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행복한 아이
- "태어났으니깐 사는 거지."
<오늘의 메뉴>
잡곡밥, 도토리묵, 양파장아찌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지인들은 가끔 내 동생의 안부를 물을 때 이렇게 말한다.
"너희 집, 행복한 아이는 올해 몇 살이냐?"
내가 지은 적 없고, 누군가 그렇게 부르겠다 공표한 적 없지만 내 남동생의 이름은 '행복한 아이'다.
가끔 엄마가 백화점에 다녀온 날 하교하면 롯*리* 새우버거 세트를 2개 사 오셨다. 마주 보고 먹으면 동생은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가끔 '이깟 햄버거에 쟤는 왜 저리 행복해하는 거야.' 어린 눈에 늘 궁금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장래희망을 적어오랬는데 나는 당시 피아니스트, 변호사, 대통령 중에 뭘 하나 고르지 고민했고 동생은 1초도 고민 없이 '아빠.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젊은 우리 엄마가 오랜만에 성난 사자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늘 꿈을 크게 가져라 당부했던 엄마에게 아빠, 회사원은 정말 소박하지 못해 시시했다. 동생은 그날 엉엉 울면서 자기 꿈은 아빠가 되는 거고, 아빠처럼 양복 입고 출근하는 회사원이라고 했다. 결국 엄마에게 혼나고 '과학자'라고 써서 제출했다.
난 하나를 가지고 늘 다음 것을 생각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아이였고, 늘 허기가 졌다. 가져도 가져도 다음엔 뭘 이룰까. 뭘 가져야 하지.
이번엔 학급 부회장되었으니 다음은 회장이고
그 다음엔 전교부회장에 나가야지.
부모님이 내게 큰 기대걸지않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난 태생이 항상 내일 걱정과 숙제를 오늘 당겨하는 아이였다.
아빠가 '미미의 아파트'를 사주면 집에 돌아와 문방구에 남겨둔 '쥬쥬의 2층집'을 어떻게 가질지 궁리했다. 손에 가진 미미의 아파트의 즐거움을 온전히는 즐기지 못했다.
동생은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을 만족하고 있는 힘껏 행복해했다. 운동회를 하면 나는 늘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로 역전의 주인공이 되거나, 멀리뛰기 종목이든 뭐든 있는 힘껏 열심히 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고, 동생은 주변 다 구경하며 여유롭게 달리기를 하느라 어느 순간 반 대표가 되지 못했다.
어떤 종목이든 열심히 해서 운동회가 마치고 상품으로 받은 공책을 무겁게 들고 집에 왔고 동생은 가볍게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내 손에 공책은 전혀 부럽지 않다는 둥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는 걸 보고
'쟤는 4등 한 주제에 뭐가 저리 신나는 거야.'
1등을 한 나보다 더 행복한 얼굴로 단지 운동회를 한 하루 자체를 즐기는 아이였다.
아등바등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나의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고, 늘 여유롭던 동생의 결과물은 예상보다 뛰어났다. 학창 시절 공부도 부지런한 나에 비해 동생이 더 좋았다.
엄마는 늘 동생의 머리에 내 부지런함을 합쳤다면...... 아쉬워했다.
취직도 나는 늘 무조건 높은 곳에. 남들이 알아주는 곳, 내 명함으로 남들에게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원했고, 동생은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늘 슬렁슬렁하면서 맞지 않는 일은 과감하게 그만두고 다른 일을 다시 시작했다. 대학 전공도 마찬가지였다.
용감하거나 씩씩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저런 과감한 선택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늘 의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동생은 그저 내가 행복한 것. 본인의 감정에 집중했고 나는 내 감정보다 보이는 나를 집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이제 서른 중반이 된 행복한 아이는, 아직도 내 오랜 지인들에게 '행복한 아이'로 입에 오른다. 행복한 아이는 잘 지내지? 결혼 안 하니? 행복한 아이는 아직도 작은 일에 행복해하니?
예전에 내 친구 하나는
"너나 나나 행복한 아이처럼 살면 행복한 일이 지금보다 많을 텐데......" 그런 말도 했었다.
지금 인생의 절반 정도를 닿으면서 감히 내가 사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동생이 맞는 것인지는 모른다. 끝을 봐야 어떤 과정이 더 좋았는지 알 수 있지만, 그래도 각자의 인생.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만족한다면 그게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은 행복한 아이의 인생관을 내가 닮아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느리다고 나쁜 것이 아니고, 욕심 없다고 발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생은 나태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집중하고, 늘 지금에 감사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손에 쥔 것에 일단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것 역시 앞으로 길에 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중2병이 심각하게 걸렸을 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선 한껏 세상 모든 근심을 안고 허세 부리던 때가 있었다.
"꿀돼지야. 사람은 왜 사는 걸까?"
그때 삼보컴퓨터로 소닉 게임하던 꿀꿀이가 귀찮은 듯 말했다,
"누나. 태어났으니 살지. 엄마 아빠가 우리를 낳았으니깐."
동생은 잊은 일일 수 있지만 가끔 나는 이날의 대화가 떠올라
'아. 더 복잡하게 생각 말자. 심플하게 생각해야지. 저 사람 말 그대로 듣자. 꼬아서 더 생각하고, 괜히 하지도 않은 말 더 붙이지 말고 저 말의 저의가 뭘까 의심하지 말자.' 늘 다짐한다.
태어났으니 살아야지 하는 것처럼. 그냥 지금 하기 싫은 일도 닥쳤으니 해야지 뭐. 내 일이니 해야지 뭐. 지금 욕하는 민원인도 내 일이니 수습해야지. 깊게 생각 말고, 깊게 감정의 동굴로 들어가지 말고 심플하게 받아들여야지.
매사에 동생처럼 느긋하고 남의 시선 생각지 않는 건 내 인생관과 맞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힘든 파도가 칠 때 동생의 심플한 인생관을 떠올리면 꽤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뭐든 힘껏 하느라 늘 사진이 예쁘지 않았던 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