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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Jul 08. 2024

삶을 바꾸는 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30회 연재가 모두 끝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별것 없을 겁니다. 첫 책을 쓸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나를 축복할 것만 같았지만, 변한 건 없었거든요. 내 나이도, 이름도, 얼굴, 직장까지.


변한 건 없지만 얻은 건 있었습니다. '내 삶, 내가 최고로 여겨야 최고가 된다.'는 자신감. 그리고 성장.



저에게 24.25년도는 과거보다는 천천히 가자는 의미로 성숙이라는 표현을 써줬습니다.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글감과,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미뤄둔 퇴고를 완결 짓고,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한 준비 라고 해두겠습니다.


이제 1/3. 남았습니다. 계속해볼게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브라보 마이라이프!




말에도 힘이 있다는 걸 믿는다.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바로 옆에서 외쳐주는 파이팅이라는 말 한마디면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도 잠시나마 누를 수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퇴근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어깨가 활짝 펴진 적 한 번 즈음은 있을 터다.

그 정도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나 역시 주변에서 건넨 위로와, 응원 덕분에 지금껏 잘 걸어가고 있는 중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하는 다짐이 있다.'나 하나로 다른 사람들까지 힘을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테니 나는 이들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각종 운동 관련 동호회 참석을 많이 했다. 배드민턴, 축구, 스크버다이빙, 달리기 등 등. 그러다 보니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잊지 못할 일들이 많다.  

평소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동료 k가 있었다.  나이차이가 나보다 다섯 살 아래였다. 서로 형제 없이 외 아들로 성장한 배경을 알아서였을까, 성격도 잘 맞았다. 웬만한 고향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함께 며칠 씩 여행도 다녀올 정도였는데 가는 길에 듣는 음악 취향도 비슷했다. 일명 8090이라 불리는 옛날 노래 몇 곡을 똑같이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여행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된다는 말을 했다. 사실 운동도 운동이지만, 평소 독서와 글쓰기, 사람 들 앞에 나서서 진행하는 모임 외에도 운동을 지도하는 일을 배워보고 싶어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했던 나였다. 그것도 국가공인, 생활체육 지도사였다.

k 역시 운동을 좋아하던 터라 내 권유를 따라 같은 자격증을 취득 한 바 있었다. 그러니 속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었다.


그때 k는 운전대를 잡고 있느라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몇 마디에 그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형님이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어 K가 나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를 이야기해 줬다. 내용은 일흔이 다된 노모께서 경주에 혼자 계신다는 거였고,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자주 못 가서 죄송하다는 점과 본인이 아팠을 때 누구에게 말 못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죽을 사다가 주었다는 일화였다. 그 이후 친해진 건 맞는데 자신이 중학교 졸업 할 때까지 역도 선수를 꿈꾸었다는 건 처음으로 듣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이가 무색할 만큼 운동에 진심인 사람을 처음 봤다고, 그 모습이 자신에게도 자극제가 되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겠됐다는 말까지.


그러면서 자신이 요즘 운동 외에도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며 자랑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괜히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며 지냈고 서로의 장점을 발전시켜 주기 위한 멘토와 멘티였다.


그날의 대화는 앞으로도 살아갈 날에서 절대 잊지 않으려 노트에 정리해 뒀다. 내가 누군가에게 신뢰와 용기,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감동 그 자체였다.


3년 전 여행지에서의 사진과 추억은 아직도 노트북 사진첩에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이 사진첩은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 전 수시로 열어본다. K와의 대화에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삶을 결정하든, 내 길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과, 조금 멀리 돌아갈 수는 있어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내 삶이 절대 실패하거나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향친구도 아닌, 겨우 1~2년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만난 한 사람의 말 한마디는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내 행동 하나, 삶의 태도 하나에 누군가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길이 되고 그로 인해 나는 또다시 스스로 성장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고등학교 시절의 나의 진로 희망이나 꿈을 묻는 질문에 대답은 명확하지 못했다. 티브이 속 연예인을 선망하기도 했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축구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태극전사'가 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되고 싶은 모습,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는 건 그때만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같은 반 친한 친구들만 봐도 다들 대학 어디에 진학해서 무슨 과를 졸업하고 어디 계열로 취업을 할지 까지 정해놓는 일종의 '마인드 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을 때였으니까.


'남들은 다 자신의 꿈을 알고 준비하는데 나는....' 야간까지 이어지는 자율학습은 지옥이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체념해야만 했다. '우선 보통 사람들을 따라가면 나도 최소한 실패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가 나의 30대였다. 흐름대로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나이는 가족을 꾸려야 할 시점이 돼있었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알지도 못한 채 출근과 퇴근만 반복하는 삶. 분명 성공한 삶은 아니었다. 항상 불만죄스러웠고 입에는 불평과 불만을 담고 살았으니까.


그러다가 크게 넘어져서는 다시 일어나는 법을 몰라 그대로 누워 발 밑에 있는 돌부리에 욕을 해댔다. 뜨거운 햇볕을 두고 화를 냈고 내 삶은 망가졌다고 비난했다.


반드시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하고, 이름을 널리 알리며 돈을 많이 벌어야 만 성공 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나, 둘 만들어 나갈 수 만있다면 그 길 또한 성공적이고 위대한 길이 아닐까?. 과정에서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 한 명 두 명 생기면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걸어가면 힘이 덜 들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운동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건 생각을 긍정적 방향으로 계속 유지한다면 장애물이라고 여겼던 벽들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방법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달리기 기록이 느리다면 더 빠르게, 다이어트가 목표라면 체중을 줄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쭉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핑계보다는 방법을 찾는 사람, 그 방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


누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까지 열심히 인 이유가 뭐냐고. 우선 내가 열심히 모드로 살면 주변 사람들과 상황이 변한다. 마치 옳은 길로 향하도록 길 위의 이정표를 세워두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음에는 내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나만의 이정표를 남을 위해 남겨둘 수 있다. 이건 혹 내가 길을 잘 못 들거나 힘이 들 때 어디까지 왔는지 활용할 수도 있다. 일종의 안전지대인 셈이다.


앞으로도 세상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순간마다 나와 남을 위해 지워지지 않을 발자국을 진하게 남겨둘 생각이다. 세상에 위대한 삶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모든 순간이 역사의 찰나다. 그러니 앞으로도 더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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