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도 고급음식
내가 닭발을 처음 먹어본 기억은 생각보다 아주 오래됐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병아리를 수십 마리 사 와서 닭으로 키우곤 하셨는데 한 번씩 닭을 몇 마리씩 잡는 날에 몸통 고기를 먹고 남은 닭발 몇 개를 엄마가 삶아줬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키운 닭이다 보니 덩치가 커서 발도 꽤 컸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닭발을 수육처럼 삶아서 주셔서 소금에만 찍어 먹기도 했고 케첩이랑 고추장을 약간 섞은 양념에 버무려 주시기도 했다. 지금처럼 매운 양념과는 완전히 다른 새콤 매콤한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닭발을 좋아하던 아이는 20년 뒤, 소주에 매운 닭발을 환장하며 먹는 어른으로 자랐다. 엄마가 해주던 담백한 닭발만 먹어보다가 어느 날 술집에서 만난 매운 닭발은 충격이었다. 혀를 마비시키는 듯한 강렬한 매운맛, 뼈를 쪽쪽 빨아내는 짜릿함, 주먹밥과 함께 비벼 먹는 궁합까지. 그 후 한동안은 몸에서 닭 냄새가 날 정도로 닭발을 먹어댔다. 다음 날 화장실에서 고통받던 기억도 많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음식을 끊을 수가 없었다.
고급음식 닭발
사실 닭발은 오랫동안 하찮은 부위로 여겨졌다. 살도 거의 없고 발라먹기도 귀찮다 보니 대접받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하지만 먹을 게 없으면 뭐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다. 못 먹는 부위는 있어도, 안 먹는 부위는 없는 법이다.
흥미롭게도 이 ‘하찮은 발’이 예로부터 귀한 음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닭발은 궁중에서 임금에게 올리던 진상품 중 하나였다. 보기에는 남루해 보여도 건강에 좋다고 여겨져 양반가에서도 귀하게 대접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서민 술안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던 셈이다.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일 것 같지만, 닭발은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다. 중국에서는 ‘펑자오(鳳爪)’라는 이름의 딤섬으로 고급 레스토랑 메뉴에 오른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는 길거리 간식으로, 멕시코에서는 국물 요리에 들어가고, 아프리카와 자메이카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메뉴’로 인정받은 것이다.
매운맛으로 살아남은 닭발
그렇다면 한국식 매운 닭발은 언제 시작됐을까? 지금의 스타일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 않다. 1980~90년대, “불닭” 열풍과 함께 전국적으로 매운 음식이 유행하던 시절, 닭발은 화끈한 양념을 입고 술안주의 스타로 떠올랐다. 대구와 부산 같은 영남 지역에서 먼저 퍼져나가더니 곧 전국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국물 닭발, 치즈 닭발, 직화 닭발, 주먹밥 세트까지… 메뉴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닭발을 먹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불태우는 의식 같은 것이다. 빨갛게 끓는 양념 속 닭발을 집어 들고,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먹다 보면 묘하게 속이 풀린다. 뭔가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정리되는 순간, 매운맛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해방감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닭발집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쉬운건 인기가 많아져서인지 요즘은 예전처럼 저렴한 메뉴가 아니게 됐다. 시장에서는 푸짐하게 담아주던 닭발이 어느 순간 만만치 않은 가격이 되었고, 가게에서 주문해도 양은 적어 주먹밥이나 계란찜을 꼭 곁들여야 배가 찬다. 집에서 해 먹으려 해도 손질이 까다롭고 조리 시간도 오래 걸린다. 어쩌면 닭발은 다시 ‘고급 음식’으로 돌아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닭발을 좋아한다. 그건 단순히 매운맛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삶아주던 소박한 닭발의 맛과, 성인이 되어 술잔을 기울이며 먹던 화끈한 닭발의 맛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내게 닭발은 추억이고, 위로고,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닭발은 징그럽다”라고 말하더라도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한번 먹어보면 못 끊어.”
요리 Tip
닭발 양념에 카레가루를 넣으면 훨씬 맛있다.
닭발은 무뼈보다 통닭발이 맛있다 (원래 힘들게 먹어야 더 맛있다)
닭발은 생각보다 오래 삶아야 부드럽다. 압력솥이나 전기밥솥을 이용하자.
마요네즈나 갈릭디핑 소스에 찍어먹으면 덜 매우면서도 맛이 풍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