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런 10K

경험담이다

by 채널김

드디어 하반기 첫 대회에 나갔다.

마블런은 올해 초부터 계속 나가길 기다린 대회다. 아니지, 작년부터 참가하겠다고 다짐한 대회다. 생각보다 참가자도 꽤 많은 (15,000명) 대회인데 대회 이름에 '마블'이 들어가니 마블팬으로서 꼭 참가해보고 싶었다.


내가 마블런을 기다린 이유는 작년에 참가를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재밌어 보여서 신청을 했지만 같이 뛰는 내 짝꿍이 몸이 안 좋은 바람에 포기하게 된 대회다. 그래서 아쉬움에 올해는 꼭 뛰려고 다짐했고 무사히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회사 앞 도로폐쇄 안내판만 봐도 설렌다

두 달 전에 등록해 놓은 대회인데 역시 등록해 놓고 잊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 별로 실감이 없다가 대회 며칠 전부터 도로통제 안내판이 놓인 걸 보니 얼마 안 남은 시간이 느껴졌다.


작년엔 사전기념품이 꽤 다채로웠다. 양말, 두건, 마블 장난감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거에 비해 올해 기념품은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작년 후기들을 보니 행사도 다양하고 재미있었다는 글이 많아서 대회 자체는 즐거울 거 같아 기대가 됐다.


작년엔 단순히 기념품 갖고 싶어서 신청(저 티셔츠는 좋은 운동복이 됐다...)


올해는 좀 썰렁하다. 티셔츠와 에너지젤, 스포츠의류 세제


러닝 대회가 있는 날 재밌는 점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대회는 보통 8시에 시작하는데 여유 있게 1시간 전에는 도착하는 게 좋다 보니 다들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도 출근시간보다 일찍 나왔는데 역시나 버스에는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보인다.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대회장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많아진다. 나의 경쟁자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뛰는 사람들로서 묘하게 동료애도 생기고 내적 친밀감도 생성된다.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다

어쨌든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 15,000명이라는 인파는 어마어마했다. 드디어 제대로 연습하고 뛰어보는 첫 대회라니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난리도 아니다. 오늘의 목표는 단 하나, 1시간 이내로 들어오는 것.


원래는 기록은 신경 안 쓰고 재밌게 달리는 거였는데 각 잡고 뛰다 보니 기록 욕심이 생겨버렸다. 나름 3개월 연습했는데 지난 대회보다는 잘 나와야 할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침 날씨는 적당히 구름이 있어서 뛰기 좋아 보였고 행사장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에너지를 얻었다. 역시 마블답게 곳곳에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도 내년에 저렇게 코스프레하고 뛰어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어설프지만 헐크, 나타샤, 타노스와 가장 많이 보였던 스파이더맨

스트레칭 좀 하고 사진도 찍고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고 슬슬 출발선에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장실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 대회 몇 번 뛰어봤다고 엄청나게 긴장되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건 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람구경하느라 정신은 없다. 지하철 환승하면서 보는 인구도 많지만 차가 다니는 길 한복판에 이런 인파라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경험하겠나 싶다.


나는 10k B조로 꽤 뒷순서인데 앞서 하프 주자들이 먼저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뒤에 출발할 수 있었다. 이번엔 꼭 한 시간 안에 들어오겠다 다짐하고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날씨도 엄청 좋고 코스도 지루하지 않은 코스였다. 대략 광화문 > 남대문 > 청계천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데 서울 대표 랜드마크 보면서 뛰다 보니 재미없을 틈이 없다. 항상 차가 많던 광화문 앞을 달리다니 계속 감격하면서 뛰었다.



거참, 쉽지 않네

처음엔 굉장히 슬슬 달리다 보니 별로 힘들 것도 없이 무난하게 3k 정도는 갔다. 이제 이 정도는 껌이지 뭐. 연습대로 초반에는 천천히 달리고 중반부터 서서히 속도를 올려나갔다. 그래 뭐 3달 연습했는데 솔직히 1시간 이내로는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의 구간, 6~8k 사이에서는 다리가 꼭 무거워진다. 자물쇠로 잠근 듯 다리가 꼼짝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조금만 빨리 페이스를 올려도 금방 헐떡거리고 있는 꼴이 된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보내는 '파이팅'이라는 소리도 5초 만에 사라지는 버프다. 8k 지점쯤 시계를 보니 이미 52분쯤 지나 있었고 오늘 내 기록 깨기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1k는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서 숨이 찰 정도로 뛰어 들어왔다. 결국 최종 기록은 1시간 4분 22초. 많이 아까운 기록이었다. 마지막엔 평소보다 빨리 뛰어서 살짝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기록을 보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도 안 했던 4월 대회보다 기록이 더 나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뛰었어서 더 잘 나온 걸까? 아니면 대회마다 코스가 달라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걸까? 이렇게 올해 10k 대회를 마무리하긴 좀 아쉽긴 하지만, 역시나 노오력이 부족한가 보다. 이게 어디냐라고 생각해보려 하는데 자꾸 튀어나오는 분함은 어쩔 수 없다. (공부 안 한 친구한테 진 느낌..)



꿈이 또 생겼다

다행인 것은 봄 대회 때는 뛰고 나서는 그날 종일 다리가 아프고 또 다음날까지도 아팠다. 그리고선 피곤한 느낌이 꽤 오래갔는데 이제는 이 정도는 익숙해져서인지 쌩쌩(?)까지는 아니어도 뛰고 나서도 많이 돌아다닐 만큼 체력이 남아졌다.


강인한 체력을 얻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내가 대회 나가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밥맛'이 너무 꿀맛이기 때문이다. 대회 측에서도 간식 꾸러미를 주고 거기엔 내가 몰랐던 새로운 간식을 얻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참가비에 모두 포함된 거라 내가 돈 주고 샀다고 보는 게 맞다.


몇 개는 먹어 치워서 흔적도 없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완주해서 들어오면 무대에서는 특별공연도 하고 곳곳에 행사부스도 있어서 러닝 이후에도 볼거리가 좀 있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건데 러닝 후 먹는 빵이 정말 맛있다. 별 거 없어도 뭔가 운동 후 먹는 밥이 꿀맛인 것처럼 말이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쯤, 분명 두 시간 전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했던 도로는 금방 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거리를 보고 있자니 마법이 풀린 것 같다. 내가 금방까지는 저 넓은 도로에서 뛰고 있었는데 꿈을 꾼 건가 싶다. 이제는 다른 꿈을 꾸기 위해서 내일부터 또 뛰어야겠다.







역시 마무리는 고기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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