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by 이옥임

공을 들여 만든 그이의 자화상이 현관의 맞은 편 거실장 위에 떡 허니 버티고 있다. 그이는 운동을 하고 들어가면서 자화상에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익살맞게

"어, 그래. 잘 있었나?"하는데 뒤따라가는 나는 웃음이 나왔다.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해주는 위치에 잘 놓였다며 쓰다듬는 모습이 자신이 만들었다는 게 아무래도 신기한 눈치다. 매끈함은 떨어져도 그이가 만들었던 찰흙의 다른 작품들과 똑같이 잘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그이의 첫 작품치고 성공한 셈이다.


미술학원이나 화실에서 잘 빚어진 석고상을 보기만 했지 그 과정을 볼 기회가 없어서 얼마나 복잡하고 힘든 것인지 몰랐었다. 그런데 그이의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복잡한 과정이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직접 만들었던 그이도 두 번 다시는 할 일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이의 대학원 수업이 끝나는 날인데 학교라며 전화가 왔다. 비가 오지 않으면 함께 테니스 운동을 나가기 위해 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냅다 퇴근해 달려왔을 테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서 어차피 못할 운동이니 석고작업이나 배우고 오겠다는 것이다.


도자기 흙으로 잘 빚어진 두상을 자화상이라며 조심스레 안고 들어오기 이틀 전에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두상의 측면을 달리해 사진을 8장이나 찍어왔었다. 사진을 보고 만들었다는 자화상의 모습이 코 윗부분은 그이와 많이 닮았으나 더 넓은 볼과 입 주위가 낯설어 그이의 자화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이가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품성이 충분하다는 생각에

"야, 여보! 이거 가보로 물려주어야겠다."하고 말하자 계면쩍은 듯

"가보까지는 물려줄 필요가 없지."하는데

"무슨 소리야. 당신의 혼이 들어간 작품인데."하자 웃는다. 내 혼이 들어가야 잘 된다며 날더러 혼 좀 넣어달라고 아이마냥 조르던 그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나도 함께 웃었다.


석고를 만들기 위해 찰흙 위에 석회를 발라 본을 뜨고 석고와 잘 분리되도록 그 안에 식용유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석회반죽으로 코, 입 들어간 부분을 세심하게 눌러 바르면서 날더러 해보란다. 내 혼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니 꼭 내가 해야 한다며 어르는 것을 손대기가 지레 겁이나 쳐다보지도 않고 거절하자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었다. 마저 석회반죽을 채워 넣어 굳는 동안 벌어지지 않도록 고무줄로 꽁꽁 묶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부터 마치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하다. 거실로 나가보니 버릴 찰흙더미 위에 그이의 석고가 내동댕이쳐져 있다. 의아해하며 왜 버려져 있느냐고 묻자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잘 안 떼어진다며 실패한 것 같다고 버리겠단다. 며칠 고생해서 만든 것인데 왜 쉽게 포기하느냐며 버릴 때 버릴망정 한번 떼어보기라도 하자며 종용하자 조심스레 다시 시도를 했다.


두 발 사이에 석고를 끼우고 땀이 나도록 마치를 두드리더니 조금씩 모양이 드러난다며 좋아라 한다. 결국 그이의 작품은 성공을 했고 머리에 갈색의 염색까지 멋있게 해주었다. 배울 때에는 식용유를 바르지 않고 비누를 발랐었는데 자기 생각에 식용유를 바르면 더 잘 떼어질 것 같아서 시도한 것이 그만 지워지지 않고 얼룩처럼 남아서 흉하게 보인다며 물감을 발라준 것이다.


찰흙으로 초기 작업을 하는 동안 재미있다며 날더러 해보랄 양으로 찰흙덩어리를 3개나 무겁게 가지고 왔었다. 그리고 석회가루도 몇 개를 만들만큼 넉넉하게 가져다놓고는 작품을 어렵게 완성시키고 나더니 못할 짓이라며 만들어보라는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방학동안 집에서 노느니 한 번 만들어 보라며 몇 번 권유했었는데......


그이가 만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충분히 경험했기에 아예 관심도 두지 않고 있다. 남은 찰흙과 석회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찰흙놀이를 하겠다며 교실에 갖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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