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시지 문어 입을 치즈에 빨대로 찍어 붙이고 검은깨로 눈알을 박는 이 작업이 모성애가 아니고 무엇인가 ㅠㅠ
<오늘의 메뉴>
아이 도시락을 싸다 내 것도 만든 판다 주먹밥,
꼬마 유부초밥, 오렌지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짠하고 생기는 것인 줄 알았다. 어학사전에서도 본능적인 사랑이라고 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 읽은 대부분의 육아 관련 책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힘들어요. 많이 우울해질 수도 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아이는 세상 제일 귀한 보물이고, 비록 힘들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에요. "
그런데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2주 있는데 출산과 동시에 짠하고 내게 나타나야 하는 '모성애'가 뒤따라 오지 않았다. 모성애보다 자연분만 이후 내 신체의 아픔이 사라지지 않아 육체적 고통이 더 부각되었다.
아 이상한데. 그렇게 내가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좀 더 기다려보지 뭐.
조리원에서 나와 고요한 집에 아기와 나랑 둘이 낮에 있는데 그 '모성애'는 쉽사리 우리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부지런히 오셔서 밥도 차려주고, 집안일도 해주고, 아이도 봐줬지만 가끔 말도 안 통하는 아기랑 나랑 고요한 집안에 있는 일은 무척 낯설고 힘들었다.
아기는 이쁘고, 귀엽고, 건강해서 참 감사한데 어쩔 때 우유를 먹이면 이유모를 눈물이 흘렀다.
진짜 이유모를 눈물이었다. 돌아갈 직장도 있고, 출산으로 인해 승진은 2년 늦어지겠지만 내 커리어에 별 문제도 없고, 친정 식구나 남편이 육아를 잘 도와줬는데 정말 이유모를 눈물이었다.
모성애나, 아이가 이뻐서 나오는 눈물은 전혀 아니었다.
모성애가 아닌 책임감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웬만하면 집안일은 내가 최대한 해두었다. 가끔 엄마가 손목 나간다고 혼냈지만 내가 선택한 결혼, 내가 선택한 출산이니, 어찌 되었든 내 힘으로 하고 싶었다.
그때 생각해보면 나는 출산과 동시에 '모성애'가 아닌 '책임감'이 더 생긴 것 같다.
새벽에 아이가 울면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을 최대한 깨우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
아이는 내 선택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배변, 우유, 목욕 최대한 편한 환경을 제공해주겠다는 책임감.
친정엄마는 나보다 더 힘든 육아환경을 보낸 시대의 사람이었으니, 나의 육아를 맡기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
그중에 아무튼 가장 큰 비중 높은 책임감은 아이에 대한 의무였다.
너는 나로 인해 나왔으니, 적어도 내 능력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게. 옳은 것, 그른 것을 최대한 나도 공부해서 알려줄게. 너의 독립의 순간을 위해 나는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살아갈게.
그제야 가끔 나왔던 눈물이 책임감의 무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아직 우리 사회가 결혼 다음 무조건 출산이 당연한 순서이니 학년 올라가듯이 낳았던 아이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책임감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대화가 안 되는 아기랑 한 공간에 둘만 있는 일은 무척 무섭고 외로운 일이었다. 가끔 그냥 놀다 열이 오른 일에 동네 소아과를 2번이나 간 적도 있었고 근처에 사는 이모나 친정엄마를 부른 적도 있었다. 신기하게 엄마가 오면 괜찮다 괜찮다. 그 두 마디에 정말 아이는 괜찮아졌다.
조리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대화도 온통 육아였고,
엄마가 오거나, 남편이 퇴근하면 오늘 우유를 20ml 더 먹었다. 배변의 상태가 이랬다.
나의 대화가, 나의 세계가 무척 좁고 단조로워졌다.
아이를 재우고 핫딜로 기저귀를 5000원 싸게 샀다고 행복해하는 날 보며 가끔 웃음도 나고 어이없었다.
예전 친구들을 만나 본인의 연애, 직장, 여행, 취미에 대해 말하는데 나는 순간 육아의 힘듦만 징징거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외로워졌다.
매일이 힘들고, 순간순간 치열하게 사는데 고작 대화는 이유식 만들기나 영유아 검진에 대한 말이라니. 나의 치열한 시간들이 입으로 꺼내는 순간 시시한 것들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출산으로 마주한 나의 세계가 작게 느껴진다 한들 그 의무를 져버릴 순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청소년 범죄를 보면 더 심각해졌고, 전혀 관심 없던 자연환경에 대한 이슈도 챙겨보게 되었다. 투표를 할 때 더 신중하게 후보자의 공약집을 읽었다. 너의 선택 없이 오로지 내 선택으로 나왔으니 적어도 이 세상에 왜 나오게 했냐는 원망을 듣지 않도록 아름답지는 못해도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 줄게,
바른 것에 대해 알려주고, 최대한 깨끗한 환경에서 질병을 예방하도록, 걱정 없이 하루하루 그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노력할게.
