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 이렇게 힘든 거였어?
내가 잠깐 꿈을 꾸었나 싶은 일주일의 휴가가 끝났다. 휴가라는 단어 자체가 늘 그렇듯 달콤했지만, 막상 지나고 나니 남은 건 아쉬움뿐이었다. 휴가 동안에도 달리기를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딱 하루만 지키고 나머지는 정신을 놓아버린 채 놀고 먹으며 흘려보냈다. 맛있는 음식과, 밤늦게까지 이어진 수다와 술자리, 느긋하게 늦잠 자던 아침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즐거워서 운동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문제는 휴가가 끝난 뒤였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맛있는 꿀만 빠는 인생을 신나게 즐기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니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열흘 가까이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어느새 게으른 모습이 익숙해져 버렸다. 운동을 하며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착각했는데, 실은 나는 놀고 먹는 삶을 훨씬 더 즐기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결국 현실은 다시 제 앞에 놓여 있었고, 나는 다시 몸을 움직여야 했다.
사실 여행 전에도 발목이 계속 아팠다. 뛰면서 미세한 통증이 있었는데 그걸 핑계 삼아 휴가 동안 더 쉬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며칠 푹 쉬니 통증은 가셨고 몸 상태는 오히려 괜찮아진 듯했다. 다만 문제는 생활 리듬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습관을 버리고 다시 새벽에 맞춰 몸을 깨우려니 쉽지 않았다.
해는 짧아져 새벽은 여전히 한밤중처럼 캄캄했고, 공기는 전보다 훨씬 싸늘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활기차게 눈을 뜨곤 했는데 이제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무엇보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려웠다. 밤만 되면 휴가 때의 여유로운 기분이 되살아나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어쨌든 꾸역꾸역 다시 나와서 달리기 전, 늘 그렇듯 휴대폰을 꺼내 새벽의 사진을 찍었다. 같은 시간인데도 확연히 계절이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엔 환하고 청량하던 공기가 이제는 어둡고 차갑게 다가왔다. 심지어 살짝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새벽에도 운동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그와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호흡 소리도 점점 활기를 더해갔다.
집에서 미리 스트레칭을 하고 나왔지만 오랜만에 달리려니 몸은 여전히 뻣뻣했다.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반팔 반바지가 기본이었는데, 이제는 긴팔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처음엔 천천히 걷다가 몸이 풀리는 느낌을 기다리며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달라붙는 듯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확실히 여름의 무더위와 습기가 사라진 공기는 달리기에 제격이었다. 서늘하면서도 상쾌했고, 밤새 잘 자서 그런지 몸도 가벼웠다. 오랜만에 뛰는 것 치고는 속도가 잘 붙었고, 어느새 평소보다 더 빠른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 흔히들 여름을 지나 가을에 접어들면 한 단계 성장한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딱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가을 공기가 내 폐 속까지 씻어주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속도를 높였던 탓일까. 금세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헉헉대며 뛰다 보니 ‘아니, 며칠 새 내 몸이 이렇게까지 둔해졌나?’ 하는 자책이 스쳤다. 운동을 쉬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고, 동시에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의욕도 금세 꺾였다. 평소 같으면 1시간은 너끈히 뛰었을 텐데, 결국 30분 남짓 달리고 멈춰버렸다. 멈춰 서니 땀이 식으며 종아리에 묵직한 땡김이 올라왔다. 평소엔 없던 느낌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복잡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들어하지?’ 싶은 생각과 함께 다시 꾸준히 하지 않으면 금세 무너져버린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다시 시작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었다. 운동은 결국 습관이었고, 그 습관은 잠시만 방심해도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무너진 만큼 다시 쌓아 올리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아쉽긴 하지만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달려봐야겠다. 금방 또 재미를 붙이고 잘 뛸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또 얼마나 뛸까 하는 생각에 설레면서 잠들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