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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Jul 22. 2024

무게를 나누는 일

남에게 도움받는 걸 싫어했다. 그만큼 나도 남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외아들로 자란 탓인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성격은 학창 시절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께는 문제 일으키지 않는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 부모님께는 ‘내성적인 아이’로 보였을 터다.


성인이 되어 직장에서도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억지로 바꾸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업무를 이유로 관련된 사이가 아니라면 특별히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 거리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종종 다 같이 모여 회식하는 자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을 피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묵묵히 내 앞 불판 위에 놓인 고기를 뒤집는 일뿐. 그나마 회사 밖 사람들과 함께하는 동호회 모임 (러닝, 풋살 등)에 옆 사무실 동료가 함께할 땐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은 게 전부일 정도였다.


 그랬던 나였지만 지금은 낯선 사람과도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넬 줄 안다.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내가 먼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큰 계기가 있었다.


 14년도 겨울, 직장 내 인사 지침에 의해 지금 있는 곳으로 교류됐다. 원치 않는 일이었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정든 선배 몇 명이 다른 곳으로 전근 가는 걸 볼 땐 ‘언젠간 나한테도 저 순서가 오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또한 연차가 어느 정도 차자, 그 우려가 현실로 이루어졌다.


성격상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도권에서 먼 곳에서 근무했던 점이 참작되었는지 도시에 가깝게 배정된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발 디뎌 보는 곳 춘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낯선 삶이 시작됐다. 사실 이전 근무지 역시 입사 후 몇 번째 옮겼던 곳이었다.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낯선 환경이나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적응 장애’라는 마음의 병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정도가 심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많은 사람 앞에 설 때 손발이 떨리고 앞이 캄캄해진 날이 많아져 더 안 되겠다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정신과를 찾아 진료를 받은 끝에 내려진 진단이었다.


 밤에는 잠까지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져 처방받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청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최대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낯선 환경으로부터 피하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축구 좀 한다면서?”

“아. 네. 잘하지는 못하지만, 사회 축구를 할 땐 왼쪽 윙백을 주로 맡았습니다. 가끔 골키퍼도 했었습니다.”

“그래? 그럼 주말에 우리 축구팀에 연습 삼아 와볼래?. 연령대도 젊고 경기가 없는 날엔 근처 센터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거든.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니까 이번에 안면도 익히고 해 보는 게 어때?”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럼 장소와 시간만 알려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아직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마침 이전에 같이 근무했었던 선배 M이 건넨 권유였다. 그는 나와는 달리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늘 에너지 넘쳤다. 주변에 사람이 모여 있었고 퇴근 이후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도 축구 경기장에서 공을 차면서 많은 사람과 친분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늘 부러웠다.


 축구 경기가 없는 날에는 축구팀에서 선수 가족들까지 포함하여 봉사활동을 한다는 말에도 관심이 생겼다. 겨울에는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이나, 경기장 근처 수변 환경 정리 봉사,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지역 사회복지 시설에 들러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선배의 또 다른 면을 알 수 있었다.


 ‘운동에만 빠져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은 오래 알고 볼 일이라는 말이 딱 맞나 보다.’


 그날은 때마침 겨울이라 경기가 없는 날이었다. 대신 오전에 간단히 볼 연습만 하고 곧바로 연탄 나르는 장소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준비물은 경기장에서 입을 운동복 외에 편안한 긴 바지 긴 팔만 준비하면 된다는 말과 장갑이나 기타 필요 물품은 관계 기관에서 준비해주니 몸만 오면 되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도 했다.


 봉사활동 당일의 오후 팀 내 선수와 가족, 어린아이들까지 서른 명 넘게 모였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텐데도 다들 표정이 밝았다. 그 덕분일까, 나 역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오전에 다른 선수들과 안면을 터놓은 것도 분명 한몫했을 터다.


오늘 나르기로 한 연탄은 총 800장. 미리 배정된 수만큼 동과 호수별로 연탄을 나르기로 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오로지 남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기꺼이 무거운 연탄을 품는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겨울 온기가 부족한 이에게는 따뜻함을 선물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나에게는 보람을 선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주고받는 과정에서 얻는 감동은 덤이고.


실제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남을 위해 발휘하는 행동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특별한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돕고자 하는 작은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 돈을 많이 벌면, 혹은 나중에 내가 유명해지면 이라는 막연함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지금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운동을 꾸준히 한 덕분인지 내가 가진 재능은 체력이 전부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코끝이 따가웠지만, 연탄을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한 덕분에 금세 온몸이 뜨거워졌다. 처음 연탄을 짊어졌을 땐 ‘억’ 소리가 절로 났지만, 부엌 한쪽에 한 줄 한 줄 쌓여가는 연탄을 보며 가슴 벅찬 보람을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마치 검정 빛을 내는 황금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함께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눈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어르신을 도와주는 일, 아무리 바빠도 상가의 출입문을 뒷사람을 위해 잠시 잡아 주는 일, 나에게 불필요한 삶의 무게를 줄이는 대신 부족한 사람에게 따뜻함을 채워주는 일 모두가 내가 남과 함께 살아갈 방법임을 축구팀으로부터 배웠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한 번에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색하고 오래도록 지속하지도 못할뿐더러 때로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때도 있을터다. 그래도 무언가를 급하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한 걸음씩 삶에 나를 녹였을 때  비로소 내 삶이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부족하지만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만큼 나 역시 조금씩 이라도 성장했으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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