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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Jul 13. 2021

#24. 어설픈 것에 익숙해지기

- 처음은 누구나 어려워.

<오늘의 메뉴>

낙지볶음, 소면, 물김치


  모든 사람들은 세상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한 가지씩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어설픈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두렵다.

'써*웨이' 샌드위치 가게를 처음 갔던 날 내 등 뒤에 흐르던 식은땀이 아직 생각난다. 우습게도 수능시험을 치르던 당일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었다.

샌드위치 하나 먹으러 단순히 들어간 가게였다. 빵의 종류부터 안에 들어가는 것들을 일일이 물어볼 때 나는 샌드위치라는 음식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생각했다.


 다음 일정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예고되어있다면 전날까지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아*백'이 처음 생겼을 때 당시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앞두고 메뉴를 열심히 검색해서 온갖 아는 척은 다 했다. 마치 이곳을 여러 번 온 것처럼.

누구에게나 처음은 미숙한 것이 당연하지만 그 순간이 나는 끔찍이 싫었다.

특히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 거이 3개월 정도는 퇴근 후 매뉴얼 공부는 물론 업무 공책을 집에서 다시 봤다.

결혼 전 내가 주말에 모임 못 나간다 말하면 친구들은 단체 대화방에선 당연한 듯 수긍했다.

"코뿔소 또 부서 바뀌었나 보지?"

가끔 친구들이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사법고시도 통과했을 것이라 놀렸다.

시험의 결과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고, 부끄러움도 내가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업무나 장소의 새로운 일은 주변 사람들이 나는 한없이 모자라게 볼 것 같아 스스로 더 긴장하고 두렵게 했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은 민원인을 두고 하는 일이라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들 관공서에 가서 전산에 본인 주민등록번호를 딱 치면 결과가 딱 나오는 줄 아는데 아직 그만큼 전산이 발전하지 못했고, 개인의 사정들이 매뉴얼이나 전산에 넣어 자동계산될 만큼 다들 단순치 않다. 주민등록등본에 3인 가구라 정의하면 부부, 아이 이렇게 생각하지만 가족관계 증명서와 다른 다양한 등본, 의료보험증이 세상 이렇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부부는 결혼했지만 남편은 시댁 등본에 있고, 시댁 어른들은 남편 의료보험증에, 아이는 민원인의 언니 집에 들어가 있고 등등. 가끔 본부에 질의를 올리면 매뉴얼을 만든 분들도 대체 이런 케이스가 있다고요? 반문한다.


 전산에 넣더라도 오로지 어느 항목에 적용하여 계산할지 내 몫이고 매뉴얼은 상세하지 않고 다양한 케이스를 담지 않아 늘 경험이 중요했다.

따라서 처음의 미숙함이 쌓여야 노하우가 생기는 일인데 문제는 나의 미숙함을 이해할 너그러운 민원인 들은 없다. 늘 새로운 업무에 배정되면 집에서 온갖 케이스의 민원인을 상상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러한 노력이 직장에서는 적응력은 빠르다 평을 가끔 듣지만, 스스로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업무를 넘어 생활 모든 부분도 새로운 곳에 가기 전에 모든 정보를 검색하고, 도착해서는 왠지 '나 여기 여러 번 와봤습니다' 어설픈 연기를 했다.

피곤한 습관이 곧 나의 성격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 아이에게는 늘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처음은 그래. 말해주지만 가끔 성격 형성에 관한 다큐를 보다 유전적인 요소도 무시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침울해진다.

밝고, 즐겁고, 유쾌한 것만 물려주고 싶었는데,

경제적으로 많은 부유함을 누리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감정적인 것들은 행복한 것만 아이에게 주고 싶었는데 내 피곤한 성격이 가끔 아이에게 나타나면 김샌다.


 어느 날 생각해보니 30대가 되어 급격하게 인간관계의 범위가 좁아졌다. 뭔가 새로운 것들은 곧 피곤하다 연결 짓는 내게 새로운 인연도 피곤한 업무의 연장선으로 여겨졌다. 20대의 나는 늘 활기차고 밝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물론 조금의 연기일 수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연결해주고 의외로 나보다 둘이 단짝이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매번 만나는 사람들, 늘 듣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상이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내 사람들이 싫다가 아니라, 뭔가 변화도 있어야 자극과 활기가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새로운 곳에 가서 영감을 찾는다는 말처럼.


 어설픈 것을 피하다 보니 결국 새로운 모든 것들을 차단한 것 같았다. 늘 익숙한 장소, 먹던 메뉴, 우습게도 치킨 집도 새로운 브랜드를 거이 접하지 않고 늘 먹던 동네 집에 6년째 먹고 있다. 그것도 같은 메뉴로.

최근에 나의 생활의 목표가 생겼다.

"어설픈 것에 익숙해지기." 더 이상 어설픈 것에 두려워 말고, 솔직하게 내가 처음이라 말하자. 그리고 처음인 것에 부끄러워하거나 나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다.

복직 후 업무에 대해선 어설픈 것을 경계하겠지만 그 외의 모든 생활은 어설픈 모습에 용감해지기로 했다.


 치킨도 새로운 브랜드를 주문했고, 놀이터에 만나는 다른 유치원 엄마와도 번호를 교환했다. 코로나로 직접 만나 커피 마시는 일은 못하지만,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요즘 새로운 학습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주말에 아이와 가볼 만한 야외 공원도 서로 알려준다.

어설픈 것에 용감해지기 시작하니 내 세계가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기분이다. 모든 새로운 것들이 다 좋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 역시 혹시 내가 익숙함에 속아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기 힘들어진 것은 아닌지 다시 공부해본다.

익숙한 세계에만 머물면 어느 순간 옳고 그름도 흐려진다. 좁아지는 세계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함에 나 자신을 속여 지금 이 세계의 모든게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타고난 성격, 지금껏 굳어진 것들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오늘부터 어설퍼지기로 했다. 30대를 넘어 40대가 되면 모든 것들에 능숙해지고 단단해진다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인간은 죽을 때까지 새로운 일에 어설플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어설픈 첫 단계를 경계 말고, 두려워 말고, 받아들이고 즐기자. 나의 처음이니 조금 이해해달라 상대에게 용감하게 말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어설픈 것을 넘어갈수록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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