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w We C Jan 20. 2024

참신함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

Mix가 아닌 Blend로


섞는 것만이 답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방법뿐이다. 세상에 없던 참신한 걸 만들기 위해선,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섞는 수밖에. 이것은 차선 없는 최선이다. 이 말에 당신은 의구심을 품었을지 모른다. 1)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활용하면서 어떻게 온전히 참신할 수 있는가. 2)사실 세상에 없던 진짜 새로운 걸 내놓을 자신이 없어서 만든 타협점에 불과한 것 아닌가. 너무도 합당한 의문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하나 반박해 보겠다.


  1)기존에 있던 것들이라도 어떤 것들과 함께, 어떤 맥락에서 쓰이냐에 따라 전혀 새로운 의미로 거듭날 수 있다. 새로운 의미가 전부 참신하리라는 보장은 없어도, 참신함은 새로운 의미 사이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2)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건 대중들을 위해서나, 창작자를 위해서나 유의미한 선택지가 아니기 때문에 거르는 것이다. 희박한 확률을 뚫고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무에서 유를 창조한 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쏟았을 텐데, 쏟은 에너지가 무색하게 세상은 이에 무관심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들은 새로운 것 앞에서 참신함보단 오히려 낯섦을 느끼며, 이를 외면할 공산이 크다.


  요컨대, 참신함은 무작정 새로운 것에서 찾는 것이기보단,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것들을 함께 섞으면 좋을지 잘 선별해 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참신함의 반은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참신함의 성패를 가르는 데 있어선 나머지 절반이 더 크리티컬 하다. 시대 감각을 탁월하게 이해하는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을 얼마나 적시적소에 잘 섞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참신일 수도, 망신일 수도 있다. 그럼 대체 어떤 기준으로 상이한 것들을 고르고, 어떻게 이들을 섞어야 참신함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는가. 『믹스(Mix)』는 다양한 마케팅 성공사례들을 경유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책에서 다루는 사례들에 빠져들다 보면, 뭐라도 섞으면 쉽게 성공할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하게 되는 것이 함정...


  광고, 브랜드와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온 '안성은(Brand Boy)' 작가는 성공한 광고와 브랜드의 기저에는 믹스의 전략이 숨어있다는 전제 하에, 국내외 사례들을 분석한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젊은 시절 회심의 창업 아이템을 떠올리게 된 비결부터, 루이비통의 레거시에 키치를 더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 세계까지 여러 사례를 믹스의 렌즈로 독해한다. 


  그는 섞으면 '물건'도, '사람'도, 급기야는 '모든 것'이 팔린다는 빠꾸 없는 자본주의 화법(?)에 따라 목차를 셋으로 나누고 사례들을 분류한다. 이렇게만 보면 작가가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는 상업적인 쪽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하지만 책에 실린 사례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돈 냄새만 풍기는 것들은 아니다. 그의 관점에서 '팔린다'는 것은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서로 다른 요소들을 섞는 방법도 목적도 제각각이지만, 이 모든 성공적인 믹스의 사례들을 공통적으로 꿰뚫는 하나의 필살기는 단연코 '의외성'일 것이다.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섞는다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그 요소들 간의 관련도가 떨어질수록, 때로는 아예 서로가 대립되는 위치에 가까울수록, 믹스의 파급 효과는 극대화된다. 당연하게도, 대중에게 그만큼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테니. 공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든 만큼, 거기에 맞춰 파급력이란 보상이 뒤따르는 것이다.    



어떻게 섞어야 하는가


  하지만 과연 '의외성'만 잘 담아낸다면 어떤 것끼리 버무리더라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의외성'은 섞기의 미학에 있어 핵심인 동시에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투박하게 다룰 시, 자칫 세간의 관심만을 바란다는 뻔한 수로 읽혀 도리어 반감을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나 일회적인 이벤트성 광고나 마케팅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브랜딩과 관련된 접근에서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것들을 섞어보기로 했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자기다움'의 범주를 공고히 한 상태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개연성 있는 요소들을 그 테두리 안에서 적절히 접목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히'라는 부사로 얼버무리는 건 어딘지 비겁해 보여 피하고 싶었으나,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시대 감각'에 대한 실행 주체의 해석력과 긴밀히 연결된 것이라,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좋은 사례를 살펴보며 체감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게 지켜본 창의노동자들 가운데, 서로 상이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확장해 나간 두 사례를 섞기의 프레임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1인 브랜드로서 자신만의 정체성 범주를 다원화하면서도, 이를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선보이는 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드로우앤드류 X 마세슾


  한강뷰 사무실 겸 집을 그린톤으로 꾸민 유튜버로 잘 알려진 '드로우앤드류(drawandrew)'. 그의 저작 『럭키 드로우』가 자기계발서 부문 베스트셀러가 된 여파인지는 몰라도, 현재는 자기계발 크리에이터라는 이미지가 공고해졌다. 그러나 그는 퍼스널 브랜딩과 관련해서 인스타그램 마케팅, 이미지 에디팅, 북 리뷰 등의 콘텐츠를 폭넓게 다뤄왔다. 


