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보단 지속, 성공보단 성장을
'솔직히 숏폼 콘텐츠, 그렇게 심각한 문젠가?' 내심 생각해 본 적 있다면 자신 있게 손! 하도 여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숏폼을 문제시하는 흐름이 대세다 보니, 이에 쉽게 반기를 들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실상 누구나 숏폼의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기도 한 시대에서, 숏폼의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
최대한 편견 없이 숏폼 시장을 살펴보자. 눈요깃거리가 될만한 선정적인 콘텐츠나, 상업적으로 반복 재생산되는 챌린지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난해한 학술적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영상이나, 방대한 양의 고차원적인 정보를 압축적으로 잘 요약한 영상들은 얼마나 유익한가. 혼자 공부해서 다 정리해야 했다면 며칠이 걸려도 못했을 걸 단 몇 분 안에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게 문제일리가.
『인스타 브레인』의 저자 겸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 안데르스 한센은, 바로 이런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생태계 속 콘텐츠의 유해성 자체를 직접적으로 지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가 우려를 표하는 건, SNS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소비되는 구조다. '한 줄 정리', '1분 요약', '결말 포함' 등 핵심만 떠먹여 주듯 정리한 콘텐츠가 만연한 가운데, 우리 뇌는 이를 소비하며 은연중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노력 없이 찾아오는 대가에.
한센에 따르면, 적은 노력을 투하하고 빠르게 보상을 얻는 건, 뇌과학적 관점에서 우리 뇌의 보상 체계를 망가뜨리는 사태를 빚는다. 분명 복잡다단한 내용으로 구성된 것들을 채우고 있던 군더더기를 덜어 내고, 주요 정보만 축약해 습득하는 건, 불필요한 수고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까다롭고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한 뒤, 정보를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너무 익숙해지면, 우리 뇌는 점점 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되어간다.
고통을 마주하면 십중팔구 투쟁보단 도피를 선택하는 뇌, 고뇌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뇌가 되어간다는 것. 언뜻 생각해 보면 이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기 위해, 나한테 익숙하고 편한 상태에 머물며, 긴장감에 경직되지 않은 말랑한 뇌로 살겠다는 게 무슨 문제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어떨는지. 본인의 인생에서 기필코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중,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큰 난관에 부딪혀 이를 해결해야 할 상황. 그 앞에서도 마냥 무기력해지고 도망치고 싶단 생각에 지배당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런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여태껏 '저노력 고보상'에 절여진 나의 뇌 때문에 정말 힘을 내야 할 때조차 주저앉게 된다 해도 괜찮은가.
요컨대, 과도한 SNS(숏폼이 주도하는) 콘텐츠 소비로 벌어지는 문제는 현상적 차원(수면 시간이 줄어든다, 집중력이 감퇴된다 등) 이면에 더 본질적인 문제로 이어질지 모른다. SNS 플랫폼에 장시간 노출되고, 그 안의 콘텐츠가 유통/소비되는 구조에 젖어버린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
가시적인 보상이 곧바로 따라오지 않으면 금세 주저앉고 마는, 나약하고 가벼운 사람.
한편, 이렇게 빠른 보상에 절여진 가벼운 존재들을 키워내는 시류와 맞물려 성행하는 영역이 있다. 대숏폼 시대의 대세로 자리한 '성공학'이다.
사실 자기계발 내지는 동기부여와 궤를 나란히 하는 성공학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심지어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기도 전부터 그 인기는 꾸준했다.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가 어디 시대를 타는 문제였던가.
그런 기본적인 토대 위에서 성공학은 숏폼 플랫폼의 확대와 함께 날개를 달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더 이상 성공학을 논하는 이들의 얘기가 활자에만 머물지 않고, 영상으로 생생하게 가시화되자, 성공이 손에 잡힐 듯 한결 더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분 내외의 영상 안에 어떤 이가 최소 10년은 걸려 이룩한 업적에 도달하는 방법이 일목요연하게 담긴 걸 보며, 우리 뇌는 인지하게 된다.
성공, 그거 별 거 없구나.
