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 탄생한 음식
한국전쟁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생각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부대찌개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온 국민이 즐겨 먹는 대중 음식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부대에서 나온 각종 통조림 햄과 베이컨, 소시지 등은 당시 가난한 한국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버려지다시피 하던 이 가공육을 김치와 고추장, 마늘 등 한국적인 양념과 섞어 끓여낸 것이 바로 부대찌개의 탄생 배경이다.
오늘날 부대찌개는 점심 메뉴로도 자주 등장하고 밀키트 시장에서도 단골 인기 상품으로 꼽힐 만큼 대중성을 얻었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은 이 국물요리를 너무도 사랑한다. 부대찌개의 국물맛은 햄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햄이 어떤 햄이냐에 따라서도 국물의 풍미가 달라진다. 하지만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햄은 바로 "스팸" 이다.
전쟁과 탄생한 햄
찌개의 국물이 스며든 햄 맛은 짭짤하면서 고소하고, 하얀 쌀밥과 이만한 찰떡궁합의 햄은 찾기 힘들다.
스팸의 원산지는 미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본토 사람들은 이 햄을 즐겨 먹지 않는다. 일단 원재료부터가 버려지는 돼지고기를 사용하다 보니 품질이 썩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스팸은 20세기 전쟁사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음식이다.
때는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시절 탄생한 값싼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러나 그 위상을 떨치게 된 것은 얼마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이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에게 열량도 높고 보존성이 좋은 보급식량이 필요했는데 단단한 캔 속에 들어있는 가공육, 스팸이 모든 조건에 딱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시절 스팸은 일주일에 무려 15,000천 톤이나 납품되었고, 또한 먹을 게 부족한 연합군의 국민들에게도 아낌없이 지원됐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었다. 미군이 파견되는 곳마다 스팸은 계속 따라다녔다. 한국전쟁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한국 사람들도 6.25 전쟁 속에 이 네모난 햄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부대찌개의 종류
의정부식 부대찌개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가공육으로 만든 부대찌개의 원형은 크게 의정부식과 송탄식으로 나뉜다.
둘 다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자연스레 가공육을 이용한 음식 문화가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부대찌개 하면 의정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부대찌개처럼 '찌개'가 원형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의정부에서 처음 부대찌개를 팔았던 식당에 가보면 부대볶음이라는 메뉴가 있다. 처음에는 햄과 각종 재료를 볶은 요리로 팔다가 물을 부어가며 양을 늘리다 보니 지금의 부대찌개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다. 현재는 부대찌개가 메인이라 사이드 메뉴 형태로만 남아있다.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은 김치 베이스의 깔끔한 국물맛이다. 잡다한 재료보다 햄, 김치, 다진 고기, 당면 같은 기본 재료로만 맛을 살리고 있다. 또한 의정부에는 부대찌개 거리도 있고 매년 부대찌개 축제도 열리면서 홍보를 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송탄식 부대찌개
의정부식과 다르게 사골육수가 기본이고 치즈가 들어가 묵직한 맛이 특징이다.
수입 기성품을 사용하고 다량의 대파 및 양파, 매장서 직접 담는 김치에 별도의 양념장이 추가되어 국물을 내며 베이크드 빈스는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는 햄과 소시지는 각 1종류뿐인데 여기에 치즈를 넣어 감칠맛을 더한 다음, 국물이 끓으면 향을 살리기 위한 간 마늘을 먹기 직전 추가로 넣는다. 사리는 시판되는 별도의 사리면이 아닌 신라면을 넣어 먹는 것이 현지의 정통 송탄식 부대찌개이다. 다른 라면을 넣기도 하지만 신라면을 넣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잔반찌개에서 밥도둑으로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을 활용했기 때문에 처음엔 '기지촌 음식'이라는 낙인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되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한국의 독특하고 인기 있는 메뉴가 되었다.
지금도 부대찌개는 계속해서 다양한 재료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사리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부대찌개 전문점에 가면 육수의 종류도 고를 수 있다. 요즘은 마라 부대찌개, 토마토 부대찌개, 만두 부대찌개 등 호기심이 생기는 변종(?)도 생겨나고 있다.
그냥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넣고 끓이는 느낌이지만 은근히 집에서는 맛 내기가 쉽지 않다. 햄과 김치의 조화, 양념장의 황금 비율, 그리고 육수의 깊이가 어우러져야 진짜 부대찌개의 맛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재료가 다양하기에 내 맘대로 커스텀이 무한한 메뉴이기도 하다. 바로 그 자유로움과 다채로움 때문에 오래도록 사랑받는 메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