결국은 시시한 내 일상들이 모여 모성애가 완성되는 것은 아닌가
고된 육아를 하다 보니 나는 지난 몇 년간, 아이의 귀여움 보다 아이의 부족한 점만 따져 본 것 같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애가 찾아온 줄 몰랐다. 모성애는 대단한 감정도 아니고 숭고하고 신비로운 것도 아닌 그저 모두의 곁에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모성애는 무슨 짓을 해도 내 아이가 이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 아이에게 웃을 수 있는 흡사 성모 마리아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착각했다.
그리고 어학사전처럼 본능적으로 생기는, 출산이나 입양을 통해 엄마가 되는 순간 자동으로 생기는 선천적 내 안의 감정인 줄 알았다. 마치 내가 태어날 때부터 모성애란 것이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다
엄마가 되는 기회가 오면 자동적으로 발현되는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어떤 파도 속에서 평정심을 잃을 수 있고,
아이가 반복된 실수를 했으면 헐크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잠들고 육아 유튜브를 보며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이 방향이 맞나 수없이 고민하고 갈등한다. 지난 5년의 시간들이 결코 모성애가 없었다면 이어나갈 수 없는 과정들이었다. 비록 어느 날 내 감정의 고무줄이 터질 것 같아,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남편에게 저녁에 맡기고 친한 언니들과 근처 맥주를 먹던 일탈의 시간들도 사이사이 있었지만 결국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기름칠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위한 일이지만 결국 아이에게 더 책임감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한 일탈이었다.
모성애(부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배움으로 만들어지는 사랑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성애가 엄마가 되면 자동으로 생기는 것으로 주입받고 지낸 것 같다. 거기에 굉장히 위대하고 숭고한, 특별한 사랑으로 학습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느낀 모성애는 고상하고 신성스러운 사랑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저 오늘도 아이가 불편할 까 부지런히 기저귀를 살피고, 우유 넘김이 어제보다 못하면 분유도 다시 검색해보고, 목욕시키며 피부에 뭔가 나지 않았나 살피고,
통잠을 자지 못하고 2시간마다 일어나 아이의 안전을 살피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이 모든 게 모성애라 생각한다. 출산하고, 입양하고 자동으로 딱 아이와 함께 '모성애'가 우리 집 식구로 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하지만 치열하고, 외로운 이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다 어느 순간 모성애가 내 옆에 있더라는 것이다. 새벽잠을 물리치고 아이의 열을 체크하고, 내 끼니를 거르고 아이의 밥을 먼저 챙기는 행위도 모성애가 아님 불가능한 것들이다.
별 것 아닌 일상이라도 아이를 위해 공부하고 검색하고 주변에 물으면서 모두 엄마의 의무에서 성장하고 있고 비록 지금 방향이 맞는지 늘 의심스럽지만, 마음만은 결국 아이를 위한 최선의 길을 찾고 있다.
독립하는 그 순간이 슬픈 이별이 아니라 축제가 되도록
가끔 내가 이렇게 키우는 것이 맞나. 24시간 아이가 예쁘진 않아. 미운 순간도 있어. 가끔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과 미움의 감정이 이상한가 주변에 물어보면 유난 떨지 마라. 다들 그렇게 산다. 대충 키워라. 네가 그러니 하나만 낳겠다는 거다.
그런 말을 간혹 한다.
나의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여 온전히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날 때 (물리적인 독립보다 정신적인 독립) 서로가 찝찝하지 않도록.
뭔가 덜 주고, 덜 받아서 헤어질 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육아의 목적이다. 우리 품을 떠난 이후에도 모성애는 계속될 것이다.
내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어도 친정엄마가 늘 내 건강, 내 생활의 부족함을 염려하고 채워주는 것처럼. 나 역시 아이가 우리 품에서 떠나도 죽음으로 우리 사이가 갈라질 때까지 평생 서로 걱정하고, 서로 보살피고자 노력하겠지.
우리 부부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너는 최선을 다해 배우고 보호받아 왔으니 서로 홀가분하게(?) 독립하자.
아이가 우리 곁을 떠나는 날이 서로에게 슬픈 이별보단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사이좋게 즐겁게 지내고 싶다.
처음 병원 수술대에서 아이를 간호사가 보여줬을 때 내가 한 첫마디가 있다.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
물리적인 독립을 한 후에도 건강한 사이좋음으로 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독립 전에도 아이가 집은 세상 편안하고 안전한 곳으로 여기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독립한 후 넓고 거친 세상을 항해하다 태풍을 만났을 때, 열심히 이룬 것을 다 잃어 괴로울 때 고민 없이 우리 부부의 집으로 발걸음 할 수 있도록 늘 같은 마음,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결국은 모성애, 부성애라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