이는 '성공, 나도 해볼 만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용기를 얻었단 의미가 아님은 공감할 것이다. 보통 저런 생각을 하며, 한 사람이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보냈을 다사다난한 '과정'을 간과하게 되는 게 문제다. 이때 성공의 초점은 '기간 대비 성과'에 맞춰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정 상에서 빚어지는 깊은 고민이나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누락되고, 때로는 평가절하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숏폼과 성공학의 메커니즘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쉽고 빠른 보상을 추동하며, 과정에 대한 고난과 역경에 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에서. 게다가 제한된 시간 안에, 더 임팩트 있는 얘깃거리를 선보이는 콘텐츠가 승리하는 구조 역시 똑 닮았다. 어쩌면 성공학은 숏폼에 최적화된 형태를 띠며, 우리 시대에서 더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듯 보인다.
성공이 쉬운 공식으로 치환되는 시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큼직하게 강조된 썸네일을 심심치 않게 SNS 알고리즘을 통해 본다. '억대 연봉받는 온라인 건물주 되는 법', '퇴근 후 10분만 투자해서 부업으로 월 500만 원 버는 법'.
그래. 솔직해지자면, 나 역시 이런 어그로에 끌려 한동안 솔찬히 관련 내용을 디깅했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대학원생의 씁쓸한 현실이랄까. 이 세계에 입문한 직후에는, 무료로 풀려 있는 내용들조차 이렇게나 알차다는 것에 놀라며 한층 더 깊이 빠져들었다. 어쭙잖게 추상적인 내용은 아예 콘텐츠화되지 않을 만큼 이 시장은 꽤 성숙해(?) 있었으며, 대체로 친절하고 상세하게 본인들이 깨우친 성공법을 알려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런 레퍼토리로 진행된다. "제가 얘기한 그대로 따라만 하면 성공인데." "저 같은 사람도 해냈잖아요." 이렇게 최대한 실천의 허들을 낮추며 1차 동기부여를 투척한다. 그리고 불문율처럼 뒤따르는 말. "근데도 겁을 먹고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것도 귀찮아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라는 말로, 당신도 패배하는 대다수로 남고 싶냐며 묘하게 승부욕을 부추기는 2차 동기부여로 결정타를 날린다.
이로써 이목을 끌기 위한 성공학의 마케팅 전략 자체를 비난하거나, (합법적이라는 전제 하에) 급부상하는 신종 경제활동 수단을 싸잡아 폄훼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저렇게 양식화된 동기부여 장치를 활용해, 거듭 우리를 성공의 지름길로 인도하는 콘텐츠들이 계속 큰 관심과 지지를 얻는 현상을 반성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양상은 이미 우리 뇌가 빠른 보상에 익숙해진 것을 이용해 당장 성과를 얻고 싶은 환상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의 경우, 성공학 콘텐츠에 한창 빠져있던 동안 스스로가 삐뚤어진 환상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조차 한동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평소처럼 주어진 일들을 하고 있음에 회의감이 드는 건 물론, 매일같이 일궈온 평범한 일상을 극도로 시시하게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서야 알아차렸다. 이것이 성공학의 폐해였음을.
이른바 '성공 포르노'라는 표현은 최근 이와 같은 폐해에 허덕이는 이들의 분노로부터 등장했다. 성공학이 인간 본연의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을 집요하게 건드리다 못해, 마치 성공이 눈앞에 있다는 식의 허상을 만드는 형태로 작동하며 포르노와 닮아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중독될 경우, 자칫 우리 생활마저 마비될 수 있단 점에서 실로 성공학과 포르노는 한 끗 차이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성공 포르노를 공격하는 진영의 논리는 대체로 너무 시거나 떫다. 아무래도 이제 막 열매를 맺는 단계라, 지지층이 두텁고 견고한 기존 성공학의 장에 균열을 내는데 집중하다 보니, 극단적이고 원색적이다. 그래서 건전한 비판보단 비난을 위한 비난이 더 지배적인 가운데, 아직은 기존 성공학에 합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좋은 사례가 많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 고무적이다. '성공'을 물신화(fetishism)하는 것이 어디 나가서 결코 자랑스럽게 떠벌리지 않는 포르노 소비와 다를 바 없단 인식 전환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돌이켜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포르노를 통해 인간이 대상화되는 건 경멸하면서 어째선지 성공이 페티시화 되는 것에는 이토록 너그러웠다는 게.
기본적으로 성공이란 공통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모종의 사회적 합의 때문일 텐데, 그렇다고 별다른 노력 없이 맺은 결실마저 성공이라는 이름 하에 섬기는 것이 맞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그릇된 환상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소중히 지켜 나가야 할 '일상의 균형'마저 무너뜨릴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진 않을는지.
