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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Dec 21. 2024

다자녀 차별을 없애주세요..?

기분이 나쁘다고 기분이!

우리 회사는 1년에 한 번씩 고급 호텔에 호캉스를 보내준다. 이때 포인트제도가 있어서 높은 포인트 순으로 좋은 호텔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때는 작년 겨울, 서울에 한 고급 숙소가 회사 제휴호텔 리스트로 떴고 포인트 만점인 사람들은 지원하기에 급급했다. 만점인 아닌 사람들은 광탈 예정으로 사실상 만점자들끼리의 경쟁이었다.


제휴숙소에 대한 숙소 안내정보가 사내정보에 떴을 때 차장님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수용인원이 또 4명이라 적혀있네! 저번에도 애들 5명 데리고 호텔 갔는데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눈치 보인다니까?!”


차장님은 애가 다섯이라 숙소 수용인원이 보통 네 명이라 적혀있는 것에 불만을 갖고 계셨다. 작년에도 이 문제로 호텔에서 애들을 데리고다니기에 눈치가 보여 숙소담당 직원에게 말을 해뒀는데 올해도 바뀐 게 없으니 화가 나신 것이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애들을 다섯이나 낳아 힘들게 기르고 있는데 다수의 평균인 네 가족에 맞춰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 소외받는 기분을 느끼신 듯했다. 차장님은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셨다.


“아니, 내가 포인트가 적어서 못 가기는 하는데..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고 기분이! “


보통 수용인원이 네 명이라 적혀있어도 숙소에 얘기를 하면 추가요금을 내고 인원추가가 되는데 어찌 됐든 표기에 네 명이라 적혀있는 것 자체가 본인의 가족이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언짢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정인원이 네 명인 숙소를 본인과 같은 다자녀 가족들을 위해 여섯 명으로 표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차장님께서 사리에 맞지않는 분노표출과 무리한 요구를 하신다고 느꼈다. 본인이 다수에서 소수의 집단에 속하게 된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보였다.


차장님께서는 막내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한 번도 외식을 해본 적이 없다 하셨다. 부부가 애 다섯을 케어하기도 쉽지 않고 식당이 보통 4자리 식탁으로 되어있으니 자리 구하기도 까다로운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통, 표준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본인이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왜냐하면 소수 집단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너그럽지 않은 탓이다.


요새 결혼율이 많이 낮아졌다 한들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결혼한 사람이 더 많고 캥거루족보다는 아이가 있는 집들이 더 많다. 차장님께서는 결혼, 아이 두 개의 관문을 열심히 통과해 다수의 집단에 들어갔는데 애를 두세 명 더 낳는 바람에 평균의 범주에서 벗어나 소수의 집단에 속하게 된 것에 아직 적응을 못하시는것 같았다. 다수에 속에 자연스럽게 누린던 것을 빼앗겨버리니 적잖이 당황한 듯 하다.


참, 쉽지 않은 요즘이다. 남들 따라 움직이면 대중 속에 묻혀 별 탈 없이 흘러갈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개성을 삶에 녹여내면 바로 모난 돌처럼 튀어나와 여기저기 부딪히며 살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향과 색에 탈취제를 뿌려 무채색으로 둔갑한 후 동그라미들 속에 끼어들어가 둥글둥글 살아가려 한다.


요즘, 결혼제도에 대해 의문 아닌 의문을 품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결혼은 법률혼을 통해 종신계약을 하는 것인데 법에서 규율한 해지사유 말고는 내 맘대로 해지할 수 없다는 점과 정신적, 성적 결합 등 개인의 사사로운 부분까지 법으로 강제하는 점이 요새 mz세대가 추구하는 자율성에 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각에서는 종신계약에서 10년 단위의 연장계약으로 형태를 달리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들린다.


이런 불만을 갖는 mz세대들도 막상 결혼적령기가 되면 본인이 다수의 집단에 속하지 못할까 봐 열심히 짝을 찾아 나선다. 혹시라도 그 ‘시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소수의 집단에 속할까 봐 분발하는 것이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삶이란 무채색으로 자신을 숨기며 무사히 안전하게 종착지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색과 향을 풍부하게 만들며 살아가다 향기롭게 잠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기에는 이걸 해야지, 다음에는 이걸 해야지 하며 퀘스트 깨듯이 살지 말고 자체제작 커스텀 향수를 만들듯이 본인이 취하고 싶은 것을 하나둘씩 첨가해 만족스러운 향기를 만들어가면 된다. 물론, 본인이 만들어낸 향을 남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취향을 많이 담아낼수록 같이 좋아해 줄 사람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하루하루 자신의 향에 취해 향기롭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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