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물고기 Aug 25. 2021

#28.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된다면...

-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나요?

-소소하게 인정받는 일이 생기면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 된다.
오늘도 일은 즐겁지 않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생각해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보다 개인마다 가진 직업의 이미지의 호감도에 의해 결정되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문과인지 이과인지 시작으로 내 능력의 유무도 장래희망 결정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기억을 거슬러 내 장래희망의 변천사를 보면 대통령, 우주비행사, 피아니스트, 변호사를 지나 중학생 땐 방송작가였고, 고등학생 땐 은행원이라 제출했던 것 같다.

글 쓰는 일은 취미이자 그나마 내 특기였지만 어쩐 일인지 고등학생이 되면서 희망 직업란에 작가는 사라졌다. 글을 쓰는 일을 열중할수록, 큰 대회를 나갈수록 나의 재능이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 같다. 특히 서점의 이달의 작가 책 코너를 가는 날이면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어쩜 이런 문장을 생각하는 거야?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살기에 이런 소재를 생각했던 거야?

나는 결국 오늘의 작가 코너에 오를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글 쓰는 일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감히 돈벌이로 이어질 만큼 나의 실력이 안되니 나는 그나마 경제신문을 구독할 만큼 흥미 있어했던 상경대를 북수 전공하고 은행원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런저런 직장을 거쳐 현재는 글과 아무 상관없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내 글로 밥벌이하겠지 하는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출근길에 오른다.

지금 내 출근길이 몇 년 후에는 내 책머리에 경력 한 줄로 지나갈 과거가 될 것이라 믿으며......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가 되면 행복할까?


 친구 중에 본인 적성, 흥미와 아무 상관없지만 대기업이란 이유로 10년을 재직하다 좋아하던 일로 가게를 창업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10년의 세월 동안 대기업에 노동한 대가로 저축과 퇴직금을 모아 창업을 했다. 수입이 없던 6개월가량 걱정되던 주위 사람들과 달리 본인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한 번씩 통화 중에 "너 혹시 술 마셨어?" 물었을 정도로 목소리톤도 늘 업되어있었고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는 이상한 드라마 대사를 했다. 즐거움이 원천이 되었던지 가게는 입소문이 나서 잘 되었고 어느 달은 대기업 월급보다 높은 수입도 있었다. 하지만 2년 정도 흘러 그만두고 다시 재취업 준비 중이다.

일은 무척 즐겁고 행복했지만 고객과의 관계는 전쟁이었다고 했다. 원하는 주문대로 해줘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으로 트집 잡는 것은 기본이고 일에 열중할 수 없을 정도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런 이상한 사람들은 어쩌다 만났지만 그 어쩌나 나타나는 사람들로 인한 수습은 며칠이 갔고 특히 감정의 뒤처리는 그 이상이었다고 했다.

친구가 폐업을 결정하고 내게 했던 말이 있다.

"후회해. 괜히 좋아하는 일로 돈 벌려고 했나 봐. 이젠 이 일이 취미로도 즐기지 못하겠어. "

그녀는 이제 단조로운 일상에 즐거움이었던 취미생활까지 잃어버렸다고 했다.


하는 일이 좋아지는 걸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걸까.


  공무원 동료들의 어릴 적 꿈은 대부분 공무원이 아니었다. 물론 몇몇 아버지나 가족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사명감이 있었다는 친구는 봤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꿈이 다양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공무원 동료들이 모두 현재 불만족인 것은 아니다. 본인의 성향, 삶의 가치관에 따라 만족과 불만족이 나뉘고 원래 좋아하는 일이 장래희망이 될 수 없는 거 아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임명장을 받고 선서를 하면서 나 역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이었다. 그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경우도 있고 간혹 별 것 아닌 민원인의 감사인사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일도 있다.

의무감이나 책임감, 사명감으로 이 일을 열심히 하지만 즐겁거나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지금 회사 책상에 앉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업무 메일을 읽고, 상사의 지적을 듣고, 회사에 관련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강요받는 우리 중에 그 일이 즐겁거나 행복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밥벌이와 취미는 정말 별개의 일인 것일까.

동료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원래 좋아하는 일이 장래희망이 될 수 없어."


좋아하는 일은 단지 취미로 남겨둬야 할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 지치고 그만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나는 결국 은행원이 되지 못했다. 우리나라 시중 은행, 증권사의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일은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선택되지 못했다. 내 마지막 한 은행의 면접은 역할극까지 하고 연수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담당 직원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은행보다 더 좋은 곳에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랬다.

