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가 곧 '남'의 문제임을
고3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야 처음 수능 공부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남들이 6월 모의평가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무렵, 나는 사실상 백지상태에서 과목별 개념서부터 펼쳐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듬해 수능까지 약 17개월 간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0부터 100까지 채워나가는 혼자만의 레이스를 펼쳤다. 그 결과, 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만점을 맞으며 수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재수 없지만, 사실 재수 있는 해묵은 수능 성공담을 들춰낸 건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 내 성적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준 은사님을 최근 다시 만난 썰을 풀기 위함이다. 그는 흥미롭게도 특정 과목의 교과 지식 하나 가르치지 않은 채, 공부에 관한 지혜만을 전하며 내 수험 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존재로 남았다. 어떤 과목이든 과목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원리, '코드'를 파악하고 나면 성적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란 그의 명쾌한 해답은 공부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내 태도를 송두리째 바꿨다.
조남호 대표. 10여 년이 지나 다시 유튜브 알고리즘의 알선으로 만난 그는 변함없이 '코드'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다만 그 범위는 '공부'에서 '인생'으로 넓어져 있었다. 스터디코드의 대표에서 라이프코드의 대표가 된 그는 이른바 '공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인생 코드를 설파하고 있었다. 일단 진심으로 반가웠다. 분야를 막론하고 트렌드 사이클이 미친 듯이 짧아진 가운데, 이에 휘둘리지 않고 '본질론'에 우직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본질론은 본질적으로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기 마련이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지만 뻔한 말에 그치기 좋을뿐더러, 대체로 이론중심적이다 보니 구체적인 해답은 빠져있어 공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남호 대표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라면 도가 텄다는 듯, 특유의 단호하고도 뚜렷한 논리로 자신만의 본질론을 설득력 있게 풀어가고 있었다. 공부법에 관해 논하던 예나 지금이나 그는 문제해결을 위한 '어떻게'를 최대한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자신의 모교 서울대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업의 코드에 관한 강연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강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나'였다. 유형을 막론하고 어떤 사업도 '나'의 진실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그의 주장은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팠다. 회사의 울타리에서 여러 중단기 프로젝트의 PM을 담당하며 그간 느낀 정체 모를 공허함을 간파당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던 진리의 챕터 앞에 선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주어진 프로젝트마다 '나'는 어디에 위치해 있었던 건지. 늘 최선을 다해 그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 자리에 진짜 내가 있었던 건지 자문해 봤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좋은 결과로 인정받기 위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맡은 바 역할 그 이상까지 적극적으로 찾아서 했으나, 어째서 나는 그 과정을 거쳐 채워지기보단 비워진다고 느꼈던 걸까. 일련의 일들을 통해 진정 내가 얻었던 건 무엇이고 또 바라왔던 건 무엇일까.
해소되지 않은 의문 속에서 느낀 갈증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내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남(세상)의 관심과 필요가 아닌, 온전한 '나의 관심과 필요'였다.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문제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단 랜선 은사님의 가르침은 고3 때 공부의 코드를 처음 깨우쳤을 때 그 이상의 울림으로 돌아왔다.
냉정히 말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결의 질문은 늘 우리 주위를 상투적으로 맴도는 평범한 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때론 신선하고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건,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이 타성에 젖은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외면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현재는 대학원을 다니며 잠시 경제활동에서 자유로운 덕에 이런 질문에 감응할 수 있었으나, 한창 일에 찌들어있을 때였다면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런 질문을 회피하는 현상은 이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들을 살짝 놀림거리로 삼거나, 열정 넘치는 일부 계층으로 국한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이를테면, 이 질문을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들이나, 신생 테크 스타트업 대표들의 전유물쯤으로 치부하는 것인데, 이는 실상 너무도 중요한 만큼 거대하고 버거운 문제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현대인들의 암묵적인 전략처럼 보이기도 한다.
분명 제대로 마주하긴 괴롭겠으나, 이 질문은 모든 사람이 자기 삶의 궤적 바깥에 두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다. 개인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추상적인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눈앞에 당면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매 순간을 충만하게 보내기 위해서도 그렇다.
