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시원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생성되는 계절이다. 냉면은 덥고 지치는 여름이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음식이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때 냉면전문점이 아닌 고깃집에서 후식으로 냉면을 먹어본 게 처음이었던 거 같다. 특히 고기를 먹고 나서 뭔가 기름지고 더부룩한 속을 한방에 씻겨 내려준것이 냉면에 대한 맛있는 기억이다.
냉면은 고기육수에 갖은 조미료를 넣고 거기에 메밀, 감자, 칡 등으로 만든 면을 넣어 차갑게 먹는 음식이다.
고기나 만두, 부침개류와도 찰떡으로 잘 어우러진다. 종류도 다양한데 함흥냉면과 평양냉면, 코다리냉면, 동치미냉면 등등 이렇듯 속이 개운해지는 이 냉면은 종류만큼이나 역사도 꽤 오래된 음식이다.
그 시초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메밀은 사람의 무관심에도 혼자서 쑥쑥 잘 자라는 흔한 재료였고, 특히 산지가 많은 서북지역과 강원도 이북지역에서 많이 발달했다. 주로 이북 주민들의 음식으로 이어져오다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때도 나박김치나 동치미국물을 이용한 냉면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과는 살짝 다르지만 차가운 육수에 먹는 면요리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본다.
찬바람 맞으면서 냉면 먹는 생각만 해도 몸이 떨리는 것 같지만 냉면은 원래 겨울음식이다. 손발 꽁꽁 어는 겨울에 몸까지 차갑게 하려고 냉면을 먹었을까?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집은 따뜻한 온돌방이었는데 따뜻하게 지지기는 좋지만 지금처럼 온도를 조절하기 매우 힘들었다. 밖은 춥지만 방 안은 절절 끓고 있다 보니 방 안에서 따뜻한 음식보다는 차가운 음식을 먹기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냉장고 또한 없어 여름엔 차가운 육수를 구할 수 없으니 자연스레 겨울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냉면은 초반에는 거의 고깃집 후식으로 자리 잡았었다. 굳이 힘들게 육수를 내지 않아도 화학조미료로 입맛 당기는 맛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저렴한 가격을 유지했었는데 어느 순간 냉면 전문점이 많이 생기고 육수가 차별화되면서 지금은 가격이 매우 많이 올랐다. 물론 비싸진 임차료와 인건비, 재료비 등을 생각하면 납득이 갈 가격일 수 있지만 2만 원 가까워지는 가격이 점심 한 끼니로 사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다. 조금 더 있으면 월급날이나 겨우 먹어볼 음식이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냉면은 의외로 콜라보가 아주 좋은 음식이다.
삶은 계란
어느 식당을 가던 거의 삶은 계란이 얹어져서 나온다. 삶은 계란을 면보다 먼저 먹음으로써 소화가 더 잘된다는 얘기도 있다. 노른자만 따로 으깨서 국물에 섞어먹어도 별미다.
편육
식당에서 직접 육수를 내면서 삶은 고기로 편육을 내놓기도 한다. 소고기를 주로 쓰니 제대로 육수를 내는 집은 소고기 편육이 있을 것이다. 몇몇 식당은 돼지고기 수육이나 편육을 내놓는 집도 있다.
만두
시원한 냉면에 갓 쪄낸 뜨끈하고 속이 꽉 찬 만두는 조합이 아주 좋다. 사실 만두야 어느 음식이랑도 잘 어울리다 보니 시원한 냉면과 따뜻한 만두를 번갈아가면서 먹는 재미도 있다. 잘하는 냉면 전문점은 만두까지도 직접 빚는다.
숯불고기
냉면만으로는 단백질이 부족하고 뭔가 허전한 게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고깃집에서 냉면을 먹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었던 민족으로 고기를 먹으면 냉면을 먹어줘야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깃집에 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니즈를 잘 파악한 어느 가게에서 아예 고기와 냉면이 세트로 나오는 구성을 선보여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겨줬었다.
돈까스
돈까스 조합도 최근에 생겨난 조합인데 바삭하고 기름진 돈까스와 시원하고 새콤한 냉면의 조합은 의외로 궁합이 좋다. 일본 요리에서 돈까스와 모밀 우동 조합을 생각하면 그리 어색한 조합은 아니다.
한 줄 이야기
냉면의 원조인 북한에서는 냉면을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긴 면발은 장수의 의미이기 때문에 면을 자르면 수명을 싹뚝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고.
냉면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확실한 기록이 남은 배달음식이다.
식초와 겨자를 넣는 것은 맛의 풍미보다는 식중독 예방을 위한 살균이 목적이었다.
냉면 그릇의 용량은 대개 1리터 안팎이다.
제대로 우린 육수는 콩나물국과 비슷한 정도의 해장 효능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