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다. 오래간만에 미세먼지 농도도 적은 것이. 퇴근하자마자 말벌 아저씨처럼 밖으로 뛰어나가서 동네 한 바퀴 산책할 맘에 부풀어 있었다. 아니 왜 아직 1시? 아니 왜 아직 2시? 손으로는 일하느라 타이핑을 하는데 마음은 이미 밖에 나가 있었다. (몸뚱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정신이 일을 안 하고 있으면 이건 월급 루팡일까. 그렇다면 사장님 죄송합니다. 이런 사람도 회사의 녹을 얻어먹고 사네요. 근데 제 얼굴 잘 모르시니까 괜찮으시죠?)
스트레칭이나 한 번 할 겸, 메일 하나 보내고 창문을 멍하니 내다봤다. 요즘 집 주변이 죄 공사판이라 볼 거 하나 없지만(가끔 안전모 쓴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치긴 한다) 이 집에서 정말 좋아하는 뷰가 하나 있다. 창문에 가까이 붙어서 내려다봐야 보이는, 맞은편 단독 주택의 거대한 목련나무. 이 집에서의 두 번째 봄, 두 번째 개화 구경이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저 나무에 꽃이 피고 지고 잎이 돋고 저무는 걸 보며 계절을 따라 살았는데, 올해도 어김없다. 나와는 다르게 자연은 늘 성실하고 꾸준하다.
아이스로 내린 드립 커피 마시면서 '햐, 좋다' 운치 있게 목련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 봄을 맞이한 건 목련과 나뿐만이 아니었다. 겨우내 마주치지 않아 우리 참 좋았잖아. 작은 날벌레가 창문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그 구멍보다 더 작은 날벌레. 시작된 거다. 봄과 함께 부화를 시작한 벌레들과의 (원한 적 없는) 동거.
미안한 마음 약간 담아 휴지로 불청객을 꾹 눌렀다. 방금 목련 나무 보면서 성실하고 꾸준한 자연 어쩌구 한 게 좀 민망하다. 이 지구에 가장 해가 되는 건 사람이라는 말에 동의. 인구의 절반을 쓸어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던 타노스가 옳았을지도 모르겠다(아니 근데 쟤가 내 아이언맨을...!).
봄이다. 자꾸만 엉덩이가 들썩대고 구름의 모양을 들여다보게 되고 일기예보에 '맑음'이 보이면 어디로든 떠나려 검색하고야 마는 계절. 이 짧은 낭만을 더 충실히 즐겨야지 맘먹으면서도 이제부턴 쓰레기통을 더 자주 비워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낭만과 현실을 적절히 덖으며 올해의 4월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