최근 이런 질문에 꽂힌 채, 다시 우리 주위의 창의노동자들을 복기해 봤다.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세상에 자신을 던질 용기를 가지고 답을 발견한 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끈기 있게 도전하는 이들로 누구를 꼽아볼 수 있을까. 너그럽게 보면 성공적인 아웃풋을 도출한 모든 케이스는 저마다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훌륭한 답을 찾았다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유달리 '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그에 따른 답을 창의적으로 선보인 좋은 사례들을 떠올려 보려 했다.
그에 따라, 답의 본질에 이를 때까지 치열한 태도로 임한 세 가지 사례를 추려 보았다. 요컨대 세 사례는 각기 다른 범주로 '나'를 설정함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케이스들은 서로 얼마나 닮아있고 또 다를는지. 남의 기준에 타협하지 않은 채 오롯이 '나'의 진실된 욕망을 마주하며 그들은 얼마나 '진득'하게, '진'짜 답을 획'득'했을지 살펴보자.
'코자아'가 찾은 답 ; 나의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음료
코자아는 한국의 수면음료 시장을 개척한 상품이다. 불면증을 겪는 이들이 여태 의존해 왔던 약이나 술과는 달리, 불면 극복에 효과적인 산조인(대추씨앗의 일종)을 주원료로 개발된 내성 없이 안전한 음료다. 고급 한약재가 들어간 만큼 소비자가는 확실히 높은 편이지만, 한번 마셔보면 재구매 의사가 충분히 생길만하다. 특히 수면 장애로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본 이들이라면, 이 음료를 마신 뒤 서서히 몸에 감도는 특유의 뽀송한 기운(?)이 얼마나 숙면에 도움이 될지 곧장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다 직접 마셔보고 하는 소리다..!)
이 효과 빠른 음료는 로맨시브의 이수현 대표가 음료 시장 개척과 수면 문제 해결이라는 자신의 문제에 응답한 결과 탄생했다. 이대표는 어린 시절 스타벅스의 창립자 하워드 슐츠에 대한 동경을 품으며 꾸준히 음료 시장에 관심을 가졌고, 이에 한 발짝 다가서겠다는 일념 하에 바텐더로 일하던 중, 불면의 밤을 보내는 고객들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불면의 경험은 자신 역시 고교 시절부터 겪었던 터라, 그는 자신과 고객들의 '수면 문제를 해결할 음료'를 만들겠다는 진실하고도 확실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문제는 명확하고 구체적이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고 싶었던 두 가지 문제를 연결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 겸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사업을 결심한 지 11개월 만에 수면 음료 론칭에 성공했다. 제품 개발을 비롯해 관련 부처 승인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걸로 유명한 건강보조식품을 이렇게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던 추진력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히 자리 잡은 이대표 자신만의 문제의식이었다.
'박웅현'이 찾은 답 ; 나의 본질적 가치를 담은 광고
광고인 박웅현 대표는 시대를 꿰뚫는 여러 카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등 세월을 타지 않는 그의 묵직한 카피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세간에선 꾸준히 양질의 고전을 탐독해 온 그의 인문학적 지식에 주목했으나, 박대표가 직접 내놓은 답을 들어보면 오히려 인문학은 거들뿐이다. 그는 '광고는 곧 문제해결'이라는 믿음 하에, 사람을 중심에 두고 클라이언트의 답을 찾아왔다고 밝힌다.
