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

by 이옥임

늘 가슴 한구석이 시리도록 안쓰럽고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내 동생.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막내로 지금쯤 제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갈 나이지만 양쪽 어깨에 무거운 짐 지고 혼자서 헤쳐나가느라 애쓰는 모습이 늘 미안하고 아프다.


누나들 넷과 형제 사이에 막내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늘 뒷전으로 자랐지만 고맙게도 주변 사람들은

"동생이 어쩌면 그렇게 야무지고 똑똑해요? 그리고 큰 키에 인물이 훤하니 아주 잘 생긴 동생을 두어서 좋겠어요."

"얼마나 성실한지 몰라. 열심히 하니 이다음에 성공할 거야."


그러나 큰누나인 내 눈에는 이면의 외로운 모습만 보이는 건 이유가 뭘까? 누나들과 어머니 앞에 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귀염둥이 막내동생일 뿐이다. 그래서 더욱 측은하다. 제 형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날이 바로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오는 날 집에 들를 거라며 기다렸던 형의 모습 대신 늦은 밤 난데없는 비보가 날아왔다.

경찰서에서 시신을 확인하러 오라는 말에 부모님께는 숨기고 가까이 살던 셋째 누나와 미친 듯이 달려가 확인한 결과 틀림없는 형의 모습에 그만 벽을 쳐서 손가락이 모두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제 형의 빈소를 손가락에 깁스를 한 채 지켜야 했다.


제대하기 이틀 전에 이상하게 형이 그렇게 보고 싶었다고 한다. 형과 만날 수 없음을 예고나 한 것처럼. 그러나 누군들 짐작이나 했던 일인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간사라지 않은가.

제대하자마자 경황없이 제 형을 보내놓고 동생은 이국 땅으로 떠나버렸었다. 받았던 충격이 매우 컸음을 짐작하기에 가족들은 적극 말릴 재간들이 없었다. 2년만 나가 있다가 들어와서 마음잡고 살겠다는 데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남 잃은 상처가 깊을 것을 염려한 주변이 인척들은

"아니 아들 하나는 죽어서 나가고 남은 아들은 살아서 나가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힘들어도 부모님 곁에서 살아낼 궁리를 해야지."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동생에 대한 가족들의 원망이나 2년 뒤 돌아온 동생의 후회는 없었다.


동생의 약속대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정신없이 뛰며 살고 있다. 어쩌면 날아다닌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직업의 특성상 서울에서 부산으로 대구로 하루가 멀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듯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도 2주마다 집에 내려가서 꼼짝 못 하는 아버지를 위해 목욕도 시켜드리고 수염도 깎아 드렸었다. 그리고 예제 모시고 다니며 구경도 시켜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렸으니 제 소원대로 한 셈이다.


고혈압으로 마지막 3번째 쓰러지실 때는 금세라도 돌아가시는 줄 알고 동생은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시면 내 가슴에 한으로 남아서 안 돼. 내가 아버지한테 해드리고 싶은 것 다 해드릴 수 있도록 더 사셔야 되는데 어떻게 해?"라며 울었었다.

부모님께서 가장 힘들어하실 때 곁에 없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듯 몸져누워 계신 아버지께 눈물겹도록 정성을 다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는 친구처럼 장난치는 걸 좋아해서 돌아가실 즈음 치매 증상이 나타난 아버지는 동생과 어머니의 관계를 몹시 질투하셨다.


방학해서 친정에 내려갔는데 느지막이 들어온 남동생이 엄마와 장난을 치자 잔뜩 흥분하신 아버지께서 앉은 몸을 이끌고 주방까지 나오셔서 건넌방에 있는 나를 정신없이 부르셨다.

"옥님아, 옥님아. 너그 어매가 외간 남자와 사랑을 한다."

아이가 자기 물건을 빼앗겨서 다급하게 엄마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듯 아버지가 오랜만에 찾아와 곤히 자고 있는 큰딸을 불러 흐려진 발음과 절박한 심정으로 이르고 계셨고 도와달라는 구조요청이기도 했다. 동생은 아버지의 반응에 익살스럽게

"아버지, 내가 어떻게 외간남자야? 나야. 아버지 아들이야."라고 했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당신의 아들을 쫓아내고야 말았다.


이 모습을 처음 본 나는 추운 겨울 엄동설한에 동생이 걱정되어서 따라 나갔으나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으며

"친구 집에서 자고 오면 돼. 괜찮으니까 걱정 마."한다.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고 사랑할 만큼 성인이 되어버린 동생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원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계셨던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동생은 어려운 집안 형편을 일으켜 보겠다며 주야로 뛰고 있다. 형이 있었더라면 나누어 질 짐을 혼자서 지고 살아가려니 힘들 일은 당연지사다. 게다가 외롭고 힘들 때 말벗이라도 되어줄 사람이 없으니 못내 짠하다.

그렇다고 누나들이 그 자릴 대신하는데도 한계가 있고 매형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매형과의 사이가 허물없이 형제 이상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한참 사느라 정신없는 탓인지 아직은 그렇듯 애틋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응석도 부리고 싶고 때로는 심정을 토로하고도 싶겠지만 자신의 입장이 그럴만한 처지가 못된다고 생각하는 듯 오빠같이 아버지같이 누나들을 대한다. 큰누나인 나만 빼고는 둘, 셋, 넷째 누나는 동생들 같단다.


어젯밤에는 11시가 가까운 시각인데 사무실에서 나와 동료들과 어울리다 집에 들어왔다며 전화를 했다. 바빠서 오지도 못하고 전화할 새도 없다며 늘 미안해하던 동생이 취기로 울적해진 듯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느낌인데 그냥 해봤단다.


"누나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자고 그래? 빨리 자야 내일 출근하지. 빨리 자. 응?"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한 걸 가까스로 전화를 끊고서야 혼자서 울었다.


동생들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작아지는 내 모습이 남동생 앞에서는 더더욱 작아지고 늘 미안하다. 이런 제 누나의 심정을 알기나 한 듯 오빠 마냥 다독이고 걱정을 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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