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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 한 그릇

그 돈이면 국밥이지

by 채널김

이런 말이 있다.

'그 돈이면 차라리 국밥을 사 먹고 말지!'

값비싼 디저트나 커피 같은 가성비 떨어지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소리다. 어떤 사람들은 남이사 뭘 먹든 무슨 상관이냐며 불쾌해 하지만 나는 저 말이 참 좋고 실제로도 어떤 음식 가격이든 국밥과 비교한다. 나도 흔히 말하는 '국밥충'인 거 같다.


확실히 국밥은 오래된 우리나라 음식이고 꽤나 저렴하게 팔리던 음식이었다. 게다가 탄단지가 균형 잡힌 음식이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 이만한 가성비 음식은 찾기 힘들지 싶다. 하지만 상승하던 물가에도 잘 버텨오던 국밥도 가성비가 좋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 들어서는 이 국밥 한 그릇이 기본 8,000원부터 12,000원 정도이고 땅 값이라도 비싼 지역에 가면 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뭐 다른 음식들도 많이 올라서 국밥만 안 오를 수는 없지만 어쩐지 만 원 한 장을 내면 몇 천 원 거슬러 받아야만 할 거 같은 음식이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돼지국밥, 순대국밥, 설렁탕, 선지국밥, 콩나물 국밥, 소머리국밥 등 종류가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여전히 해장의 일등공신이자 든든하게 한 끼 뚝딱 해치우기에는 이만한 음식도 없는 거 같다. 베스킨라빈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종류로 매일 한 가지씩만 골라 먹어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매일 국밥만 찾는 국밥부장관도, 이제 국밥은 지겹다는 사람도 결국은 회귀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국밥에 대해서 알아보자.



국밥의 탄생


일단 한국인은 예부터 밥과 국에 환장한 민족이다. "밥은 먹었냐?" "언제 밥 한 번 하자"처럼 안부인사를 밥으로 할 정도로 밥이 없으면 안 되는 민족이다. 다른 음식을 먹었어도 정말 '쌀밥'을 안 먹으면 밥을 안 먹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지형 특성상 내륙지방에서 생선은 커녕 고기도 보기 힘들었었다. 그렇다 보니 곡식이나 채소가 거의 주식이었는데 그 양이 지금으로 따지면 푸드파이터 급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사실 쌀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이 꽤 적절하게 들어 있어서 영양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는데 다만 밥으로만 하루 영양소를 충전하려면 열 그릇은 족히 먹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국이 없으면 아무리 진수성찬이 있다고 해도 밥을 못 먹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이렇게 국을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단 첫 번째는 제사상차림 기본이 밥과 국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쌀이 주식이지만 쌀만 먹으려니 밥 먹을 때마다 목이 메어서.

셋째, 가난한 시절 음식을 대량으로 우려내 다 같이 나눠먹기 위해서이다.


지금처럼 밥과 국의 콜라보가 이루어진 것은 병자호란 이후 상업이 발달하면서부터라고 보고 있다. 조선 팔도에 물건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이 대거 등장하며 중간중간 쉴 공간이 필요했는데 이로 인해 주막이 활성화된 것이다. 이때 밥을 먹을 때 따뜻하지 않다고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국 같은 경우는 약한 불로 계속 끓여서 데우면 되지만 그 당시에 쿠쿠밥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갓 지었을 경우가 아니면 따뜻하게 보온을 할 수 없었다. 두뇌 풀가동을 하던 주모들이 떠올렸던 하나의 방법이 바로! 밥을 뜨끈한 국물에 말아버리는 것이다.


밥을 수차례 국물에 담그기를 반복하면서 밥알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드는 이 방법이 바로 '토렴'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밥이 탄생된 것이다.




메가히트 국밥


조선 후기 한양에서 국밥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 당시에는 소고기나 개고기를 푹 고아서 간장, 된장으로 간을 한 일명 '장국밥'을 주로 팔았다. 이 중에는 '무교탕반'이라는 국밥집이 있었는데 지금의 미슐랭 3스타급 국밥집으로 다른 국밥집보다 가격이 무려 3배나 비싸도 손님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조정 대신들과 양반들은 물론이고 임금인 헌종 또한 몰래 방문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한 인기는 없는 법. 근대에 들어 장국밥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국밥계의 인기스타, 설렁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분제가 철폐되고 자유의 몸이 된 많은 백정들이 정육점을 운영하며 살코기를 팔고 남은 부위들로 설렁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가 자국 군대에 보급할 소고기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 소고기 생산을 늘리면서 통조림을 만들고 남은 부속 고기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서울에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재료도 많고, 먹을 사람도 많아진 상황이 된 것이다.


그동안 먹었던 장국밥의 간장, 된장 베이스가 아닌 고기로 우린 국물이라니!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재료가 많다 보니 가격 또한 저렴해서 당시 외식계의 원탑으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설렁탕은 서민들이나 먹는 패스트푸드라는 인식 때문에 아직도 양반 상놈 타령하는 꼰대들은 격 떨어진다며 설렁탕집 방문을 꺼리기도 했다. 그래도 맛있는 건 정말 참을 수 없기에 양반들은 설렁탕집에 직접 가지 않고 몰래 배달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반도는 온통 설렁탕으로 뒤덮이던 시기였다.




국밥의 나라


국밥의 나라답게 대한민국 어딜 가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국밥이 있다.


돼지국밥

일단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돼지국밥일 정도로 부산과 돼지국밥은 하나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돼지 국밥의 개발자는 본토 부산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6.25 당시 전국 각지에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돼지뼈를 우려 만든 요리가 바로 돼지국밥의 원형이라고 한다. 또한 피난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너도나도 장사를 시작했는데 바쁜 장사일 사이에 끼니를 해결하려고 돼지국밥에 온갖 반찬을 넣어 후루룩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밥 위에 부추, 마늘, 고추, 김치 등을 얹어먹는 부산 대표음식 돼지국밥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수구레 국밥

국내 최대 우시장이 있는 경남 창녕에는 '수구레 국밥'이 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과 살 사이에 붙어있는 부위로 소 특수부위 중에서 가장 저렴했다. 살코기도 아니고 지방도 아니어서 딱히 인기가 없어 버려지는 부위였지만 먹어보니 이거 이거 생각보다 맛이 꽤 괜찮았던 것이다. 시장 상인들이 버리다시피 한 수구레를 모아서 국밥을 끓여 먹었던 게 지금의 별미인 수구레 국밥이 됐다.


육개장

새빨간 국물에 잘게 찢은 고기, 그리고 파가 듬뿍 올라간 육개장. 그 시초는 보신탕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이유는 특유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양념을 강하게 썼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을 위해 고기만 소고기로 바꾼 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육개장이다. 대구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대구탕'이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이밖에도 국밥에 대해서 쓰려면 일 년 내내 글을 써야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종류뿐 아니라 먹는 방식도 가지각색이어서 국밥은 더 든든하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역시 그 돈이면 국밥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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