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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의 민족

삽결살앙해

by 채널김

한국인 인증 소울푸드

슬플 때나, 기쁠 때, 배고플 때.

특별한 날은 물론 평범한 날에도 그리워지고 주기적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어쩐지 섭섭해지는 이 음식의 이름은 바로 삼겹살이다.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어마어마하다. 하도 많이 먹다 보니 국내 생산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해외에서 수입해 와야 할 정도다. 역시 명실상부 '국민고기'답다.


삼겹살을 먹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역시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 먹는 게 가장 일반적으로 떠오른다.

센 불에 노릇하게 익혀서 육즙 가득 촉촉한 그 상태. 그냥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거기에 깻잎이나 상추에 싸서 쌈장과 마늘을 살짝 올리고 한 순간에 입 안에 넣어주면 행복 한 덩어리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여기에 입가심으로 소주 한 잔 곁들이면 그날 하루 있었던 힘든 일까지도 싸악 날려준다.


이쯤 되면 삼겹살은 마치 먼 옛날 곰이랑 호랑이가 동굴에서 마늘 먹던 시절부터 먹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렇게 불판 위에 삼겹살을 이렇게 구워 먹기 시작한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남겨진 고기, 국민 고기가 되다.


한반도에서도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구이'는 요즘 즐겨 먹는 생고기 형식은 아니었다.


주로 양념과 함께 구운 형태였으며,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맛과는 조금 달랐다. 조선시대까지도 보통 국이나 찌개에 넣어 먹고 삶아 먹거나 쪄먹는 게 다였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를 선호했었기에 돼지고기는 큰 인기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돼지는 도축하고 나서 취할 수 있는 고기량도 적었고 소에 비해 비싼 가격, 그리고 특유의 잡내가 많아 여러모로 곤란했다.


하지만 이 흐름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의 한우와 쌀을 대거 일본으로 가져가고 양돈과 감자재배를 독려하며 자연스럽게 돼지고기를 더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소고기보다 돼지고기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내에 돈까스 등의 서양식 돼지고기 요리가 퍼지면서 일본의 돼지고기 수요는 크게 증가한다. 일본은 돼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다시 조선 땅으로 눈을 돌렸다. 돼지 사육처를 군산과 같은 항구도시 근처에 만들면서 '돼지고기 공급지'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이 필요한 돼지 부위는 돈까스용으로 사용되는 안심이나 등심이었고 나머지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나 부속물은 남겨지게 되었다. 이 남겨진 고기들이 바로 한국인의 식탁으로 향하게 되었고 점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삼겹살을 먹게 된 이야긴데 여기서 더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가 되어서부터다.



불판 위의 삼겹살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인의 식탁에서 돼지고기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탄불 중심에서 가스불로 바뀌는 조리 도구의 진화는 우리의 식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도시의 노동자들은 더 많은 열량과 단백질을 필요로 하면서 육류소비가 증가했다. 게다가 정부의 양돈 장려 정책으로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공급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서 돼지고기의 인기는 폭발적이게 된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저렴했던 삼겹살은 지갑이 얇은 서민들에게도 부담이 없어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고소하면서도 기름진 맛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소주와의 궁합도 좋아 현재까지도 명실상부 회식 메뉴 1등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니 생각보다 삼겹살의 역사는 매우 짧은 것 같다.


한때는 잡내가 많고 손질이 까다로워 외면받던 부위였지만, 그 짧은 시간에 진화에 진화를 거쳐 잡내는 확실히 없어지고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육질로 개선됐다. 숙성과 손질 기술이 발전하고 불판과 환기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이제 삼겹살은 단순히 '싼 고기'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질 좋은 음식이 되었다.


집 주변에만 봐도 삼겹살집이 정말 많고, 그 많은 삼겹살집에 저녁이면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 한국인의 소울푸드는 삼겹살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고소하고 맛있는 삼겹살은 왜 한국사람만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


테이블 불판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은 한국인의 '특별한 문화'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나라의 고기요리는 주방에서 요리사가 조리해서 완성된 형태로 나온다. 테이블에서 직접 구워 먹는 행동을 매우 생소한 일로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1인 1 집게는 필수이며 고기 못 굽는 사람은 사회생활 글렀다는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말이다.


또한 삼겹살이라는 부위 자체가 지방이 많다 보니 건강을 중요시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통 베이컨같이 가공식품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아직 생삼겹살의 고소함과 육즙을 모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싶다.


그런데 요즘 k푸드가 유행이 되면서 삼겹살이 한국의 담장을 넘어가고 있다. 삼겹살집이 해외 곳곳에서도 많이 생기는 추세고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현재는 많이 퍼지고 있다. 삼겹살 짝꿍인 쌈장과 함께 쌈을 싸 먹는 환상적인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 인기에 힘입어 삼겹살의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한때는 가장 저렴했던 고기였지만 이제는 그 맛과 문화적 가치가 많이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고기 한 점 구우며 나누는 대화, 쌈 하나의 정성과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풍미는 아마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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