  물론 이 역시 넓은 범위에선 자기계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와는 확연히 차별점을 보이는 그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홈 인테리어 브이로그 콘텐츠로 구성된 유튜브 채널 마세슾(My Safe Space)이다.


  토픽만 놓고 보면 두 채널은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촬영한다는 물리적인 연속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콘텐츠의 피사체가 동일하단 접점이 있다. 채널주가 같은데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채널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 사람을 촬영한다는 것이 '따로 또 같이' 두 채널을 작동하게 만든다. 


  드로우앤드류가 카메라를 응시한 채 화려한 언변을 선보이는 텍스트 중심의 연사라면, 마세슾 속 이름 모를 남성은 차분하고 감성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이미지 중심의 브이로거다. 이로써 두 채널의 공존은 각각 한 주체의 사회적 자아(드로우앤드류)와 개인적 자아(마세슾)를 입체적으로 관망할 수 있게 이끈다. 두 채널을 넘나드는 구독자들은 차츰 알아가게 된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을 한 크리에이터의 복합적인 페르소나를.


드로우앤드류 채널(좌)과 마세슾 채널(우)의 콘텐츠 결은 물론, 피사체인 앤드류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느껴 보시길


  첨언하건대, 상반된 양상의 페르소나를 다루는 만큼 두 채널에서 각기 '드로우앤드류'를 언급하는 방식의 차이를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세슾 채널에선 드로우앤드류라는 활동명을 언급하는 것을 자제하며 이름 없는 감성 브이로거로서의 톤앤매너를 유지하되, 드로우앤드류 채널에선 자신의 실험적 부캐인 마세슾의 성공담과 촬영 비하인드를 종종 언급한다. 이런 운영 방식으로 두 채널을 모두 알고 있는 교집합 팬층뿐만 아니라, 한 채널만 알고 소비하는 팬의 영역도 영리하게 지키고 때로는 확장한다.


추수 X 프린세스 컴퓨터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주로 3D 모델링과 VR 기반의 작업을 하는 '추수(TZUSOO)'. 그는 커리어 초창기부터 3D 가상공간 구축 및 캐릭터 작업에 집중하며, 이를 토대로 예술 제도와 젠더 권력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대표적으로, VR기술과 디지털 스캐닝을 활용해 지인의 방을 관음 하는 가상의 시스템을 구축한 <슈투트가르트의 조신한 청년들>(2018), 미술관 관리직원을 가상의 미술관에 재배치해 성벽, 권력 간에 작용하는 사회학적 지형을 뒤집어 놓는 일종의 사회 실험 <누가 미술관을 지키는가>(2019) 등을 선보였다.   


  사회의 여러 단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기반에 둔 3D 공간과 캐릭터 작업이 빠르게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갈 무렵, 그는 2021년에 지인의 소개로 처음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받게 된다. R&B 싱어송라이터 SAAY의 'Omega'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기존에 그의 작업에서 드러난 캐릭터 조형 어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가운데 완성됐다. 


  추수의 이름으로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여러 아티스트들로부터 뮤직비디오 제작 의뢰가 쏟아졌다. 이때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해 그는 '프린세스 컴퓨터'라는 스튜디오이자,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한다.


추수(우)의 3D 모델링 캐릭터(좌)의 조형어법은 프린세스 컴퓨터의 작업물에서도 동일한 맥을 유지한다.