잠깐. 클라이언트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는 광고 제작에서 어떻게 '나'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나. 나 역시 근본적으로 그런 의문을 품었고, 지금도 이를 말끔히 해소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가 가치를 찾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보며, 광고라는 클라이언트 기반의 일 역시 접근하기에 따라 '나'의 문제의식에 따른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떠올려 봤다. 그는 기업의 요구에 맞춰 아이디어를 지어내기보단, 기업 안에 이미 내재된 가치를 발굴하고 '나'의 감각과 믿음을 이에 접목시키는 방식으로 카피를 써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가 한 건설사의 광고를 의뢰받았을 때였다. 그는 이 회사를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임직원들과 심층 인터뷰를 나눈 결과, 트렌드를 잘 쫓진 못해도 '약속은 꼭 지키는 회사'라는 공통의 내부 인식을 발견했다. 이런 공감대에 담긴 가치를 세상에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평상시 자신이 중심에 두었던 인본주의적 접근을 담아낸 카피 '진심이 짓는다'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전하려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가 광고인 자신의 본질적 가치와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광고인의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클라이언트의 필요에 맞춰 돌아가는 것이 광고업의 숙명일 테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아닌 '의사'로 자신을 규정하는 박대표는 광고가 단순히 그럴싸한 포장지를 씌우는 일에 그치기를 거부하며, 광고의 본질을 광고인의 자아와 헌신이 투사된 일로 바꾼다. 나아가, 클라이언트의 가치가 곧 자신의 가치가 되도록 만들며 '나'의 범위를 확장하기도 한다.
'션'이 찾은 답 ; 나의 거룩한 자극을 나누는 기부
이제는 힙합 아티스트라는 본업이 무색할 정도로 기부계의 아이콘이 된 션. 놀랍게도 그는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그의 넉넉한 베풂은 분명 두둑한 지갑에서 나왔을 거란 편견을 뒤로하고, 실제로는 결혼 당시 집을 매입할 수 있을 만한 형편도 못됐다. 그럼에도 그는 아내 정혜영 배우와의 결혼 당일, 넘쳐흐르는 행복을 만끽하며 "우리 이 행복을 움켜쥐지 말고, 손을 펼쳐 나누면서 살아가자"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소문대로 이타적인 DNA로 가득 찬 기부천사 그 자체다. 하지만 한결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는 인간의 탈을 쓴 천사보단, 기부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릴 줄 아는 전략가다. 그에게 있어 기부란 인간이 펼치는 조건 없는 인류애의 방증이라기보단, 보람과 에너지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는 이 좋은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확산하기 위해 기부에 매력적인 스토리를 입힌다.
그는 참여를 부르는 기부 스토리의 3가지 조건을 꼽는다. 1)왜 이 모금이 시작됐는지 분명히 알릴 것. 2)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제안할 것. 3)저절로 소문이 나게 기획할 것. 이 삼박자가 모두 맞았던 것이 그가 2014년 국내에 앞장서 유입시킨 '아이스버킷 챌린지'였다. 루게릭병 환자를 위해 진행된 이 챌린지로 그는 최소 42억 원 이상을 모금했다. 이는 선량한 의지만으로 빚어낸 성과가 아니라, 사람들과 일명 '거룩한 자극'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설계된 바이럴 장치(영상 메시지)가 주효했던 덕분이다.
션이 말하는 '거룩한 자극'은 그의 신앙과도 연결되겠으나, 그 핵심은 기부가 개인의 측은지심이나 일회적인 희생으로 벌어지는 데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의지에 있다. 그는 언제나 그 의지의 진심을 몸소 입증한다. 이를테면, 독립유공자들을 위해 추진한 815 마라톤에선 온갖 육체적 고통을 딛고 직접 81.5킬로를 완주한다. 이처럼 스스로 콘텐츠의 주연이 되기를 자처하는 가운데, 그는 기부 문화가 확산될수록 자신이 더 행복해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이 삶의 방식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기부는 이타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진실된 '나'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남'을 먼저 앞세운 고민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철저히 '나'에서부터 기인하는 활동이다. 이로써 그 역시도 알고 보면 이기적이고, 그리 순수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지적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기와 이타를 기준으로 그를 논하기에 앞서 지금껏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한 가지 자명한 사실만이 떠오른다. '이 사람에겐 자기 행복의 그릇이 차고 넘치면 이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그게 행복이구나.' 바꿔 말해, 그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가장 편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한 평범한 시민이란 것이다. 동시에 기부의 가치를 나누고 싶단 일관된 '나'의 문제의식을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명석한 사업가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조남호 대표의 강의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그가 '나'에 집중하라고 말한 메시지의 핵심을. 그는 부, 명예, 권력, 인기 등의 외재적 가치를 쫓는 것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동력의 본질이 될 순 없음을 역설한다. 혹여 운이 좋아 이런 가치만을 좇아왔는데도 성공을 거뒀다면, 이는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쩌면 세상엔 이에 정면으로 반박할 만한 사례들이 즐비할지 몰라도, 나는 이 메시지가 본능적으로 와닿았다.