외곽지 연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 떨어졌다. 다음 주 합격자 발표는 보지 않아도 되겠다. 아쉽고 슬픈 마음보다 개운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경제신문 스크랩 노트를 정리했다.

대학 내에 진로검사를 다시 받아봤고, 내 진로를 재설정해봤다. 그분의 말로 인해 지난 불합격의 경험들이 이상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래서 다들 금융권에서 날 최종면접에서 거절했구나. 서류상의 스펙은 맞춰 그럴듯하게 해서 만남을 제의받았지만 나는 뭔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구나.

모자란 것이 아니라 어울리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내가 어울릴 수 있는 분야를 다시 찾아야지.

한 동안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은행 갈 일이 있어 창구 앞에 기다리면 저분들과 나와의 차이는 뭐였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와보니 그 직원의 말대로 나는 비록 은행원이 되지 못했지만

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며 근무했었고 지금 역시 부서 안에서 적어도 동료들의 신뢰를 받으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은행권을 준비하다 합격한 동기가 3명 정도 있었다.

스터디 그룹을 할 때 활기찬 모습은 없고, 다들 퇴사를 꿈꾸고 있었다.

은행원의 겉모습, 직업의 이미지만 생각했지 영업, 고객 민원, 출납업무 등 미처 실제 업무에 대해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취미와 밥벌이는 다르다.


  출판사에 근무할 때 작가에게 원고를 받으며 연락을 할 때 늘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엉망으로 쓴 원고를 주면 내가 교정하고 편집하고 미술팀에서 예쁘게 꾸며 정갈한 책으로 나오겠지. 독자들은 이 책의 원고는 이렇게 엉망인 것을 모르겠지. 생각하며 쓰기만 하고 얼마나 즐겁겠어.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중 한 분은 내게 부럽다고 했었다. 스타 작가는 아녔기에 여전히 월급이 없는 삶을 걱정하며 글을 쓰고 있고 이 원고가 이제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월급쟁이로 일하는 안정적인 삶인 내가 부럽다고 했었다.

그가 유명 작가가 아니라 그런가 싶지만, 그가 아는 스타작가들은 돈을 떠나 다들 고민이 많다는 아이러니를 들었다. 본인이 누린 인기나 돈에 비해 신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고민이 꽤나 묵직하다는 것이다.

장래희망은 어쩌면 좋아하는 일. 그 단면적인 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업으로써 일을 그 이면의 현실적인 행정처리를 겸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미처 몰랐던 것은 아닐까.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매년은 어렵지만, 단편 소설이나 단막극 응모를 꾸준히 해왔다. 퇴근 후 쓰는 글은 무척 즐거운 작업이었다. 마치 이 원고가 1등이 되어 인터뷰하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행복하게 작업했었다. 비록 지금까지 커다란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현재 직장에서 업무 관련된 일화나 아이디어 공모에 당선되어 소소하게 인정받는 즐거움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글쓰는 작업이 성과와 연관되었다면 과연 즐거웠을까 생각한다.

퇴근 후, 아이가 잠든 후 쓰는 글은 취미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직업인으로 글을 쓴다면 그때도 행복할까.

가끔 취미는 업이 될 수 없는가. 의문이 생긴다. 나의 재능은 결국 문화상품권 5만원에 끝나는 재능인가.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도 출근길에 오르며 사회인으로 한 자리 잡고 있는 게 어디야.

날 일부러 치켜세우며 다독인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그렇지만 늘 꿈꾼다. 좋아하는 일이 결국 업이 되어 밥벌이로도 되는 날이 오기를.

훗날 나의 책 표지에 지금의 명함은 지나간 직업의 과거가 되기를.

사람들 모두 그런 희망하나 작게 품고 오늘도 출근길에 오르겠지. 물론 사회초년생들은 아직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다는 즐거움에 취해있을 것이다. 그중에 부디 몇몇은 직업 생명줄이 다 하는 날까지 그 마음 이어가길 바라지만, 아닌 것을 깨달아도 절망하지 않길 희망한다.

좋아하는 일은 비록 찾기 어렵지만, 직업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될 그 직업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직업생활은 무척이나 고달픈 활동이지만 또 가끔은 그 일이 결국 내 능력의 증거가 되어 날 의미 있게 만들 수도 있기에.

가슴 속 모두 제출하지 못할 사직서 한 장 품고 출근하는 것 처럼,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 밥벌이로 성공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희망도 안주머니에 조금 넣어보길 희망한다.

이전 06화 #27. 기억의 습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