 살펴 원고를 받는 일도 당시엔 사춘기 소녀처럼 마음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때였다.


그런 못난 마음이 나 스스로 견딜 수 없어 윤동주 시인은 서랍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아이의 크레파스를 찾다 가장 밑바닥에 깔린 그의 시집이 밤에 잠 못 들게 날 책상 아래 오랫동안 주저앉게 만들었다.

이 사람처럼 인생을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매년 학년이 올라가듯 정해진 단계인 마냥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그런 인생은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다. 십 대의 기준에서 멋지고 폼나는 것을 넘어 정말 어느 누구도 그 처럼 청춘의 한 순간을 찬란하게 살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어린 마음엔 이 사람 글만 봐도 마음이 저릿하고 두 다리가 뜨거워져 곧 벌판으로 달려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반듯한 천장에 활자를 찍어내듯 나의 지나고 있는 이십 년의 인생이 과연 신념과 양심을 지켜 잘 가고 있는가. 앞으로 나의 십 년, 이십 년의 다음 이야기들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조금이라도 그와 같은 삶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답 없는 고민이 꼬인 실타래를 풀 듯이 한 가닥씩 밤을 이어 나갔다.


스물여덟에 별이 되어

70여 년을 넘게 기억되는 이 사람을 다시 만나는 순간

가장 슬펐던 것은 요 몇 년 동안 이 사람처럼 살아야지 했던 바람이 이 사회에서는 참 어렵고 외로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죽었던 나이를 넘어서버린 내 지금은 아주 평범하고 치사하고 초라해졌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인지 안다.

나도, 사람들도 옳고 정당한 답을 모두 알고 있다.

단지 행동할 수 없는 것이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해져 버린 세상이다.


'죽는날까지한점부끄럼이없기를'

열일곱의 내가 참 좋아했던 구절을

서른일곱의 나는 소리 내어 읽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단지 내 아이에게는 어렵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다 알려줘야 한다. 강요할 수 없는 너의 인생이지만 적어도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는 알려줄 의무가 내겐 있다. 나 역시 끊임없이 옳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내 지금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반짝이지 않지만 그래도 무의미하다 생각 들진 않는다. 윤동주의 삶처럼 내가 떠나고 세상에 오래도록 빛나고 있진 않겠지만 적어도 매 순간 치사하게 살진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윤동주처럼 오래 기억되는 삶만 가치 있다고 가르치진 않을 것이다.

윤동주처럼 대단한 인생이 아니라도 모두의 인생이 모여 세상에 정의가 될 수도 있고 신념이 될 수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별 것 아닌 꽃잎들이 수 천, 수억이 모여 찬란한 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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