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돈까스
어릴 때 엄마한테 이런 말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돈까스 먹으러 갈까?"
그 말에 설레었다가 병원에서 주사 맞고 울었던 기억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엄마한테 배신감을 느낀 첫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어쨌든 주사를 잘 맞았다며 사주신 돈까스를 먹다 보면 아픈 건 금방 잊고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남아 있다.
바삭한 튀김 속에 돼지고기의 육즙이 풍부한 돈까스는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이다. 하지만 돈까스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바로 '돈까스'와 '돈카츠'로 나뉜다. 간단하게 돈까스는 한국식, 돈카츠는 일본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개인적으로 소스가 듬뿍 뿌려진 얇은 경양식 돈까스를 더 선호한다. 적당히 바삭하면서도 어릴 때 많이 먹던 추억의 맛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반면 돈카츠는 엄청 바삭하고 두꺼운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돈까스와 돈카츠는 사이드로 나오는 메뉴에도 차이가 있다. 일단 돈까스는 소스가 위에 뿌려져 있고 통으로 나오기 때문에 직접 썰어 먹야야 한다. 없으면 섭섭한 마카로니 샐러드는 필수다. 거기에 조그만 밥 한 덩이와 양배추 샐러드에 케요네즈 소스까지 있으면 한국식 경양 돈까스의 완성이다.
반면 돈카츠는 튀김옷이 엄청 바삭하고 고기가 두껍다 보니 미리 잘 잘라져서 나온다. 소스를 찍어먹는 방식이고 와사비나 겨자를 내어주는 곳도 있다. 그리고 어쩐지 돈카츠는 밥보다는 작은 우동과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처음 돈카츠집에 가서 작은 절구 세트를 받았다. 그 안에는 통깨가 들었는데 각자 알아서 갈아 소스에 넣는 것이다. 아니 그냥 갈려 있는 깨를 주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귀찮게 하나 싶었다. 아마 깨가 갈린 취향이 다 다르고 바로 갈아내야 고소한 향이 더 나기 때문 일 것이다. 이렇듯 비슷하면서도 돈까스와 돈카츠는 꽤 다른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돈까스는 카레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전파된 음식이다.
국민 급식메뉴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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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까스의 뿌리는 원래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에서 시작됐다. 고기를 손질해 빵가루를 입혀 튀겨먹는 음식으로 맛이 없을 수 없는 슈니첼은 금세 유럽의 각 국에 퍼진다. 영미권에서는 슈니첼을 "포크커틀릿"으로 불려졌다. 이 슈니첼이 언제 일본에 전해졌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서양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한 180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서양 음식이 함께 수용되고 그중에 돈까스가 있었다.
처음에 돈까스는 소고기나 양고기로 만들었다. 하지만 워낙 비싼 고기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돼지고기를 이용했다. 처음 돈까스는 지금보다 고기의 두께도 엄청 얇고 빵가루 역시 얇은 빵가루를 썼다. 일본 사람들은 고기가 두꺼우면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일본의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체구가 굉장히 작았다. 지금은 평균 신장이 많이 올라갔다지만 동아시아에서도 작은 편에 든다. 키가 크려면 단백질인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일본은 천황이 육식을 금지하면서 수백 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살다가 서양 문물을 들여오면서 갑자기 고기가 들어왔는데 이걸 크게 먹으려니 거부감이 크게 드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얇게 만들어서 먹게 된 것이다. 고기를 얇게 저며서 끓는 물에 익혀먹는 스키야키가 탄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아무튼 지금의 두꺼운 형태가 나온 건 1929년이 되어서야 탄생했다. 도쿄에 있는 한 가게에서 고기를 속까지 익힐 수 있는 가열 조리법을 고안하면서 두꺼운 돼지고기 형태로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칼로 고기를 미리 썰어 놓아 나이프와 포크 대신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돈까스가 1910년대 일제강점기 때 들어왔다. 역시 처음에는 부유층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다. 1914년 조선철도호텔과 1925년 경성역 2층의 그릴이라는 음식점에 처음 돈까스가 들어왔다. 두 곳 모두 외국인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었다. 백화점이 생기면서도 모두 꼭대기 층에서만 판매하는 고급 음식이었다.
몸값 귀했던 돈까스는 30년대가 되면서 점점 일반인들에게도 퍼지게 된다.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충무로 일대에 경양식이라는 타이틀로 돈까스를 파는 곳들이 생겨났다. 이 즈음 조선철도호텔에서도 투숙객이 아닌 일반 손님들에게도 돈까스를 팔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에는 서민들도 특별한 날에 경양식당에서 돈까스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아마 이쯤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돼지고기 가격을 낮추면서 돼지고기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본다. 이후 70~80년 대 경제성장과 함께 외식 대표 메뉴로 자리 잡게 됐다.
하지만 90년대 접어들면서 패스트푸드나 치킨, 패밀리 레스토랑 등에게 밀려 경영식당은 점차 낡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양식당에서 벗어난 돈까스는 돈까스 전문점과 기사식당, 분식집의 대표 메뉴로 떠오른다. 게다가 시장이나 마트에서도 질 좋고 맛있는 돈까스를 쉽게 접하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