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운동해 보기
얼마 전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기로 유명한 베트남 하노이로 다녀왔다. 그리고 가기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여행지에서 운동하기'였다.
그동안 나는 여행까지 가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쉬러 간 게 맞나?' 싶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정말 대단해 보였다. 늘 먹고 노는데만 신경 쓰느라 다른데 쓰는 시간은 아까웠던 나였지만 이번엔 운동이라는 계획도 함께 세우게 되었다.
하노이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다. 하노이의 유명 맛집들이 모여있고 시장 구경하기도 즐거운 곳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명동 느낌이려나?
낯선 곳은 늘 즐겁다
하노이에 잠깐 머물면서 느낀 점은 정말 외국인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보는 외국인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다양한 인종들이 많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사람들은 제각각의 방식과 시간에 맞춰서 운동하고 있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던 그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던 '달리기에 괜찮은 길'이 보인다. 멋진 풍경을 보면 여기서 뛰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한다. 호안끼엠 호수도 그 생각 때문에 뛰어보고 싶어졌다. 반짝이는 호수를 배경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대로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한국도 아직 덥지만 가을이 다가오면서 습한 느낌은 꽤 없어졌는데 베트남에 도착하니 다시 여름 한가운데로 들아온 느낌이었다. 아침 이른 비행기로 와서 거의 잠도 못 자고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많이 나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래도 얼마 만에 온 여행이냐며 시간 낭비 없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내일 운동을 하기로 했으니 첫날은 일찍 마무리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늘 일어나던 4시 반. 보통 한국이었으면 스트레칭하고 슬슬 나갈 시간인데 아직 밖이 어두워서 혼자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 말이다. 조금 더 해가 뜨길 기다리다가 또 깜빡 잠이 들었다. 이런.. 해가 커튼 사이로 들어오고 밖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듯 눈을 떴다. 부랴부랴 나왔지만 계획보다 좀 늦게 나갔다.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운동을 해보다니! 누군가에겐 일상이겠지만 이렇게 내 경험이 하나 더 늘어나니 신나는 마음으로 나왔다.
동남아는 너무 뜨겁다
7시쯤에 나왔지만 우리나라보다 해 뜨는 시간이 이르다. 일출 시간이 5시 30분 정도였으니 이미 바깥은 꽤 달궈지고 있었다. 호수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로 가까웠지만 가는 길이 험난하다. 현지인들의 바쁜 출근 시간에 맞춰 나오다 보니 거리에는 오토바이로 정신없었고, 엉망진창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을 눈치 보며 건너느라 이미 진이 다 빠진다.
겨우겨우 도착했지만 넓고 빛나는 호수를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호수 주변에는 이미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봤던 음악에 맞춰 단체 '율동'을 하시는 어머님들을 보니 괜히 정겹기까지 했다. 열심히 뛰는 사람들도 보이고 일찌감치 나와서 호수를 사진에 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얼레벌레 준비 운동을 마치고 슬슬 뛰어보기 시작했다. 낯선 곳을 뛰고 있다는 기분에 평소보다 더 들떴다. 그러다 보니 조금 빠르게 뛰게 됐는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벌써 땀이 줄줄 흐른다. 늘 해가 없는 시간만 피해서 뛰다가 햇빛을 마주하니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을 잘한다. 땀이 한번 쫙 나고 나니까 그냥저냥 달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호수에 반짝 거리는 햇빛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언제 또 여기까지 와서 뛰어보겠냐는 생각을 갖고 뛰니 한 바퀴 도는 게 어렵지 않았고 대략 2k가 좀 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내 앞으로 나타난 커플. '둘 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운동하는구나', '부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뒤따라 가는데, 오? 나랑 속도가 비슷하네? 그렇게 예기치 않게 저 둘은 나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었다.
두 사람의 속도를 맞추다 보니 꽤 비슷한 속도로 뛰게 되었다. 비록 평소보다 약간 빠른 페이스로 뛰긴 했지만 내 앞에 기준이 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그리 힘들진 않았다. 중간중간에 시계를 보면서 내 속도를 조절했어야 했는데 페이스메이커가 생기니 그런 거 신경 안 쓰게 되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 나는 이날 페이스메이커의 필요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일까?
아무튼 그들과 한 세 바퀴를 같이 뛴 거 같다. 중간쯤에는 다 뛴 건지 코스에서 나가버렸다. 그들이 가고 나는 한 바퀴 더 뛰었지만 역시 따라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금방 재미가 식었다. 나 역시 마지막 한 바퀴만 마무리로 뛰고 털레털레 숙소로 돌아왔다.
거울을 보니 내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고 옷은 축축해서 벗겨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만족감은 너무나 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뜻밖의 수확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풍경을 보는 즐거움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낯선 곳에서 땀 흘리며 뛰어본 경험은 그 자체로 특별했고,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남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