고3 때나 30대가 된 지금이나, 나는 고리타분한 본질론이 그저 천성에 맞는 사람인 걸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한 건, 새삼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을 자신만의 단단한 문제의식 혹은 가치를 세우는 것이 지금의 내게 무엇보다 필요하단 것이다. 앞으로 꼭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물론 하리라고 굳게 믿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런 구심점을 마련하는 게 먼저라는 확신이 들자, 여러 곁가지 고민들은 점차 덜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편, '나'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알고 보면 단지 관념적인 작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실용적인지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조대표가 강조한 진심어린 '나'의 문제는 곧 '남'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생물학적으로든, 사회학적으로든 '나'와 닮은 '남'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내가 특이 취향을 갖던, 마이너 한 문제에 천착하던, 어딘가에는 한 개인의 문제에 공감할 불특정 다수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 대한 발견은 곧 내가 함께하게 될 '남'들의 범주를 결정짓는 첫 단추를 꿰는 일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설령 당장 함께할 사람들을 끌어모을 창의적인 아이디어까지 내놓진 못하더라도, 나와 같은 필드 내에 속한 이들이 누군지 가늠해 보고 이들의 문을 두드려볼 기회만큼은 열린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꾸준하게 내 소신을 공유하다 보면, 이에 공명할 만한 사람들은 서서히 모일 것이다. 그렇게 정말로 (*케빈 켈리가 말하는) '1000명의 진실한 팬'만 모아도, 어쩌면 거기서부터는 애써 아이디어를 짜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BM에 안착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창작의 본질'에 관해 깊이 탐구하는 요즘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인스타그램에서 사이드 프로젝트(@mnt.2b)를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종종 20대 초반부터 품고 있던 이 추상적인 고민을 새롭게 직시하고 있음이 괴롭고 또 퍽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스스로를 향한 본질적인 물음이 어느 순간 확고하게 중심을 세워, 진심을 다해 해결해보고 싶은 문제로 안착하게 될 날을 떠올리면, 갓 대학에 입학했던 그해 3월처럼 설레기도 한다.
좋은 질문에 이르기 위해, 최근 많은 기획자, 브랜드, 아티스트들의 케이스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세 사례만 놓고 봐도 그렇듯, '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보통은 '나'의 현실적 고충을 해결할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코자아)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으나, 경우에 따라 '나'의 가치와 메시지에 '남'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접근(박웅현, 션)도 유효하다.
후자의 경우, 과연 이것이 진정 '남'이 아닌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남'이 찾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나'의 언어로 해결하거나(박웅현), '남'을 위하는 게 곧 '나'를 위하는 일임을 실천으로 증명함으로써(션), 이 역시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조만간 나 또한 이런 창의적인 성공 사례들처럼 스스로의 방향을 한층 선명하게 벼린 후, 이를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그때까진 바보처럼 하나만 믿고 가보려 한다. 진짜 '나'의 문제만 찾고 이를 해결한다면, 먹고사니즘은 물론 늘 치열하게 자문해 왔던 '좋은 삶'에 대한 고민으로부터도 근본적으로 해방될 수 있으리라고.
방금 저 문장의 마침표를 찍자, 사실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지만, 오래도록 눈앞을 뿌옇게 가로막던 안개가 걷힌 듯, 후련한 기분이 일었다.
*이번에 다룬 코자아, 박웅현, 션의 이야기는 콘텐츠 구독 서비스 '롱블랙(Longblack)'의 아티클을 참고했다. 이 자리를 빌려 늘 좋은 사례를 감도 높은 언어로 전해주는 롱블랙 에디터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