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태어난 맛
어떤 음식은 첫 한입에서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다.
야들야들한 닭고기를 살짝 씹는 순간 터져 나오는 짭짤 달달하고 촉촉한 양념이 스며드는 그 순간 말이다. 그리고 양념을 가득 머금고 있는 쫄깃하고 탱탱한 당면의 식감은 쉽게 잊기 힘든 맛의 기억을 남긴다.
찜닭이 좋은 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양념이다. 그 양념에 닭고기와 각종 채소에서 배어 나온 감칠맛에 마지막으로 밥을 비비는 순간, 이 음식의 완벽한 마무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마지막을 위해 찜닭은 먹는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찜닭은 놀랍도록 푸짐한 음식이다. ‘닭 한 마리’라는 단어가 이렇게 든든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드물다. 큼직하게 잘린 감자와 당근, 양파와 대파, 때로는 청양고추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달큰한 양념 안에서 서로의 맛을 스며들게 한다. 닭고기 자체의 담백함을 바탕으로 간장 양념의 깊이를 더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을 내는 것도 찜닭의 매력이다.
찜닭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전통이 있는 오래된 음식처럼 느껴지지만 우리가 찜닭 하면 유명하게 알고 있는 안동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 안동에 있는 구시장 닭골목의 한 음식점에서 만들 게 된 음식이다.
그 시절 안동 구시장 상인들은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의 확산에 대응하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우리만의 닭고기 요리'를 위해 고심했고 손님들의 요구 사항대로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다 보니 찜닭이 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이 찜닭은 안동의 독자적인 메뉴로 정착되었다.
안동 구시장의 상인들은 찜닭을 한 지역의 대표 메뉴로 살리고자 노력했고, 닭골목은 어느새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도 찜닭 하면 안동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유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이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봉추찜닭' 브랜드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당시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은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고 '찜닭'이라는 메뉴는 생소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맛을 한번 보면 빠르게 입소문을 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찜닭에서 맛의 방향성과 비주얼을 조금 다듬어 도시형 메뉴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초기 안동찜닭의 원형과 지금의 모습의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 당면일 것이다. 지금처럼 중국식 넙적 당면을 많이 넣기 시작하면서 푸짐함이라는 매력 포인트가 더해졌다. 사실 이 당면 때문에 닭보다 당면으로 배를 채운다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당면을 빼놓고는 찜닭을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좋은 게 어떤 사람들은 이 짭조름한 국물을 머금은 당면을 좋아해서 닭보다 더 선호하기도 한다. 닭고기 한 마리로 채소를 가득 넣고 당면도 먹을 수 있고 여기에 남은 국물에 밥까지 비벼먹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치밥'의 원조격이다.
과거엔 푸짐하면서 저렴한 음식이었지만 어느 순간 하나에 2~3만 원은 기본으로 하게 되어서 이젠 저렴한 음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제대로 된 찜닭은 하나에 3만 원이 넘게 드니 자주 손이 가는 음식이 되기엔 고민이 된다.
청양고추를 넣어 맵게 만들기도 하는데 원조는 이쪽이 가깝다. 현재의 단맛이 강하게 된 것은 서울 사람의 입맛에 맞춰 변형된 것이다. 안동 찜닭 골목 본 고장의 맛은 상당히 매콤한 편이다.
찜닭의 양념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간장, 설탕 혹은 물엿, 마늘, 생강 정도면 기본 틀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는 레시피가 간단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만들려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된다.
특히 닭의 누린내를 잡는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데치는 과정 하나만으로도 싱크대 앞에서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데칠 때 최소한 맛술이라도 넣어줘야 하고 불순물도 한 번 싹 씻어줘야 한다. 이것만 해도 벌써 요리 포기각이 나온다.
그다음은 재료 손질이다. 감자와 당근은 어느 정도 크기로 잘라야 양념 안에서 무너지지 않고 맛있게 익을까? 당면은 언제 넣어야 적당히 쫄깃할까? 국물의 농도는 어떤 순간에 가장 맛있을까?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전체 맛을 결정한다.
게다가 찜닭은 시간이 필요하다. 재료들이 양념을 흠뻑 머금기까지, 닭이 뼛속까지 간을 느낄 때까지 충분히 끓여내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그 맛이 완성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이나 휴일, 느긋한 오후에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요리다. 제대로 만들었을 때 그 보람은 예상 이상으로 크다.
찜닭과 비슷한 다른 나라 음식도 많다. 프랑스의 코코뱅(Coq au Vin)이나 필리핀의 아도보(Adobo), 인도네시아의 삼빠 사이(Semur Ayam) 같이 달콤한 양념 베이스에 오래도록 조려낸 닭요리다. 결국 재료도, 조리 방식도, 그리고 ‘달짝지근하게 조려낸 닭요리는 맛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도 국경을 크게 넘나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