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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급식 메뉴 카레

카레가 한국 패치되기까지

by 채널김

카레를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급식을 먹을 때도 단골 메뉴, 엄마가 여행 갈 때 비상식량으로 한솥 가득 만드는 메뉴, 심지어 회사 구내식당에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보이는 듯한 메뉴다. 카레의 맛도 먹는 법도 다양해서 레시피 또한 무궁무진하다.


나에게 카레는 엄마가 해주는 3분 요리 집밥, 혹은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메뉴가 다였다. 집밥의 상징이기에 돈 주고 사 먹는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카레 전문점이 많이 생길 무렵에도 큰 기대가 없어서 사 먹지 않다가 아주 한참 뒤에야 처음 사 먹어본 카레의 맛은 놀라웠다. 그동안 먹어본 카레와는 차원이 달라서 한동안 중독자처 카레를 사 먹었었다.



그런데 카레가 인도에서 처음 넘어왔다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나라마다 맛이 다르고 먹는 방법도 달라진 걸까? 이는 카레라는 말 자체의 뿌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카레 커리 카리

'카레'라는 게 원래 하나의 음식을 말한다기보다는 인도 남부지방에서 소스라는 뜻의 '카리'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카리라는 말은 특정 소스가 아니라 각종 향신료와 재료를 끓여서 만든 모든 소스를 말한다. 집집마다 취향껏 바꾸기도 했는데 매번 다른 향신료를 골라 넣기 귀찮으니까 재료들을 미리 배합해 두는 편이었다. 이런 형태를 '마살라(masala)'라고 한다. 우리가 인도음식점 가서 익숙하게 봤던 메뉴 이름들은 이런 특정한 마살라의 배합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한국식 카레는 인도에 가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우리나라의 대표 중식인 짜장면을 중국 본토에 가서 찾으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카레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직접 인도에서 카레를 들여온 건가? 그건 아니다.



바로 영국을 한 번 거쳐 들어온 것이다. 흔히 영국음식 하면 '맛이 없다'의 대명사인데 그런 영국에서도 카레는 맛있고 꽤나 즐겨 먹는 음식이다. 영국인들은 인도를 식민지로 두면서 카레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형태다. 강한 향신료 맛을 줄이고 버터와 밀가루를 넣어 가루타입의 카레를 만들어 먹었다. 가루 타입의 카레는 조리가 간편하고 빵만 있으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됐기에 영국 해군의 보급식량으로 쓰였다.


이후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시대에 일본의 한 항구에 정착한 영국 해군의 배. 당시 일본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카레를 처음 접한다. 영국 해군들이 먹던 카레를 따라먹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당시엔 영국 해군들의 피지컬이 이 카레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일본 해군들의 짬밥은 오직 쌀밥뿐이어서 영양 불균형 상태였다. 그런데 밥이랑 같이 먹는 카레야 말로 특식 중의 특식이고 맛까지 좋아 빠르게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후 일본의 대중문화에서는 카레를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카레를 이용한 새로운 음식과 메뉴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다. 보통 일본 여행을 가면 초밥이나 라멘 맛집을 많이 가는데 로컬 카레 맛집도 정말 많다. 아무튼 이렇게 인도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우리에게 전파되어 한국식 노란 카레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한국식 카레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 처음 카레를 접하게 되었을까? 한국에 카레가 들어온 건 1925년 경이다. 그 당시엔 아무나 접하기 꽤나 힘든 음식이었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 카레라이스 한 그릇이 당시 쌀 1kg의 가격보다 무려 5배나 비쌌으니 어지간한 부자 아니고서는 냄새도 맡기 힘든 음식이었다.


이렇게 카레를 맛도 못 보고 침만 흘리고 있을 때 한줄기 빛을 내려준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카레 하면 떠오르는 그 회사 '오뚜기'이다. 1960년대 당시 오뚜기가 일본에서 수입하던 카레를 국산화하기로 결심하고 생산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온 제품은 점차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고 발전을 거듭해 1980년대에는 즉석식품으로 출시됐다. 즉석 3분 카레가 이때 나오면서 점점 가정에서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갈색빛을 띠는 일본카레와 비교해서 우리나라 카레는 유난히 노란색이다. 일본식 카레는 밀가루와 버터가 주를 이루고 다른 향신료가 섞여 있다. 반면 우리나라 카레는 다른 나라에 비해 강황의 함유량이 높아서라고 한다. 강황에 들어있는 커큐민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카레=건강식=노란색]이 한국식 카레의 기본 공식이 됐다.


이 공식은 오뚜기의 전략적인 선택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단순하고 친숙한 풍미 덕분에 완성된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해 영국을 거쳐 일본을 통해 들어왔지만, 한국에서는 강황의 색과 건강 이미지를 앞세워 독자적인 ‘노란 카레’ 문화를 만들게 된 셈이다. 지금도 학교 급식에서, 가정식 반찬에서, 회사 구내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노란 카레 한 접시는 사실 수많은 역사적 경로와 문화적 변형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카레는 그냥 밥에 올려 먹어도 훌륭하고 맛있지만 환상적인 조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기본 카레에 여러가지 튀김이나 소시지, 계란 후라이같이 토핑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진다. 기본으로 넣는 재료에 따라서도 담백하게, 혹은 감칠맛이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등 선택지가 많다.


빵과 함께 먹어도 맛있고 카레 떡볶이나 카레우동처럼 면과도 어울려 음식계의 카피바라라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음식과 친화력이 좋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결국 마지막은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이 큼직하게 들어간 노란색의 집밥 스타일의 카레에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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