성공학에서 벗어나 일상의 균형을 되찾아야겠단 생각이 절실히 들었을 무렵, 서점에서 눈길을 끄는 표지를 발견했다. '빠르게 사라지고 싶지 않아서 느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의 서브 문구가 그 말만큼이나 천천히, 하지만 깊숙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본능적으로 지금 내가 딱 듣고 싶었던, 내지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담겨있으리란 확신을 안고 집어 들었던 책, 『컨티뉴어스』.
트루스의 윤소정 대표가 13년 간 일과 삶에 관해 써 내려간 경험을 담은 이 책은 예상외로 시끄럽고 분주했다. 저자는 선각자 마냥 자신이 깨닫게 된 것들을 단정한 아포리즘으로 정제해 알려주고 있지 않았다. 대신, 삶의 좌충우돌 속에서 느꼈던 좌절, 질투, 분노 등 못난 감정을 가감 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쓸고 간 자리 위에서도, 자신이 앞을 향해 한 발짝씩 내디뎌온 여정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글에서 묻어나는 한 사업가의 생생한 고민과 성실한 땀 냄새를 맡으며, 성공학에 빠져 돈쭐이 나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스스로의 썩은 정신을 혼쭐 냈다. 이와 동시에, 여러 갈등 상황을 딛고 일어나 일과 삶에서 서서히 균형을 찾아 나갔던 저자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삼 들여다봤다. 급하게 성공을 갈구했던 내 마음을. 따지고 보니, 가족이며 친구 중 누구 하나 내게 성공에 대한 압박을 준 적이 없었음에도, 무엇 때문에 나는 이런 압박을 스스로에게 가했던 걸까.
책을 읽던 중 깨달았다. 나를 압박했던 성공에 대한 주문은 사실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단 바람에 다름 아니었다는 걸.
결정적으로 이를 깨닫게 해 주었던 건, 저자가 참신하게 풀어낸 '중력의 법칙'이란 개념이었다. 이는 여러 성공학 추종자들을 꽁꽁 묶어두는 마법의 주문, '끌어당김의 법칙'과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으로 봐도 무방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바라는 바를 끊임없이 떠올리다 보면 언젠간 이를 눈앞의 현실로 당겨올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면, '중력의 법칙'은 바라는 것들을 지키고 키워 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무게중심, 즉 중력을 갖추는 것에 기초한다. 바꿔 말해, '중력의 법칙'의 핵심은 나 바깥에서가 아닌 내 안에서, 한번의 성공이 아닌 꾸준한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저자는 중력의 법칙을 깨닫고, 문득 마주했던 어느 하루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내가 만난 건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큰 걱정 없이 마주한 평온한 하루였어." 나는 그 말에서 스며 나온 평화를 보며, 내가 진정 원했던 게 바로 저런 하루를 만드는 능력이었음을, 덧붙여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내가 성공부터 해야한다고 착각했음을, 함께 깨달았다.
여느 기술직이나 전문직과 비교해 특히 창의노동 업계에 종사하는 우리는 계속해 스스로의 참신성, 대체불가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 강하게 놓인다. 이렇다 보니 쉽게 안정감을 얻을 수 없단 불안 속에서, 소위 '큰 거 한방'을 터뜨리고 싶단 조급한 마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커질수록 더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춰 생각해 보자. 당장 성공이 찾아온다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물론, 성공 후에 찾아온 부와 명예로 만끽할 물질적, 정신적 만족을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시건방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거창한 성공 한번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주제넘게 할 말은 아니라는,,)
그러나 분명한 건, 성공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누린 '그다음'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나는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성공으로부터 오는 행복에 흠뻑 취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고. 그러니 우리가 미리미리 염두에 둬야 하는 건 그 이후다.
성공하기도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긴 하지만,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언젠가 빛날 날이 올 거란 전제 하에, 우리는 성공이 지나간 후의 풍경 속 내 모습을 준비해 볼 필요가 있다. 성공의 박수갈채가 지나간 빈 무대 위에서, 우리는 허탈한 마음에 주저앉을 것인가, 아님 더 큰 성공을 향한 야망에 마음을 졸일 것인가.
나는 그때 나 자신이, 어떠한 공허나 허영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힘을 갖추고 있길 바란다. 오롯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갖추고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