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 1티어
무슨 일을 하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집어넣다 보면 오히려 망쳐버릴 수 있다.
귀여운 것들을 모두 모은 디자인이라고 전부 귀여워지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모두 합친다고 그 음식이 맛있어지진 않는다. 예를 들면 곱창 바질 초콜릿 피자가 맛있을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재료들을 넣고 또 넣어도 완벽한 균형을 이뤄낸 음식이 있다. 바로 짬뽕이다.
우리는 뭔가 뒤죽박죽 섞인 상황에서 이런 말을 쓴다.
"완전 짬뽕됐네.."
그렇지만 우리가 [짬뽕됐네]라고 말하는 상황과 달리 실제 짬뽕은 여러 재료들이 뒤섞여 최고의 조합을 이루는 맛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빨간색의 짬뽕에서도 시원한 해물베이스와 묵직한 고기베이스로 취향이 갈리기도 하고 별미로 먹는 백짬뽕과 굴짬뽕 등 종류가 다양하다.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함께 역대급 선택장애를 일으키는 이 짬뽕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이렇게 깊이 자리 잡았을까? 어떤 재료를 넣어도 맛있게 나오는 이 짬뽕의 역사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짬뽕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중국 국수가 일본으로 넘어가서부터 시작된다.
중국요리지만 중국에는 없다
짬뽕은 중국음식점에서 먹는다.
하지만 중국음식이지만 중국 어디에서도 '짬뽕'은 찾아볼 수 없는 음식이다. 뜻밖에도 이 음식은 일본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일식이 아니라 중식이 된 거지?
짬뽕이 중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아니고 19세기말 한국이나 일본에 나와 있던 중국인, 즉 화교들이 만든 음식이라는 의견이 많다. 짬뽕이라는 이름 자체가 불려진 것은 19세가 말 일본 나가사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가사키 짬뽕'의 출발지이다.
나가사키에서 사해루라는 중국 음식점을 경영하던 진평순이란 화교가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나 닭 뼈를 푹 고아내 국물을 만들고 바닷가인 나가사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산물과 짜투리 고기, 쓰다 남은 채소 등을 넣어 국수를 끓였다.
이것저것 뒤섞여서 만들어내긴 했지만 생각보다 영양가도 있고 값도 싸게 팔다 보니 나가사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에게 그야말로 핫한 음식이 된 것이다. 처음엔 가난한 이들을 배불리 먹여주는 음식이었지만 점차 입소문이 퍼져서 일본손님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짬뽕 개발자 진평순은 화교 손님들이 오면 첫인사로 ‘치 판(chi fan 吃飯)’? 이라고 물었다. 뜻은 '너 밥 먹었냐'로 당시엔 끼니를 때우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화교이니 당연히 중국말로 물었고 표준어로 물었어야 하지만 진평순은 시골인 복건성 사투리로 ‘샤번’, ‘챠본’, '샤뽕'?이라고 물었다. 이 뜻을 알리 없는 일본 사람들은 새로운 국수의 이름으로 생각하게 된다. 일본사람들은 '찬폰'이라고 부르게 되고 이것이 한국으로 건너와 짬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중국 국수가 변형되어 일본에서 짬뽕이 탄생하고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화교들이 교류하면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처음엔 우리나라의 짬뽕도 하얀 국물의 짬뽕이었다. 본격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가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 고춧가루가 보편화되면서부터다. 그전까지만 해도 고춧가루는 꽤나 고가여서 서민식당에서는 마음대로 쓰기 힘든 식자재였다. 이렇게 한국사람들에 의해 다시 한번 짬뽕의 모습이 바뀐 것이다.
채소와 고기, 해산물이 어우러진 쫄깃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에는 중국, 일본, 한국 3국이 얽히고설켜있는 음식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짬뽕이지만 이렇게 알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