  형태적으로 보면 이 정체성은 없던 게 추가된 것으로 보이나, 본질적으로는 기존 정체성의 일부가 분리된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추수라는 예술가의 작업 범주 안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펼쳐내는 추수라는 작가적 정체성과 클라이언트 기반의 2차 창작물(뮤직비디오)을 만드는 정체성이 각기 다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따라서 두 트랙으로 분화되었음에도, 두 정체성 간의 위계는 동등하지 않다. 프린세스 컴퓨터는 추수라는 모체를 축으로 돌아간다. 프린세스 컴퓨터의 정체성은 뮤직 비디오 제작이라는 역할에 기반을 두며, 추수와 별개로 상정되진 않는다. 두 정체성을 매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프로필상 연동되어 있고, 프린세스 컴퓨터의 활동이 곧 추수의 활동이란 점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굳이 프린세스 컴퓨터를 추수가 만든 스튜디오 이름 그 이상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포장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아웃풋이 추수로 귀결된다면, 프린세스 컴퓨터를 별도의 정체성으로 분리할 정당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는 점차 추수라는 브랜드의 질적 확장에 큰 도움을 주리라고 판단한다. 


  뮤직비디오라는 상업적이고 대중친화적인 아웃풋을 만드는 프린세스 컴퓨터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메시지를 자유롭게 전달하는 추수 사이의 경계는 추수의 브랜드 선명도를 높인다. 대중들은 두 정체성을 오가며, 추수의 상업적 감각과 예술가적 면모가 분리되어 있는 동시에 공존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자각하고, 이 브랜드가 가진 양면적 매력을 보다 뚜렷이 느끼게 될 것이다.



Mix가 아닌 Blend로


  앞서 『믹스(Mix)』를 관통하는 방법론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이는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을 섞는 행위 자체는 참신함에 도달하는 최고의 방편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 'Mix' 해야 한다는 것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잊고 살았던 학창 시절 과학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두 가지 이상을 섞는 것에도 레벨이 있다는 걸 배운 바 있다.


  먼저, Mix는 의미상 두 가지 이상의 요소를 하나로 합치는 물리적인 '혼합' 상태를 만든다. Mix 된 것은 겉으로 보기엔 하나로 합쳐져 있으나, 실상 개별 요소들의 원래 분자 구조가 고스란히 유지된 채 한 자리에 단순히 모여있는 상태다. 


  이와 반대로,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각자의 분자 구조를 부분적으로 바꿔 가며 하나로 통합되는 화학적인 ‘화합’ 상태도 존재한다. Blend 된 것은 개별 요소들이 자신의 특질을 전체와 조화롭게 연결한 상태를 의미한다. 요컨대, Mix 상태에서 전체가 서로 다른 것들의 총합으로서 존재한다면, Blend 상태에서 전체는 서로 달랐던 것들이 ‘하나’가 되어 유기적으로 존재한다.  


나와 같은 문과생들이라면 아마도 백만 년 만에 봤을 추억의 도식...


  앞서 언급한 두 창의노동자들은 상이한 방식으로 두 가지 정체성을 구축하고 섞었음에도 공통적으로 Mix에 그치지 않고 Blend로 나아간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건 추가된 이질적인 정체성(마세슾) 혹은 분화된 동질적인 정체성(프린세스 컴퓨터)이 각각의 중심 가치(드로우앤드류/추수)로 잘 수렴할 수 있도록 이끈 덕분이다. 각각의 정체성들이 가진 개성과 역할은 분명히 하되, 그것들이 중심 가치와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개연성을 찾아 이를 대중에게 매끄럽게 연결한 것이 개인의 매력을 한결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것이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를 뜨겁게 달궜던 '부캐' 시장이 그 열기를 이어가지 못한 이유를 떠올려 보자. 너도나도 파격적인 정체성을 찍어내기는 바빴지만, 그것들이 돌고 돌아 결국 자기다움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잘 만든 사례들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앞서 얘기한 '의외성'에 천착한 채,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던 자신의 이미지와 달리 생뚱맞은 자신을 선보이는 데만 급급했던 건 아니었을지. 새롭기만 한 것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을 만큼 설득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그럼 대체 어디서부터 그런 설득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설득력을 만드는 최고의 밑천이자 동력은 '나'다. 나부터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고 흥미롭다고 여기지 않은 채, 세상의 기준에 맞춰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면, 이는 끝끝내 세상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확장하는 새로운 시도를 펼칠 때는 특히나 더 나부터 온전히 설득한 뒤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기에 영합한 무분별한 시도들의 범람으로 '부캐'라는 키워드의 힘은 위축됐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또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고 배치하는 건 쓰임에 따라 여전히 강력할 수 있다. 트렌드와 무관하게 진짜 중요한 건 결국 지속가능한 Mix, 아니 Blend할 자신다운 요소들을 제대로 찾는 것이다.

이전 05화 서사로 더는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