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자기만의 방

- 반짝일 필요 없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될 필요도 없다.

by 꼬마물고기

<오늘의 메뉴>

돼지고기 등갈비, 육개장, 양파 절임, 잡곡밥


대학생이 되니 뉴스에서 보던 등록금이 피부로 와 닿았다. 대학을 다니며 나의 값비싼 등록금을 그나마 덜 억울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재학 시절 책이나 dvd를 많이 봐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수업 중간 공강이나, 수업이 일찍 마치는 날 나는 dvd실에서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 없던 책을 미리 구입 희망 목록에 올려뒀다 찾으러 갔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도, 오헨리의 미처 유명하지 못한 숨겨진 단편집들도, 개봉하지 못한 크고 작은 영화들도 대학 시절에 모두 접했다. 사회인이 되고, 학생 때 보다 여유가 없다 보니 지금 돌이켜 봐도 그때 접한 책과 영화가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다 버지니아 울프란 작가를 알게 되었는데 '자기만의 방'은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방이 필요하다'


남자 동기가 버지니아 울프 책이 내 가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 너 페미니스트냐?" 했던 기억이 난다. 남녀가 성별을 떠나 모두 같음을 주장하는 게 페미니스트라면 맞는 이야기이고 여성만 우월하다 말한다면 아니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대상을 보고 모두 다르게 느끼듯이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단지 페미니스트에 머무는 작가가 아닌 진정 휴머니스트란 생각을 했었다.

그녀의 작품을 다양하게 보면 여성이 우월하다, 여성을 하대하는 남자들만 비난한 것이 아니라, 장식품으로 남성에 의존해서 사는 여성 역시 비난했다. 단지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은 결혼이 인생의 대부분의 영향을 미치는 때였고 남성의 경제력에 기대어 사는 장식품에 불과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 때문에 의존적인 여성에서 한 인간으로 독립적으로, 주체적으로 살아라 말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 남자든 여자든 본인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라고 말한 작가라고 적어도 나는 느낀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이 나왔을 때 사실 크게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이 영화에 감정이입이 안 되는 내 여성으로서의 삶이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이야기에 별로 동감할 수 없는 걸 보니 내가 정상적인 세상에서 성장했구나 안도했다.

집에서 남동생과 동등하게 성장했고 오히려 맏이에 대한 입지를 부모님은 더 돈독하게 확립시켜 주셨다. 오히려 동생이 가끔 맏이에 밀려 성장했다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물론 친척 어른들이 우리 장손이라며 동생을 나보다 치켜세울 때 속으로 괜찮아요. 여러분들과 같은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니깐요. 몇 시간 후에 가시면 우리 장손은 없고 단지 동생만 남겠지요. 어린 맘에 그랬던 기억도 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부모님은 내게 사주며 동생에게 " 차별하는 게 아니고 여자가 살기 무서운 세상이니 누나 먼저 사주는 거야."

가끔 그때의 휴대폰(스무 살의 자유 TTL, 열다섯에 생긴 첫 휴대폰이었다)이 생각나서 꿀꿀이에게 잘해줘야지 그런 마음이 든다.


" 코뿔소야. 앞으로 네 시대엔 여자 대통령도 생길 거야. 뭐든 할 수 있어."

엄마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게 했던 말이다. 너의 시대엔 여성도 사회에서 일을 해야 한다.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늘 듣던 말이었다.

아빠의 와이셔츠를 저녁에 다림질을 하며

이영애의 '산소 같은 여자' 광고(경호실장 역할을 하며 립스틱을 광고했던, 지금보다 파격적인 '마몽드'였다) 앞에서 너의 시대는 다를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엄마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거나 아빠가 가부장적인 분은 아니셨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특근, 야근이 연속되어 녹초가 되어 아이를 데리러 친정에 가니, 엄마가

"에구. 일한다고 고생이다. 아까운 직장이라 다녀야 하지만, 집에 있는 게 최고지?"

