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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Jun 17. 2024

운동으로 배우는 삶의 태도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건 운동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이었다. 회사에서 대대적인 인사발령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없었던 인사 조정이라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개인과 팀, 사무실별 인사고과 점수를 종합하고, 업무 실적에 따라 수당까지 차등 지급 예정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 와중에 6개월째 비어 있는 자리가 하나 있었다. 직원들의 휴가, 포 지급에 관하여 총괄하는 업무였다. 세상일 중에서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특히 싫어했다. 말 그대로 ‘기피 1순위’인 셈이었다.


대신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일을 나눠서 했다. 발령 담당자가 휴가와 포상 관련한 업무를, 경리 담당자는 수당에 관한 업무를, 그 외 행사 계획과 외부 강사 초빙에 관한 업무는 과장이 대신했다.


 나 역시 그 자리는 쉽지 않은 자리라 생각했다. 직원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200명이 넘는다. 그 많은 사람을 하나하나 상대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소식을 듣자마자 ‘제발 나만 걸리지 마라.’라는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면 참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랴. 지난 평일 오후, 한 참 업무 중 부장님의 호출이 왔다. 설마 했다. 보통은 나와는 업무 계통이 다르므로 직접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를 직접 부르는 건…….;’


 설마 했다. 아니, 설마가 아니었으면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과장실 문 앞에 섰다. ‘똑똑 나달리 팀장입니다.’

부장님의 표정을 보니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요즘 근황에 관해 간단히 묻더니 곧바로 ‘관심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아니요!’를 크게 외칠 뻔했다. 그 상황이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을까 싶어 순간 고개를 숙였다.


“음, 우선 고민 좀 해봐요. 그 업무가 힘들다는 건 다들 알고 있고 그만큼 회사에서도 혜택을 준다고 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친절하게 설명은 했었지만, 속에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너는 선택 사항이 없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루, 이틀 정도만 고민할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심의를 해봐야겠지만 우리 나달리 팀장을 고른 것 같네요. 물론 다른 부서에서도 같은 조건으로 후보자를 고려 중이라고 하니 생각 있으면 전화를 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뒤로하고 문을 닫고 나오는데 속에는 천불이 났다. ‘와……. 왜 나야? 아, 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 ‘퇴사’를 생각하기도 했고 ‘질병을 사유로 휴직을 제출합니다.’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야근도 많이 한다는 곳이기에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4년 4월 6일 밤 10시 50분에도 고민 중이다. 내일까지 답을 주기로 했다. 만약 ‘거부’ 의사를 표현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4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루 평균 5km. 많으면 10km을 달린다. ‘중년의 무기력함 달리기로 날려라, 50대 달리기를 할 줄이야’의 박정미 저자의 책을 읽고 나서부터다. 나와 같은 자이언트 소속 작가다. 서울에서 저자 사인회가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책 제목에 이끌려 직접 현장을 찾았다.


 잠실 교보문고에서 처음 박정미 작가를 보자마자 놀란 건 전혀 50대 중년으로 보이지 않은 점이다. 꾸준히 달리기 했고 마라톤까지 도전했다는 책의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터라 젊어 보이실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겪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달리기를 이야기로 써낸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책을 들고 가 다른 사람들 뒤에 섰다. 이미 수십 명이 넘을 만큼 많은 사람이 저자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는데 난생처음 받아보는 저자의 사인에 신기하기도 하고 설렜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책의 목차를 살펴봤다. ‘아니, 이게 웬걸?’ 목차에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내키지 않아도 한번 해보자. 50대, 달리기 할 줄이야. 박정미 지음, 미다스북스].


 요약하자면 이랬다. 남편은 수년째 골프를 쳤지만, 자신은 그런 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주말이고 평일 저녁이고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남편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말에 집에서 혼자 보낸 적도 많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와 함께 골프를 하려 했지만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족 동반 모임으로 골프장에 구경삼아 갔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남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됐단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자리가 많을 수도 있겠다는 너그러움까지 생겼고.


 그럼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것도 우연히 인터넷 블로그에서 ‘하루 10분 달리기’라는 글을 본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은 성격 탓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매일 10km를 달린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매일 달린다.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고까지 표현했다. 오죽했으면 마라톤을 참가한다고 했을까. 그것도 50을 넘긴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날도 있었다. 퇴근 후 나는 헬스장을 가는 것이 주요 일과였는데, 밖에서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달리고 있으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멈췄다. 그리고는 걸었다.


내 옆을 많은 사람이 지나쳐갔다. 등 뒤에서부터 빠르게 달려오던 할아버지 한 분은 나를 추월해 갔다. 그 모습에 나도 질세라, 다리에 힘을 줬다. 바닥을 밀고 고개를 들어 팔을 앞뒤로 흔들며 조금씩 더 달렸다.


 두 달이 지났다. 비가 내리는 날, 회식이 있는 날은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했다. 그 외에는 빠지지 않고 달렸다. 오늘 저녁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와 강변을 달리는데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음악과 눈앞의 노을이 이루는 조화에 순간 전율이 온몸에 흘렀다. 흔히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 느낄 수 있다는 러너스 하이였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는데 오늘 달리기를 하는 기분과 회사의 일이 동시에 생각났다. ‘힘든 일일수록 해결하는 기분, 꽤 좋지 않을까?.’

태권도 시합을 준비했을 때도, 지역 시민 축구단으로 동료들과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연습했을 때에도, 스포츠 모델 대회를 나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을 때도 힘은 들었지만, 마지막 순간 느꼈었던 희열 말이다. 오늘 느낀 건 그 감정의 일부였을 테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얼마나 즐기고 있느냐에 따라 업무의 성취도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진정으로 즐기고 있으므로 비록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힘들고 남들이 피하는 일을 내가 먼저 다 간다면, 내키지 않아도 한번 해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 봐야 월급을 훨씬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요즘 말하는 일과 삶의 균형이 지켜지는 건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자꾸만 ‘하기 싫다.’.‘내가 왜?’라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면 될 일도 안 된다고 했다.

 내일 아침, 부장님께 카톡을 보내야겠다.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사람일 아무도 모른다고 혹시 아는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또 다른 글감이 나올지.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꼭 내키지는 않아도 즐기는 마음으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운동할 땐 힘들수록 웃으면서 즐기라는 말이 오늘 자꾸 생각난다. 내 삶의 태도를 계속 긍정적으로 바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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