어릴 적 내게 주입시킨(?) 말과 달라 으잉? 했다. 하하.


단지 집 밖을 나서면,

남동생에게 줄 간식이었는데 야자 마치고 내가 먹었다고 혼났어. 과외비 두 명은 힘들다고 남동생만 시켜준대.

여자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내가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었네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첫 회사였던 출판사에서 같은 날 입사한 남자 동기가 나보다 업무적으로 더 책임감 있는 일을 맡을 때도 집 밖엔 알지 못한 이상한 논리가 많군 했었다.


대학시절.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페미니스트라기보다 성별을 초월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라. 인간은 누구나 돈과 자기만의 독립적 방이 필요하고, 노동으로서 누군가에게 의존적으로 살지 마라. 내게 끊임없이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결혼할 때 남편에게 나한테 행복하게 해 줄게 말하지 말랬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기도 했고. 우리 같이 노력해서 같이 행복해지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행복은 그가 내게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히 그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서로가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 며칠 혹은 몇 달에 한번 오는 행운과 어쩌다 느끼는 행복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이게 행복이지. 지금 행복이 왔으니 잠시 즐기고 다시 시작하자. 바삐 사는 일상 속에 놓칠 수 있는 행복도 서로 알려줘야 한다.


남편과 나의 결혼이 동등하게 뭐든 50대 50. 나 하나 너 하나. 자로 재듯이 각자의 책임이 정확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말하진 않지만, 내가 남편보다 회사일이 여유로울 땐 아이의 목욕이나, 동화책 읽어주기, 집안일을 더 하고, 반대로 내 일이 바빠지면 자연스레 남편의 할 일이 늘어난다. 그래서 가끔 학습지에서 앞치마를 매고 요리하는 엄마 모습이 나오면 아이가 "우리 집은 아빠가 요리하고 엄마가 회사 가는데 그지?" 그런 말을 종종 한다. 현재 육아휴직 중이라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가 하고 있지만 귀찮고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 나는 요즘 타샤튜더가 된 것 마냥 즐겁게 지내고 있다.


사회생활이, 조직생활이 늘 순조로운 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맞이하면 뭔가 엄마의 말들이 족쇄가 되는 때도 있다. 그냥 온전히 집안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내 취미생활을 하며 가정의 일도 하는 것도 하나의 직업 같은 시대인데 굳이 전투적으로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할까. 인사고과와 승진이 진정 내 행복일까.

나와 맞지 않는 별난 사람들을 만나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사과하며 보내는 이 일들이 결국 내 주체적인 삶을 위한 과정일까 고민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을 정년퇴직까지 할지 중간에 더 이상 할 수 없어 그만둘지 모르지만, 적어도 집안을 정갈하게 정리하고 식사 예쁘게 차려 가족들을 기다릴 때 보단 행사를 무사히 마무리시키고, 회의 진행을 마칠 때 뿌듯함이 더 내게 크기에 아직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이 즐겁지 않은 건 남성인 남편도 마찬가지일테지. 그 역시 한 인간으로 노동이 결코 즐거운 활동은 아닐 것이다.


이영애의 산소 같은 여자가 '결혼이 목표는 아니다' '나의 삶은 나의 것' '성취는 남자의 것만이 아니다' 외쳤던 시대에 10대를 보냈던 내게 뭔가 그렇게 살아야 멋진 신여성이란 강박이 생기기도 하지만, 굳이 출근을 하고 회사를 다닌 것만이 나의 삶을 산다는 건 아닌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루하고 굴욕적인 집안 살림이 우리의 최고 기술이자 쓰임새라고 누군가는 주장하지'라고 했지만, 집안 살림도 엄연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굳이 집안일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집안의 구성원이 인정한다면 쓰임새 없는 일이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떤 위치라도, 어떤 모습이라도, 직업이 있든 없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그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주체적인 삶, 산소 같은 여자가 말한 나의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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